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도는 이제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불법이며, 국제협약에 따라 금지되어 있습니다. 1807년 영국 의회는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1848년 카리브해에 있던 여러 프랑스 식민지가 공식적으로 노예제도를 폐지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끝난 후인 1865년에 수정헌법 13조를 통해 노예제 폐지를 선언했습니다. 브라질은 1888년 노예제를 폐지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1962년 노예제를 법으로 폐지한 지구상 마지막 나라입니다.
노예제 폐지에 관한 최초의 국제협정은 1926년 국제연맹이 채택한 ‘노예제 조약’입니다. 이 조약은 노예제를 ‘인류에 대한 범죄’로 선언하고 노예 무역상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해 어떤 국가라도 형사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후 1948년 유엔은 ‘세계인권선언’을 가결하여 모든 형태의 노예제와 강제 노동을 금지하는 인권 보호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누구도 노예제나 노예 상태에 예속되어서는 안 된다. 어떠한 형태의 노예제와 노예 매매도 금지되어야 한다. 또한 모든 사람은 어느 곳에서든 법 앞에서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
각국의 법과 국제협약으로 과거의 노예제는 공식적으로 종식되었지만, 노예제 자체는 사실상 여전히 존재합니다. 철학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1898~1979)의 말처럼 노예란 “인간을 도구로 전락시킨 상태”라고 정의한다면, 현대 노동자는 노예가 되었습니다. 사회는 노예인 노동자가 상품을 구매하고 싶다는 욕구를, 일하고 싶다는 욕구를, 한층 더 노력하겠다는 욕구를 끝없이 만들어 내기 위해 관리되고 있다고 마르쿠제는 지적했습니다.
노예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노예가 된 사람의 특징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노예는 자신 의지를 상실하고 통제를 받으며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존재입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 사람이 이곳을 마음대로 떠날 수 있는가?’입니다. 이 물음에 항상 물리적인 폭력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노예는 사슬에 묶여 있지만 기회만 있으면 도망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상황 때문에 일단 ‘노예’ 상태와 그 역할을 받아들이고 주인 뜻에 따르기 시작하면, 굳이 지속적으로 물리적인 제약이 필요 없게 됩니다. ‘노예’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해(害)를 이상한 상황으로 여기지 않고, 싫지만 어쩔 수 없는 세상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결국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다른 계층 사람들의 이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에 종사하고 이러한 상황이 실정법으로 제도화되었다면, 이것이 바로 노예제입니다.
엥겔스는 노동자를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자산을 소유한 계급의 노예라고 지적했습니다. 노동자가 상품처럼 거래되고 노동자의 몸값이 시장에서 상품 가격처럼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노동자는 사실상 노예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 노예와 현대 노동자 사이의 차이점은 과거 노예들이 공공연히 노예로 간주된 반면, 현대 노동자는 그들이 노예라는 사실이 감추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소유자도 노동자를 다른 사람에게 팔지 않지만, 대신 노동자가 자신을 팔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경제학자 헨리 조지(1839~1897)는 로빈슨 크루소와 그의 노예 프라이데이의 관계를 인용하여 엥겔스가 말한 원리를 설명합니다. 조지는 전통적인 의미의 노예든 자유인이라 불리는 현대 노동자든 결국 같은 ‘노예’라고 주장합니다. 소설 원작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프라이데이를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원작과 달리 프라이데이를 노예가 아닌 인간이자 형제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로빈슨 크루소는 미국 수정헌법 제15조(인종이나 피부색, 이전의 예속 상태(노예)에 근거해 사람을 불평등하게 대하면 안 된다고 선언한 헌법)를 읽어주며, 프라이데이가 자유롭고 독립적인 시민임을 알려줍니다.
그렇지만 크루소는 단 한 가지 단서를 덧붙입니다. 자본으로 상징되는 그 섬은 크루소 자신만이 배타적인 권리를 갖는 사유재산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랬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자유인’인 프라이데이는 하늘로 날아오르지도, 바다로 헤엄쳐 나가지도 못한 채 꼼짝없이 섬에서 살 수밖에 없을 테니, 노예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크루소가 섬[자본]을 소유한다는 것은 프라이데이를 노예로 소유하는 것과 다름없는 결과를 낳습니다.
링컨 역시 임금노동자는 사실상 노예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동자가 생산수단[자본]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회 구성원은 남의 생산수단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령 자신 밭을 가는 농부나 자신 설비업체를 직접 운영하는 설비공, 목공 일을 직접 하는 목수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 생계를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단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링컨은 임금노동자가 진정으로 자유롭게 되는 순간은 독립적인 자영업자가 될 때라고 보았습니다.
“남부 사람들은 북부에 사는 임금노동자가 영원히 그 계층에 남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작년에 남에게 고용되어 일하던 사람이 올해는 독립해 일하고 내년에는 다른 사람을 고용할 것이다. 그렇기에 자영업자가 되지 못한 사람은 의존적인 성격을 가진 자이거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이거나, 드물게 불운한 자일 따름이다.”
그렇지만 당시 미국에서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 중 3분의 2가 자기 생계를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임금노동자였습니다. 독립성과 자영업을 높게 평가하는 미국 사회에서 자신 농장에서 일하거나 자신이 소유한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은 세 명 중 겨우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미국 남북 전쟁이 일어나기 바로 전, 사회비평가 오레스테스 브라운슨(1803~76)은 북부의 임금노동 체계를 ‘임금 노예제’(wage slavery)라고 불렀습니다. 임금노동은 노동자를 가난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노예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임금노동 체계는 실제 노예 소유자가 감당해야 하는 온갖 비용과 말썽, 증오 없이도 노예제의 모든 이점을 양심의 가책 없이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교활한 악마의 장치다.” 그는 임금노동자가 노예보다 더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자본가가 될 가능성도 거의 없기에 임금노동자를 노예보다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사회이론가 조지 피처(1806~81) 역시 임금노동자가 노예보다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노예주가 노예를 부리듯 자본이 노동을 부린다”고 말했습니다. 단 차이점이 있다면 노예주는 노예가 늙거나 병들었을 때도 책임을 지고 보살피지만, 자본가는 그런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자본가 당신들이 가진 자본 덕분에 노동자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한 노예 소유주다. 그런데 노예주이면서도 노예주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는 노예주에 불과하다. 당신을 위해 일하고 당신 소득을 창출하는 사람은 당신의 노예다. 그것도 노예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노예다.”
