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던 깜놀.
모처럼 낮잠을 달게 자고 있는 데 남편이 침대옆에서 옷을 주섬 갈아입는 느낌이 나
어디가 했더니 테니스 치러 가 해서 이 삼복더위 누군 돈 받고도 안할 판에 참 가지가지 하십니다 비아냥 대곤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데 얼마나 지났을까나. 입안에 침이 고여 스르르 하던 차에 딱 그분이 오셨다 '페이즈!'
그래 그분이 내게 드뎌 왕림하셨군하셨어. 침을 닦으러 올라가던 손이 몸의 그것과 분리된 느낌이 파박 전해져 왔다는 거. 자, 그렇담 말로만 듣던 그 유체이탈을 한번 해보자고. 엎어져 자고 있는 이마로 '오베'가 목매달뻔한 밧줄을 주문해 내리고 이탈한 양 손으로 한땀한땀 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명품 이미지 다 놔두고 싼티나게 왠 밧줄이냐고? 어차피 페이즈 체험은 잠재의식이 만드는 가상현실이라고 했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그 옛날 해님달님이 잡고 가던 동아줄 한번 쥐어 보고 싶었달까. 끙..소,소박해. 안그래?
야튼, 뭐든 한번에 되는 일이 없었던 비참한 과거와는 달리 유체가 그 밧줄과 함께 수루룩 한번에 딸려 올라왔고 이탈 성공하면 꼼달대지 말고 곧바로 행동을 계시하란 말에 침대위 널브러진 나를 한번 힐끗 봐주고는 눈을 감고 무소의 뿔처럼 벽을 향해 돌진했다. 맙소사 토,,통과..가 된다..
이번엔 깍아지르는 절벽을 상상하니 바로 폭포수 절벽위에 서 있다. 폭포가 내는 굉음으로 고막이 터져 나갈 것 같고 수포로 인해 온몸이 축축히 젖어왔다. 아차 했다. 그때서야 내 꼬라지가 눈에 들어왔다. 나이들면 남녀가 어딨냐며 남편 런닝과 박스팬티를 뺏어 입은 봉두난발의 왠 주책맞은 아줌마 한 분이..소,소박해 그지?
이럴 땐 빨리 공중낙하. 공간을 가로 지르며 폭포를 따라 우아하게? 낙하..두렵지 않았다. 여긴 꿈속이니까요. 낙하 도중 등뒤에 혹을 단 이상한 두꺼비와 눈이 마주쳤는 데 알은체를 하며 허를 날름거렸다. 내 무의식 어디에 저 건방진 두꺼비가 있었나. 생각과 함께 요동치는 물속으로 빠졌는 데 그만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거꾸로 파닥대다 어느새 몸안으로 끌려들어와 차분히 침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렇게 허탈할 수가. 몸을 추스리고 일어나 물 한잔 들이키고 나니 울컥 안타까움이 올라왔다.
공중낙하를 하는 게 아니었어. 차라니 외계인에게 피납되어 화성 땅이라도 밟고 오는 게 훨 재미지고 안전했을 텐데..어이쿠.
거꾸로 떨어질 때 바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라. 바닥을 뚫고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라.
그저 단순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떨어지려고 애쓰면서 빠르게 아래로 돌진해 나가기를 소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하지 못하면 다이빙은 오히려 깨어있는 상태로 돌아가버리게 될 수 있다.
분위기가 심상찮으니 아이 둘은 후다닥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남편을 찾으니, 아차차. 테니스 치러 간댔지 참. 이래서야 원..화딱지가 나 그예 남편에게 폰을 하니 어라라 웬 젊은 처자의 목소리가 넘어온다아..누,누구냐, 너.
저, 댁 남편 여자친군데요..라는 그 처자 배경으로 물소리, 바글거리는 사람들 소리를 비집고 익숙한 소리하나가 들어온다..뭐야, 빨리 와 다 구버쓰..!!!!!!!
무,무에야..다 구버쓰으엇!!! 뭘 구벘고 뭘 빨리와아!! 테니스를 계곡으로 갔나 이 양반이.
이 지지배야 당장 내 남편 바꿔. 바꿔 달란 말이다....!!
화들짝 눈을 떴다. 입가에 침은 말라비틀어져 있고 여전히 봉두난발에 남편 속옷 풀셋을 입은 아줌마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창가에 배게를 받치고 앉아있다. 이탈하지 않은 양손엔 책을 펼쳐들고..오마낫. 내가 이 백주대낮에 인셉션을 찍은 겨? 꿈 속에 꿈?
깜놀. 어쨌던 깜놀하여 확인차?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거울에 비친 폰을 든 엽기 아줌마의 옆태를 뚫어져라 지켜보면서 말이지. 혹시 아는가. 이 또한 꿈일지.
페이즈 공간은 대상의 세부에 대한 장시간의 면밀한 시각적 집중을 견뎌내지 못한다. 몇 초만 세밀하게 살펴보면 물체의 모양이 왜곡되기 시작하고 색깔이 변하며, 연기를 내뿜거나 녹아버리거나 다른 식으로 변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