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보통의 글은 나름 꽤 사변적이어서 역자가 글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면 중간도 못 가는 번역이 되기 쉽다. 논리의 흐름을 툭툭 끊어 놓으면 역자의 말만 믿을 수 밖에 없는 가엾은 독자들은 어떤 대목에서는 정말로 머리를 풀고 길거리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을 거다. 오늘은 원서 바로 2째 페이지에 나오는 오역을 한 번 살펴본다.
원문: 2page
Yet after an exhausting and fruitless search, we may be forgiven [or at least understood] for our decision to share mortgages with a being whose qualities in no way exhaust our imagination, but who is nevertheless the finest specimen to have yet betrayed a sustained interest in us, and whose hunched back, curious politics, or high-pitched laugh we find the energy to ignore, retaining a hope of upgrading if a better candidate should subsequently announce themselves.
역서: 8page
보람도 없이 지치도록 탐색한 끝에, 상상력을 길러주는 존재와 주택대출금 부담을 함께 짊어지기로 한다면 그것은 용서[적어도 이해]받을 만한 일이다. 그 사람은 우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버리지 않을 만큼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의 굽은 등과 특이한 정치적 견해, 새된 웃음소리는 무시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는 더 나은 상대가 나타나리라는 희망을 간직할 수 있다.
배우자 감으로 상상력을 길러주는 존재라,,, 어떤 존재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더구나 그 사람은 우리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하는데 그래야 좋은 사람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갑자기 정치적인 견해는 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그의 못마땅한 점을 무시해야 더 나은 상대가 나타날 희망이 있다고 한다고 한....
제발!!!!!!!!!!!!!!
초벌번역이란 게 있다고 들었는데 바로 그런 번역을 역자나 편집자가 다시 한 번 들여다보지도 않고 인쇄해버린 것일까?
“a being whose qualities in no way exhaust our imagination,”은 ‘상상력을 길러주는 존재’가 아니라 ‘절대로 우리의 상상력을 다 끌어낼 만한, 즉 이해하고 또 상대하는 데 우리의 상상력을 충분히 사용할 만한 자질이 없는 따분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 사람을 상대하는 데는 별로 상상력이 필요 없어' 식의 얘기겠지. 어쨌건 따분한 인간이 졸지에 상상력을 키워주는 이상적인 남자친구로 바뀌었으니 당사자의 기분은 좋을 것 같다.
“the finest specimen to have yet betrayed a sustained interest in us,”도 못지않은 오역이다. ‘우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버리지 않을 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해석을 했는데 여기서 betray란 동사는 ‘버리다’는 뜻이 아니라 ‘무심코, 의식하지 못한 채 보여주다’란 뜻이다. 좋아하면 말로 안 해도 행동으로 다 나타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럼 해석도 “이제까지 우리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온 인간들 중 그나마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됐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덜컥 그를 남자친구로 낙점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내가 그의 부족한 자질들, 즉 그의 꾸부정한 자세, 사람들 사이에서의 이상한 처신(정치적 견해가 아니다), 새된 목소리를 참아낼 힘이 내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벌어 놓고 더 좋은 킹카가 다가오면 차를 바꿔 탈 꿈을 꾼다는 것이다.
제안 번역:
지치도록 물색을 했지만 아무 성과가 없을 때는 대충 한 명 골라서 한 지붕을 이고 살아도 용서를 받을 수[아니 적어도 이해는 받을 수]있지 않을까? 물론 전혀 내 상상력을 돋구거나 할만한 자질을 가진 인물은 아니더라도 이제껏 우리에게 쭉 관심을 보여온 인간들 중에 제일 괜찮은 사람, 그의 꾸부정한 자세와 엉성한 인간 관계, 그리고 새된 목소리도 그냥 저냥 참아줄 만한 사람 말이다. 그렇게 일단 한 다리를 걸쳐놓고 괜찮은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거지.
이왕 손을 대었으니 1장을 좀 더 살펴본다.
.....
원문: It sickened Alice to think of love in these pragmatic terms, a question of making do with the misshapen character one had happened to bump into at the swimming baths, a cowardly accommodation with the flawed products of the social world in the name of baser biological and psychological imperatives.
역서: 엘리스는 사랑을 이런 실용적인 의미로 생각하기 싫었다. 수영장에서 우연히 만난 인물과 사귀는 것은 마뜩지 않았다. 그건 생리적, 심리적 필요라는 미명하에 사교계의 불량품들과 비겁하게 타협하는 거니까.
Misshapen이란 (이 문장에서는)중요한 단어가 빠져있고 social world를 불필요하게 사교계와 연결시켜 놓았다.
제안 해석: 엘리스는 이런 실용적인 관점에서 사랑을 생각하기 싫었다. 수영장에서 우연히 만난 못생긴 남자에 적당히 안주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건 저열한 생리적, 심리적 절박함을 해결하기 위해 비겁하게도 세상의 불량품들에 만족하는 짓거리이다......
원문: She had learnt that god was dead and Man [that other anachronism] was on his last legs as an embodiment of an answer to Life,
역서: 신은 죽었으며 삶의 해답을 체현하는 건 인간임을 알았다.