피처에 따르면 끊임없는 가난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임금노동자는 노예보다 자유롭지 못합니다. 노예는 적어도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으며, 나중에 늙고 병들 때 노예주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노동자는 일을 하든가, 굶어 죽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유노동자는 노예보다 더 노예처럼 살아간다. 노예보다 돈을 적게 받으면서 더 오랜 시간을 더 힘들게 일해야 하며, 또 노동이 끝난 뒤 비로소 자신을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노예주가 노예를 대하는 것보다 한층 더 강력하고 완벽하게 강제력을 행사한다. 자유노동자는 일하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일상을 살아가지만, 노예는 일하든 안 하든 노예주가 먹여 살리기 때문이다. 자유노동자는 주인이 없는 노예지만, 어떤 면에서는 주인이 너무도 많고 심지어 주인이 없는 것만큼이나 상황이 나쁜 노예다.”
오늘날 노동 시장은 노동자 임금이 너무 낮아 굳이 실질적인 노예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세계적으로 노예제가 폐지된 것은 인권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구 증가와 이민, 여성 노동력이 시장에 공급되어 노동자 몸값이 하락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 1970년에 여성이 벌어들인 소득이 전체 가정 소득의 2~6퍼센트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40퍼센트를 넘어섰습니다. 예전에는 남성 혼자 돈을 벌어 가정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맞벌이를 해도 생활이 어렵습니다. 기업이 활용하는 노동력은 두 배로 증가했지만, 한 가정에 지급되는 임금은 예전보다 낮습니다. 오른 물가에 비해 한 사람에게 충분한 임금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기업만 득을 보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맞벌이 가정은 한 세대 전 혼자 벌던 가정보다 더 많은 돈을 법니다. 그래서 부부가 모두 직장에 다니면, 그 가정은 경제적으로 더 안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파산한 가정 대부분은 부부 모두가 직장에 다니는 가정입니다. 맞벌이 가정은 두 번째 월급을 거의 저축하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여성이 일터로 나갔지만, 저축은 예전보다 감소했습니다. 부부가 흥청망청 놀거나 자녀 장난감을 사주기 위해 그 월급을 다 써버린 게 아닙니다. 부모는 자신 아이를 좋은 유치원이나 좋은 초중고 학교,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좋은’ 지역의 주택 구입과 학원비에 두 번째 월급을 모두 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맞벌이 가정은 주택 융자금이나 자동차 할부금, 세금, 보험료, 학원비를 내고 나면 한 세대 전 외벌이 가정보다 쓸 수 있는 돈이 더 적으며, 어려울 때를 대비한 저축도 거의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맞벌이의 함정이 생겨났습니다. 이제 엄마들은 가정 일과 직장 일 모두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도 남는 돈은 더 적습니다. 엄마 소득은 자녀가 나중 중산층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비용으로 곧바로 투입되기 때문입니다.
직장과 집을 오가며 열심히 일하고 자녀를 돌본 결과가 파산 위험이라니 믿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아이가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합니다.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해줄 수단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맞벌이와 대출입니다. 하지만 나뿐 아니라 남들도 모두 그런 욕구와 수단이 있기에, 주택가격 상승이나 학원비 상승 같은 가격전쟁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높아진 물가 때문에 중산층 생활은 여유가 없게 됩니다. 삐끗하면, 곧 실직하거나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이혼하게 되면 더 이상 지탱해 나가기 힘들어 파산에 직면합니다.
맞벌이의 함정은 모순으로 가득합니다. 중산층 엄마는 남보다 조금이나마 더 잘 살기 위해 취업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많은 중산층 엄마가 단지 가계수지의 균형을 맞추려고 일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여성이 대학 학위를 받고 바깥일을 하는데도, 많은 가정이 전보다 더 심한 재정난에 빠졌습니다. 국가는 경제적으로 성장했을지 몰라도, 가정은 더 큰 위험에 직면했습니다. 엄마들은 월급에 대한 기대감에 일터로 뛰어들었지만, 그 월급에 내재한 위험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중산층 엄마는 함정에 빠졌습니다. 일을 계속할 수도,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대다수 여성이 일터로 쏟아져 들어가자 혼자 벌어서는 중산층 생활을 해나가는 게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토지나 공장의 생산성이 향상될수록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감소하기 마련입니다. 기계 도입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면 장인이나 전문가와 같은 숙련된 고임금 노동자가 비숙련 저임금 노동자로 대체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로 생산 과정에서 창출된 부가가치 중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부분이 점차 줄어듭니다. 따라서 생산성 향상과 임금 사이에는 반비례 관계가 나타납니다. 임금 결정에 중요한 요소는 노동자가 얼마나 많은 가치를 창출했는지가 아닙니다. 노동자가 비숙련 노동자로 얼마나 쉽게 대체될 수 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노동자를 비롯한 무산계급)는 라틴어 ‘프롤레스’(proles)에서 유래한 단어로, ‘생식기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을 뜻합니다. 따라서 법적인 지위에서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노예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에는 실질적인 차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