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진기 작가의 새로운 소설집 <순서의 문제>는 총 7개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각각 서로 이야기가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게 독립된 이야기로 꾸며져 있어 편하게 먼저 보고싶은 작품을 펼쳐보아도 무방하다. 그 중에서도 나의 기대와 희열을 충족시켜준 <순서의 문제>, <티켓다방의 죽음>, <뮤즈의 계시>를 이 소설집의 메인으로 꼽아보고 싶다. 그만큼 범죄에 감춰진 트릭이나 범인들의 예리한 수법, 얼핏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복선 등이 끈끈한 긴장감과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해준 덕분이 아닐까 싶다.
장편 <나를 아는 남자>에서 이미 친숙해진 묘한 매력의 소유자 진구와의 재회는 어떠했을까? 호기심을 자극하는 범죄와 사건 앞에서 그의 남다른 식견과 재능, 기지는 사건을 절묘하게 해결시키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의로운 해결사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거리감이 있다. 분명 사회악을 심판하고 진실을 찾아내는 데는 투철하지만 한편으로는 돈이라는 물질의 대가를 자신의 노력의 결과물로 취하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속물적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이상적인 정의감보다는 오히려 현실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순서의 문제>에서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로 대리운전을 하는 진구는 어느 날 손님에게 묘한 거래제안을 받는다. 단순히 지정한 지역에 도착하여 전화 한 통만 걸어주면 50만원을 거머쥐는 손쉬운 제안이였던 것이다. 솔깃하면서도 먼가 정상적인 심부름은 아닐 것이라는 의심도 생겼지만 곧 순순히 거래를 무사히 마친다. 하지만 곧 이 거래가 어떤 돈과 관련된 범죄임을 알아차린 진구는 의문의 사건을 파헤치기로 하고 발빠르게 움직인다. 의심되는 알리바이 조작의 진위, 자살이 확실한 죽음의 진짜 진실, 죽음의 순서를 철저히 위장시키고자 했던 범인의 의도 등을 거쳐가면서 결국 진구가 발견한 파렴치한 한 인간의 탐욕과 진실은 무엇일까?
<티켓다방의 죽음>편에선는 타지에서 청산가리로 자살한 채 발견된 한 남자의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죽기전 이미 무리하게 상당한 생명보험에 가입된 쓸쓸한 피해자의 최후, 자살로 판명되는 한 보험금을 한 푼도 타낼 수 없기에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으려는 피해자의 아내, 자살로 짙어진 사건의 향방을 타살로 이끌어내도록 의뢰를 받은 진구의 선택은 무엇이 될지, 또 복잡하게 얽혀진 베일의 사건의 진상은 어떤 관계가 있을지 흥미롭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담겨져있다. 잠잠히 자취를 감추었던 진구의 예리한 이리의 눈빛이 무슨 연유로 누군가에게 준비된 응징을 가하려고 하는지도 끝까지 놓치지않고 지켜본다면 더 재밌게 즐겨볼 수 있겠다.
이번 소설집을 통해 보다 진구와의 거리감을 더 좁혀보면서 그의 이면속에 좀 더 깊이 들어가보는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이든다. 따뜻하고 자상한 구석도 있지만 먼가 자신의 내면을 모두 표출해지 않는 신중하면서도 꼼꼼학 성격의 소유자, 쉽게 빈틈을 허용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과거의 기억속에서 아직 꺼내지 못한 그의 이야기들이 더 궁금해진다. 확실히 그는 범죄와 사건을 다루는 탐정으로서의 능력은 탁월했다. <뮤즈의 계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해미와 함께 살인사건에 연관된 법정의 증언대에서 위증의 위기로 내몰릴뻔한 난관을 스스로 극복하고 사건의 진실까지 완벽하게 밝혀내는 진가를 잘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또 하나 독자들에게 반가운 인물, 고진 변호사와의 만남과 인연이 어떤 새로운 무대에서 다시 조우하게될지도 기대된다. 고리타분한 명탐정의 모습을 멋지게 탈피하고 한국형 추리소설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등장한 진구의 남다른 활약이 앞으로도 더욱 멋지게 펼쳐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