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외면하는 벽>은 내가 그 시대를 살지 못했지만 서로와 서로가 존재했던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느낄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힘이 담겨 있다. 여전히 군사독재란 시대의 암흑속에서
작가 조정래는 자신만의 문제의식과 그 시기에 겪었던 고뇌들을 작품속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날카롭게 표출해낼 수 있던 것이기도 했다.
급속한 근대화가 멈추지 않는 시대에서 점점 각박해지는 서로와 서로의 이기적인 목소리들이
부딪히는 가운데서 남겨지는 흔적들, 소통보다는 자신의 울타리를 챙기려하는 단절된 모습들,
메마른 감성들, 전쟁이 남겨놓은 씻겨지지 않는 아픔들은 내 것이 아니라할지라도 가슴 속을 할퀴는
듯한 절망과 고통처럼 느껴지는 듯 했다. 인간에게 절박해진다는 것이 무엇이고, 눈 앞에 죽음이
닥치는 듯하지만 그 긴 터널에서 살아남고자 했던 그 무언가의 갈망, 찢어지는 가난과 배고픔을
견뎌내고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살아있음을 느끼는 존재감이 얼마나 무겁고 버거운 삶의 선택인가를
대신 말해주는거 같았다.
총 8편의 단편을 거쳐가면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건 서로와 서로에게 내몰린 인간의 고통과
아픔이었다. 절망속에서 희망의 빛을 찾아나서는 한 인간의 선택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 것인지,
거리로 내몰린 어린 소년이 결국 인간들의 이기적인 탐욕과 잣대에 쫓겨 마지막에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빛을 잃어버린 좌절된 꿈의 흔적은 마음속을 먹먹하게 짓누른다. 한편으로는 희망없이 하루
하루가 지나가는 무미건조속에서 다시 손을 내밀고 기다리는 한 남자의 모습에선 가슴이 다시
따뜻해지고 인간적이기보단 사무적인 자본주의의 폐해에 익숙해져버린 소통 단절의 씁쓸함, 우리가
가장 흔히 목격하고 살고있는 아파트라는 공간속에서 발견하는 무너진 공동체의 벽, 산업화의 힘으로
삶이 윤택해질거 같았던 시골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속에 닥쳐온 불행과 인간 소멸의 단면들은
외면할 수 없는 시대의 어두운 그늘을 잘 꼬집어주고 있어 더 공감대를 형성하는거 같았다.
이 모든 것이 지나간 시대의 흔적으로만 말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오늘날 우리의 서로와 서로의 틈
사이에서 벌어지고 부딪치는 아픔과 고통의 잔재로 여전히 쌓여나가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읽고나니 나의 곁에는 누가 남겨져있고 누군가와 마주할 수 있는지, 나의 가치관과 의식이
갇혀있는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가둬둔 우물 속에서 멤돌고 있는지 돌이켜 봐야할거 같다.
가장 가까이에 함께하는 가족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수면에 떠오른 자신의 현재를 투영시켜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말이다. 나약하게 뒷걸음치거나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시대의 강 속에서 더 성숙해지고 강해질 수 있어야 자신의 든든한 바위가 버팀목이 되어 서로와
서로를 끈끈하게 지탱해내고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마음의 닫혀져 있던 문과 보이지 않는 벽이 이제 허물어지고 새롭게 이어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