어차피 어려운 이야기니까 대충 해석해도 상관은 없겠지,,,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가끔 나같이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이 있으면 원문을 찾아보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On his last legs’은 사전을 찾아보면 “At the end of one's strength or resources; ready to collapse, fail, or die.”라고 나와있다. 이 문장에서 생략할 만큼 의미 없는 단어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Man [that other anachronism]을 역자는 따로 “Man은 ‘인간’이면서 ‘남자’란 뜻이기 때문에, 지은이는 ‘인간’과 ‘남자’를 동의어로 취급하는 이 말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뜻에서 이렇게 anachronism이란 단어를 쓴 것 같다’고 설명을 했지만 내가 보기엔 that other란 말로 anachronism을 한정한 것으로 보아 신과 인간이라는 대칭에서 신이 사라진 순간 그에 기대 설명이 되었던 인간이란 의미도 구태의연한 것이 되었다는 뜻일 것 같다. 하지만 그것 역시 보통선생이 명확히 설명을 해주지 않았으니 각자 여러 가지 추측을 해 볼 여지가 있는 부분으로 생각하고 이쯤에서 넘어가자.
제안 번역: 신은 죽었으며 삶의 해답을 체현하는 존재로서의 인간도 한계에 부닥쳐 있다는 것을 배웠다......
번역서에는 (11page) “대단한 차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타고난 장점이 있었다.”란 문장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이 어디서 생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즉 “Alice had always considered herself prettier. She had comforted Suzy that whatever their paucity, compatible men would in due course announce themselves,”이란 문장 사이에 위의 ghost sentence가 해석이 되어 있다. 원문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앞 뒤의 문장의 이해를 돕기 위한 문장도 아니다.
여기서 “Whatever their paucity, compatible men would in due course announce themselves”이란 문장도 ‘부족하나마 괜찮은 남자가 나타날 것이고’라는 언뜻 보기엔 그럴 듯하지만 말도 안 되는 해석을 해놓았다. 친구에게 이따위를 위로라고 한다면 그날로 우정을 접어야 할 것이다. ‘쓸만한 남자들이 아무리 눈에 띄지 않더라도 곧 괜찮은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게 원래의 뜻이겠다.
원문: She no longer felt like seeing anyone, or rather, the absence of the one made others seem superfluous. She knew many who categorized themselves as friends, her address book was swollen because she asked people about themselves, took an interest in their lives, remembered their stories and therefore skillfully fulfilled their need for recognition. If the urge to resume contact eluded her, it was perhaps because these friends represented company without for that matter alleviating her own sense of being alone.
역서: 그녀는 이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애인이 없으니 오히려 사람이 필요치 않은 듯이 느껴졌다. 친구의 범주에 드는 남자는 많았다. 그녀는 곧잘 남들의 안부를 묻고 생활에 관심을 가져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알은체해주는 성격이어서, 수첩에 친구들의 전화번호가 넘쳐났다. 남자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이런 친구들이 곁에 있기 때문일 터였다. 이들이 혼자라는 느낌까지 없애주지는 못하겠지만. 활기찬 얼굴들로 둘러싸인 자리에 앉아 있어도 고독은 멈추지 않았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어가 이상하면 대부분 원문해석이 잘 못 된 경우다. 번역문에는 “남자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이런 친구들이 곁에 있기 때문일 터였다”라고 해 놓았기 때문에 ‘앨리스는 친구들이 있으면 구태여 남자가 필요 없겠구나’라고 독자들은 이해를 할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에서는 “활기찬 얼굴들로 둘러싸인 자리에 앉아 있어도 고독은 멈추지 않았다.”라는 말이 나온다. 아니 세상에, 주인공이 ‘그런 친구들이 곁에 있으면 남자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고 했다가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고독이 멈추지 않는다’고 주장을 하면 독자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얘기인가?
문제는 마지막 문장을 잘 못 해석한 데 있다.
원문: If the urge to resume contact eluded her, it was perhaps because these friends represented company without for that matter alleviating her own sense of being alone.
역서: 남자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이런 친구들이 곁에 있기 때문일 터였다. 이들이 혼자라는 느낌까지 없애주지는 못하겠지만. 활기찬 얼굴들로 둘러싸인 자리에 앉아 있어도 고독은 멈추지 않았다.
제안 번역: 친구들을 다시 만날 마음이 안 생긴다면 아마도 그건 그들이 같이 있어도 그녀의 고독을 덜어주지 못하는 일행이라는 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원문: elf-pitiers consider themselves tragic figures if jilted in the course of a banal love affair; they suffer from a mild inflammation of the throat and, wrapped in scarves and surrounded by medicines, shed nose-phlegm as though it were pneumonia.
역서: 자기연민에 빠지면 평범한 실연을 당해도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럴 때 사람들은 목이 아프다며 스카프를 친친 두르고, 사방에 약을 벌여놓고, 폐렴이라도 걸린 듯 콧물을 흘린다.
실연을 당하면 목이 아프다고 스카프를 친친 두른다? Semicolon ‘;’의 의미를 되새기자. 여기서 ‘;’는 앞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을 한 번 더 반복함으로써 이해를 돕는 다는 의미이다.
제안 번역: 자기연민에 빠지면 평범한 실연을 당해도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게 된다. 즉, 가벼운 목 감기에 걸리고도 스카프를 친친 두르고, 사방에 약을 벌여놓고, 폐렴이라도 걸린 듯 콧물을 흘리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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