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익히 알고 있으나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소위 고전이라 불리는 문학 속의 인물들을 만나는 시간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독서모임<여유>는 세계문학전집 속에 들어 있을 법한 18, 19세기 문학 작품들을 읽고 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전쟁과 평화』 등 혼자 읽기에는 용기가 필요한 러시아 문학을 읽고 프랑스로 넘어오면서 처음 선택한 작품이 『적과 흑』이다.
저자인 스탕달의 본명은 마리앙리 벨이며 1783년 프랑스 그로노블에서 태어났다. 제정 나폴레옹 시대 관료로서 출세를 하게 되지만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실직했다. 그후 나폴리에서 머물면서 음악, 그림, 연극을 즐기고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830년에 『적과흑』을 발표했다. 7월 혁명 이후 이탈리아주재 프랑스 대사에 임명되어 외교관으로 활동하였으며 글도 계속 썼다. 1839년 『파르마의 수도원』을 50여 일 만에 구술로 완성하여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다. 1842년 뇌졸중으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제재소집 아들, 쥘리앙 소렐은 자신의 신분과 계급에 불만이 있었다. 무지하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형들을 벗어나 나폴레옹처럼 신분을 상승하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으나 자신이 현실을 벗어날 방법은 사제가 되는 방법밖에 없다는 깨닫고는 마을의 사제에게서 라틴어를 배우고 성서와 고대 로마의 문학작품 들을 암송하기 시작한다. 타고난 총명함으로 레날시장 아이들의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되고 시장 부인을 유혹하게 된다. 그의 재능은 파리의 귀족, 드 라몰 후작에게도 알려지게 되고 그의 비서가 되어 파리로 가게 된다. 상류사회에 발을 딛게 된 그는 라몰 후작 딸의 사랑을 이용하여 상류사회로 진입하고자 하나 레날부인의 질투로 자신의 꿈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되자 도시로 돌아가 총으로 그녀를 쏘게 된다. 감옥에서 그는 진정한 사랑과 삶에 대해 깨닫게 되지만 그의 재판에는 사건 뿐 아니라 지방 도시귀족 들의 암투와 소렐를 향한 질시가 섞여들면서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
지위! 이보시오.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바보들은 존경하고 어린애들은 경탄하고 부자들은 부러워하고
현자들은 멸시하는데.
바르나브 (15쪽)
……사냥꾼이 숲 속에서 총을 쏜다. 희생물이 쓰러진다. 사냥꾼은 잡으려고 내닫는다. 그의 발길이 60센티미터 높이의 개미집에 부딪혀 개미집을 부수고 개미들과 그 알들을 멀리 흩뿌린다. …… 제아무리 철학자 개미라도 그 사냥꾼의 장화인, 그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검은 물체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알 수 없는 물체는 붉은 불길을 내뿜으며 무시무시한 소리에 뒤이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별안간 그들의 거처에 뚫고 들어온 것이다. ……
……죽음이니 삶이니 영원이니 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런 것들을 이해 하기에 충분히 큰 기관을 가잔 존재에게는 아주 간단한 일일 것이다.(404쪽)
거대한 시대의 흐름 앞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항상 등장하는 질문이다. 작가는 재능있고 매력적인 한 개인을 등장시켜 시대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주고 있다. 답은 뭘까? 삶에 순응해서 소렐이 제재소에서 늙어가거나 신학교를 무난하게 졸업하고 지방 교회의 사제가 되어야 했던 건가? 결국 답은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