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권씩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을 읽고 있다. 한국에 번역된 발자크 전작 읽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발자크의 소설에서 19세기 전반의 프랑스, 특히 파리의 정치, 문화, 풍속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발자크가 자신의 소설에 묘사한 파리가, 한 도시가 가진 모든 것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주경철의 『도시 여행자를 위한 파리X역사』는 발자크가 놓친 파리는 무엇인지 궁금해 읽게 되었다.
2024년 센 강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개막식을 시청한 사람들의 느낌은 거의 비슷했을 것이다. 어수선하고 의미를 잘 알 수 없는 내용에다가 선정적이기도 한, 굳이 올림픽 개막식에 저런 메시지를 넣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지루함이 계속 느껴져 실망했다. ‘파리’라는 이름을 건 올림픽이었기에 더 기대한 면도 있었다. 중간에 시청을 포기한 사람이 많았다.
그러다 개막식 마지막에 비 내리는 에펠탑에서 병마와 싸우는 중인, 흰 드레스를 입은 셀린 디옹이 부른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에 모든 것이 녹아버렸다. 파리는 그냥 에펠탑으로 상징되는, 그들의 문화로 온갖 나쁜 것이 상쇄되는 특별한 도시인 것이다.
이 책은 고대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 파리에 대해 다이제스트의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파리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얻는데 유용하다. 앙드레 모루아의 『프랑스사』의 축소판 같은 느낌에, 그 책보다는 사진이 훨씬 더 많이 들어있다. 가볍게 읽기 좋다. 파리에 대한 다양한 것을 아는 데에 도움이 되는 책이다.
다만 이 책의 저자가 역사학자라는 측면에서 이 책은 나쁘다. 역사에 대한 전문가가, 게다가 파리에서 유학까지 한 사람이 썼다는 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 왜냐하면 이 책의 내용에 특별한 것이나 저자의 생각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세계 역사의 흐름에 대해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파리에 대해서도 이 책에 서술된 내용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제목에 ‘도시 여행자를 위한’이라는 작은 글씨가 덧붙여져 있다. 저자도 이미 이 책이 가볍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최근에 똑같은 내용의 책이 개정판으로 나왔는데 그것도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수라는 든든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이 정도는 배고픈 다른 작가에게 양보하면 좋겠다.
발자크의 소설 배경을 더 잘 알기위해 이 책의 3부인 ‘혁명의 도시’ 부분을 더 집중해서 읽었다. 발자크 소설에 묘사된 내용과 다를 것이 없어 내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책은 발자크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 확인해준 책이다. 자신의 시대를 그대로 넣어 소설로 창작했다는 점에서 발자크는 정말 뛰어난 작가이다. 그 정도로만 만족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