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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숨다님의 서재
  • 1417년, 근대의 탄생
  • 스티븐 그린블랫
  • 18,000원 (10%1,000)
  • 2013-05-15
  • : 3,021

작가는 서문에서 대학시절 서점에서 싸게 내놓은 책 더미에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하면서 일어난 삶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로 이 책을 시작한다. 저자는 ‘죽음’에 대하여 강박적인 어머니에게 벗어날 수 있었던 루크레티우스의 시가 발견되기까지 궤적을 그리고 있다. 현 세계에서 아직도 주류인 기독교적 세계관의 형성과 그 대척점에 서있었던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이 어떻게 사라져 갔는가에 대하여 기술한다. 또한 기독교적 세계관이 정점을 달리던 시절 그 세계의 한 가운데라 할 수 있는 교황청의 필사 비서였던 포조 브라촐리니는 수도원 한 구석에 묻혀져 있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함으로써 근대를 열게 된다.

작가의 자기고백,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픽션, 책 한권이 일으킨 사상적 영향력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보면 무질서하게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있다.

무질서하다고 했지만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관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일탈(swerve)이라고 부른 뜻밖의 방향으로

예측이 불가능하게 전개되는 사물의 움직임을 긍정했다(15쪽)

루크레티우스는 그 생애가 불확실하게 전해져 온다. 만년에 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남아 있는 그의 유일한 저작이다. 쾌락주의 철학자라 불리는 에피쿠로스에 대한 찬양과

‘원자론’의 원칙에 따라 자연현상과 사회 제도를 설명한다. 또한 물질의 근원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영혼이나 신에 대한 잘못된 의견에 대하여 비판한다. 루크레티우스가 전하는 에피쿠로스 철학의 핵심은 실재하는 것은 원자(아토마)와 공허(케논)뿐이며 이들의 충돌이나 상호관계로 인하여 이 세계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신들도 원자의 결합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런 세계관에 의하면 죽음과 더불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식이 없어진다. 그런 인생의 목적은 쾌락의 추구이다. 이때 쾌락은 명예욕, 금전욕, 육욕을 의미 하는게 아니라 자연적인 욕망을 말한다. 에피쿠로스는 쓸모없는 이야기만을 하는 모임, 필요이상의 먹거리를 피하고 미신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며 우애를 최고의 기쁨으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책 사냥꾼 칭한 포조 브라촐리니는 자신이 모셨던 교황의 실각으로 교황청 일자리를 잃게 되자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급하게 찾는 대신 독일의 수도원을 돌면서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책을 찾아 필사하기 시작했다. 권세를 잃어버린 스크립토르에게 수도원은 서가의 문을 잘 열어주지 않았지만 1417년 독일의 론강 근처에 있는 풀다 수도원에서 그는 세계를 바꾸게 될 책을 발견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필사본을 갖게 된 포조는 이탈리아에 있는 부유한 친구 니콜로 니콜리에게 필사본을 보냈다. 니콜리는 본인이 직접 다시 필사를 했다. 이 둘 필사본과 더불어 후에 남은 약 50권의 필사본들은 15세기 이후 나온 인쇄본의 기초가 된다. 니콜리의 필사본은 피렌체의 로렌치아나 도서관에 보관되어있다. 필사된 지 약 10년이 지나서야 포조는 이 책을 다시 손에 넣게 되고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키케로는 이 시를 두고 자신의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평했다.

“루크레티우스의 시는 네가 편지에서 언급한 것처럼 빛나는 천재성으로 가득하더구나.

그런데 예술적이기도 하더군.” (67쪽)

과학적이기도 하면서 문학적인 작품은 쉽게 만나볼 수 없다. 키케로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이 둘이 결합된 작품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읽기가 쉽지 않은 시이다. 또한 위험한 사상을 담고 있기도 했다. 특히 이 책이 발견될 당시는 신의 존재에 대한 언급은 아주 불온한 사상이기도 했다. 기독교도 였던 포조가 이 책에 대해서 절충적으로 생각한 것 같다. 신에 대한 루크레티우스의 위험한 생각은 그가 구세주가 세상에 오기 전에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생각이었다. 그가 말한 신이란 이교도 신앙을 의미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현대에도 어떤 영역본에는 ‘미신’이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루크레티우스는 또 하나의 위험한 이야기도 하는데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입자들은 진공 속에서 움직이고 신도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즉 우주가 특별하지 않은 자연법칙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우주는 물질-기본적인 입자들과 그 입자들이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모든 것과

만질 수 없는 비어 있는 진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상에는 물질과 진공, 그 외의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235~236쪽)

루크레티우스는 이를 ‘일탈(swerve)’이라고 불렀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삶에서 입자들의 무작위적 일탈이 곧 자유의지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죽음 또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영혼이나 사후 세계는 무의미 한 것이다.

당신이 죽게 되면-즉 지금까지 서로 결합되어 당신의 형상을 이루고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던 입자들이 흩어져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면-

이제 당신은 더 이상 쾌락도 고통도 염훤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242쪽)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기독교의 사상적 박해를 딛고 에피쿠로스 학파의 사상을 후대에 전하는데 성공했다. 포조 브라촐리니는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이 책을 세상에 내 놓음으로써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근대라는 시대를 열게 되었다.

마키아벨리, 브루노, 갈릴레오와 같은 사람들을 매료 시켰으며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 오는 사상적 흐름을 만들어 냈다.

지금으로 보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언급하는 과학적 사실들이 이제 친숙하며 일부 오류도 있다. 현대의 과학적 사실과 삶의 태도에 바닥을 다지고 있어서 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 친숙함을 이루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핍박받고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사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상의 핵심은 근대 과학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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