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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을 정치학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기 보다는 그냥 놔두는 편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믿음입니다. 시장경제는 완벽하게 작동하기에 시장에서 정부가 필요 없다는 것이죠. 애덤 스미스는 시장이 개인 이익 추구의 원리와 더불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만유인력처럼 작동한다고 보았습니다. 그 결과 경제학에서 자유방임주의 이론이 생겨났습니다. 자유방임 경제 철학은 비간섭 원리로서, 세상의 체제는 자율적이기에 더 낫게 하려고 시도해보았자 더 나빠질 뿐이므로 그냥 놔두라는 권고입니다. 18세기 경제학자들은 신이 경제법칙을 자연법칙과 똑같이 창조했기에 틀림없이 좋은 것이라고 가정하며, 경제학을 정치학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죠. 18세기 사상가들은 신이 이성적인 계획에 따라 세상을 만들었으며, 뉴턴(1643~1727)이 이성을 사용하여 신의 계획을 발견해냈다고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찮은 인간이 무한하게 넓은 신의 뜻 – 특히, 선한 신이 악(惡)을 왜 창조했는지를 결코 헤아릴 수 없다는 예전 믿음은 더 이상 새로운 뉴턴 시대에 양립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뉴턴의 발견과 이 발견 위에 세워진 자연신학의 전반적인 요점은 뉴턴이 실제로 신의 마음을 헤아렸으며, 그것을 수식으로 증명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18세기 사상가들은 악의 문제에 답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이들 추론 과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신은 지극히 그리고 완전히 선하다. 정의상 신은 악을 행할 수 없다.

· 신은 뉴턴이 밝힌 대로 이성과 논리, 수학 같은 법칙에 따라 우주를 창조했다.

· 이 두 가정은 서로 상반될 수 없다. 만약 상반된다면 신은 전능하기에 이를 미리 알았을 것이며, 신의 선함으로 인해 이성에 따라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 게다가 만약 이성의 법칙으로 인해 신이 하나보다 더 많은 종류의 세계를 만들 수 있었다면, 신은 선한 존재이기에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 가장 최상의 세계를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 따라서 이 세상은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상이다.



당시 대다수 사상가는 만약 이 세계가 가능한 모든 세계 가운데 최상이라면, 변화시킬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계의 모든 악과 고통은 신의 계획 일부이기에 전체 체계에 어떻게든 이득이 됨이 틀림없습니다. 신이 운동 법칙으로 물리 세계를 창조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스스로 작동하듯, 신은 인간 세계를 (인력이나 척력이라는 자연법칙과 유사한) 사회적 상호작용 법칙으로 창조하고, 이 법칙에 따라 가장 조화로운 사회 질서가 마련되었습니다. 이 모든 사상의 최종적인 결과는 자유방임이라는 근본 원리에 바탕을 둔 경제학 철학이었습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자유방임주의 사상은 청교도주의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며, “하지만 중세나 근대와 달리 신학적 기반을 떠난 현대 사상에서 자유방임 같은 자연 상태 이론은 공감대 형성 부족으로 불완전 이론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합니다. 















