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苦海)속에 반복되는 사랑과 미움.....속세에서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리니...."
이 독백은 마지막 범행의 실체를 밝히는 행선지를 향하여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 독자에게 내뱉은 한마디이다.
왠지 대단원의 결말 앞에 서 있는 하나의 진실을 밝히는 듯한..이 사건의 종착지를 함축하고 있는 듯한 메세지로 들렸다. 의문의 참혹한 살인사건으로 법정 앞에 서게 된 인물 피의자 조판걸, 그리고 이를 지켜보고 있는 서초 경찰서 강력반 팀장 이유현의 등장으로 이야기가 서서히 시작되려고 한다. 곧 살인 사건의 피해자 정유미, 그리고 함께 피살된 의문의 남자 이필호란 인물도 수면으로 떠오르면서..무엇이 이 두 남녀를 한 공간속에서 서로 엇갈린 죽음의 운명으로 내몰게 되었을지 궁금해진다.
우선 앞서 말한 이유현은 사건을 하나씩 파헤쳐나가지만 도저히 뚜렷한 목격자를 발견할 수 없고 범행동기가 의심되는 유력한 용의자조차 지목할 수 없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서 결국 피해자 정유미가 살던 아파트 경비 조판걸을 제1용의자로 지목하게된다. 하지만 무엇하나 사건 현장에서 실마리가 될만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는 상황은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두 남녀를 피살한 송곳과 과도는 각각 서로의 지문이 묻은 감식결과가 나오면서 두 피해자가 서로를 살해한 정황이 되고 더욱 혼란에 휩싸인다. 피의자 조판걸 역시 범행을 일체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하였고 국선 변호사보다 자신의 선임한 사선변호사를 통해 혐의에서 벗어난다. 결국 사건 수사는 제자리로 돌아서고 과연 이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의 살인사건이 어떤 국면으로 돌파될 것인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아마도 작가와의 치밀한 이 두뇌 싸움이 분명하게 짙어진 듯 하다. 곧 눈에 보이는 게 모든 것이 아니고 진실이 될 수 없으며 마지막까지 방심하지말고 손쉽게 자신이 만들어놓은 덫에 빠지지 말라고 말하는 듯한..한편 끊임없이 피해자 주변 인물에 대한 탐문수사는 계속 이어지고 의심의 구석을 아무리 찔러봐도 여전히 사건의 실체는 오리무중이다. 이런 가운데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이 사건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는 듯하며 먼가 급물살을 타는 듯한 기대와 궁금증이 커져간다. 왜 피해자 아파트의 CCTV를 통해 사건에 관계된 그 어떤 인물도 범행이 벌어진 시점 이전에 분명히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범인은 유유히 자신의 행로를 따라 보이지 않게 두 인물을 살인할 수 있었는지가 미스테리한 대목이었던 것이다. 곧 범인의 침입경로를 정확히 밝혀낼 수 있어야 범행의 실체를 잡아낼 수 있는 열쇠를 얻을 수 있는 것이었고 서서히 침입흔적의 조작에 대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증거, 증언은 더욱 탄력을 받으며 수사의 막바지에 박차를 가한다.
물론 중간중간 작가가 의도한 범인 대상에 대한 착각은 아주 자연스러운 덫이 되고말았다. 나도 모르게 굳어진 심증과 거의 완벽한 추리 가설이 왠지 맞아들어가는 듯한 기분은 곧 허를 찔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움직일 수 없는 범인의 확실한 증거를 끝까지 눈치챌 수 없었으니 통쾌하게 당해버렸다. 심리트릭과 시간트릭 등 이중트릭에도 빠져보았지만 역시 범죄에서 가장 중요한 동기와 그걸 쥐고 있는 인물의 실체와 마주쳤을 때 느낀건 결국 인간에게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악의에서부터 시작된 커져가는 탐욕의 유혹은 결코 욕망의 롤러코스터를 멈출 수 없는 파멸이라는 두 글자였다.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한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희생된 운명들의 되돌아오지 않는 목소리가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인간의 내면속에 자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얼굴과 탐욕의 어두운 그림자가 더욱 두려워지기도 하는 순간이다. 현직 판사 출신답게 범죄를 바라보는 날카롭고 섬세한 시선도 괜찮았고 작품 플롯도 준수하게 잘 짜여진 느낌이어서 만족감을 느낀다. 앞으로도 더 탄탄하고 노련해진 필력으로 이 <어둠의 변호사>시리즈를 잘 이어가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