철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적어도 생산 영역에서만 ‘경제법칙’이 성립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자연에 영향 받는 생산은 필연의 법칙에 지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분배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분배는 필연이나 사실 차원[경제]이 아니라 당위나 가치 차원[정치]의 문제입니다. 생산과 분배 사이에는 굵은 분절선이 존재합니다. 그리스 금언이 말해주듯, ‘주어진 것을 선용(善用)하는 것’, 즉 우리 삶에서 주어진 것을 잘 만들어가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공정한 분배를 하려면 사람들이 따라야 할 분배의 가치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치기준이 개인 필요가 아니라 공동체의 집단적 필요에서 나온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가치기준도 자연권으로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가치기준에 정답은 없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언합니다. 따라서 가치기준의 정당성은 미리 전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는 대상이 됩니다. 공정한 분배를 위해 사회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회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끝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현실의 시장에서는 개인들 권력이 평등한 것도 아니고 개인만 자원 배분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분명히 어떤 사람은 더 큰 자원 배분 권력을 갖고 있으며, 다른 사람은 자원 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집단을 만듭니다. 그 결과 주요한 경제적 자원 대부분은 이러한 사람들과 집단들에 의해 권위적으로 배분됩니다. 토지와 화폐, 노동 같은 대부분의 주요한 경제적 자원은 항상 정치적으로 배분되고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정치와 권력이 배제된 순수한 시장에 의한 자원 배분은 불가능하며, 시장에만 맡기는 그 순간에도 시장 내부에서 정치와 권력은 작동합니다. 그러므로 경제에 정치와 권력이 부재하는 상황을 가정하거나 바라는 것은 지극히 비현실적입니다..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묻어 들어 있음’(embeddedness)이란 개념을 항상 자신 논리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인간 경제는 여러 시장이 통합되어 균형을 찾아가는 체제가 아닌, 항상 사회에 ‘묻어 들어가 있다.’ ‘묻어 들어 있음’이라는 말은, 자유주의 경제 이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시장이 그렇게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가 정치와 종교, 사회관계에 종속되어 있다는 생각을 표현한 말이다. 반면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자기조정 시장’ 체제는 거꾸로 사회를 시장 논리에 종속시킬 것을 요구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완전경쟁 자유방임 시장 이론의 전제는 만약 그 이론이 현실과 닮았다면 이론의 결과 또한 현실에 근접하리라는 추론입니다. 그런데 경제학자 켈빈 랭카스터(1924~1999)와 리처드 립시(1928~ )는 자유방임 옹호자들이 지난 수십 년간 그렇게 주장한 논의는 유감스럽게도 오류라고 지적하며, ‘차선’(次善)이론을 설명합니다. 차선이론은 ‘차선’인 시장, 즉 완전경쟁 시장에 ‘거의 근접하는’ 시장이라고 할지라도 세 번째나 네 번째로 좋은 시장, 혹은 아예 완전히 비경쟁적인 시장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보장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경제학과에 입학한 학생들이 그래프와 미적분학의 기초를 간신히 배우고 나면 느끼는 좌절감, 곧 경제학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은 완전경쟁 자유방임 시장 개념을 배울 때 극대화됩니다. 하지만 미시경제학 교과서도 이미 그 정도의 반감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완전경쟁 자유방임이라는 개념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을 분석하기 위한 준거점으로 중요하다는 설명을 덧붙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완전경쟁 자유방임 경제 모델은 실제 실물경제와 비교할 때 단순화한 것이자 추정치이기는 하지만 정책 수립은 물론 예측에도 유용하게 사용되기 마련이라고 말합니다. .















우리는 완전경쟁 시장이 실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준거점이라고 가정해보죠. 우리는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고 이성적인 개인이며, 시장에 참여하는 권한과 정보가 공평하게 분포되어 있다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가격은 시장에 의해서 결정되고 시장의 완전경쟁 조건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자유방임주의자들은 시장을 ‘가능한’ 경쟁적으로 만들기만 하면 그 결과는 이상(理想)에 확실히 근접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 점이 랭카스터와 립시가 밝혀낸 오류입니다. 만약 현실이 완전경쟁의 이상과 한 군데라도 어긋나면 최선의 결과를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완전경쟁에 가장 근접한 상태에서 얻어지는 결과일지라도 어떤 다른 차선책에서 얻어지는 결과보다 훨씬 못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완전경쟁 요건을 더 많이 충족시킬수록 – 전부 충족시키지 않는 한 – 완전효율이라는 이상에서 더욱 멀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부정적 외부효과(공해, 소음, 악취 등)가 발생하는 경우 재화 가격에 외부효과 비용이 반영되지 않습니다. 자유방임주의 수호자들은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말합니다. 어느 한 분야에서 정상적으로 가격이 매겨지지 않더라도 나머지 부문을 전부 경쟁적으로 만들면 올바른 가격 수준에 근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차선이론이 바로 그러한 정책 해법으로는 효율성을 증대시킬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일부 가격이 잘못됐으면 나머지 가격이 정확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일부 가격이 왜곡되어 있는 경제에서 다수를 시정하면 상황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습니다. 



차선이론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점은, 일반균형 모형에서 유용한 정책안을 끌어내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단순한 도구는 현실에서 무엇이 최선일지 알려주지 못합니다. 차선이론이 가져온 가장 주된 파장은 경제학자들과 그 추종자들을 ‘겸손해지게’ 만들었다고 립시는 설명했습니다. 차선이론은 극도로 이상화된 하나의 모형을 근거로 시장 효율성에 관해 한 마디로 단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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