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서점 책방연희에서 2026 서울형책방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작품으로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함께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유명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 <블레이드 러너 2049>(2021)의 원작 소설이기도 합니다. 이야기 거리가 풍성할 수 있지만 워낙 널리 알려진 나머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마침 비가 제법 오던 주말 아침이어서 아무도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는데요, 빗길을 뚫고 멀리 제주에서 온 분도 계셔서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모임 2시간 동안 길게 느끼지 않고 재미있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이번 읽기는 작품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자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느슨하고 불완전한 읽기 모임이었죠. 그럼에도 소설의 배경과 작가에 대해 먼저 알아보고, 이어서 보이트-캄프 검사 장면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 검사는 안드로이드(합성 세포이지만 인간처럼 만든 유기체)가 감정 이입(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특징을 이용하여 만들어졌구요. 안드로이드를 ‘은퇴’시키는 현상금 사냥꾼 릭 데카드가 안드로이드를 찾아내는 데 쓰던 테스트였죠.
이 장면에서 우리가 주목한 인물은 특수인(specials) J.R. 이지도어였습니다. 그는 방사능 낙진으로 인한 부작용에 지능도 떨어지는 인간, 인류 대부분이 화성으로 이주할 때 배제된 존재였죠. 문제는 그가 보이트-캄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가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차별받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점입니다. 혹시나 데가드가 이지도어를 안드로이드로 판정했다면, 이지도어는 ‘은퇴(사살)’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반대로 공감능력이 월등히 개선된 안드로이드가 이 테스트를 거뜬히 통과한다면, 우리는 이들을 인간성을 지닌 존재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이런 관점에서 이번에 저는 이지도어에 주목해보고자 했습니다. 지능이 떨어진다는 낙인도 모자라, 낙진이 세상을 덮고 있던 지구에서 결혼과 자녀를 낳는 것도 금지된 인물말입니다. 그는 특수인이라는 미명(?) 하에 실제로는 ‘치킨헤드’라 불리며 차별당하고 타자화되어버린 존재였죠. 심지어 안드로이드들은 현상금 사냥꾼으로부터 달아나고자 그를 이용하려 했죠. 반면 이지도어는 정체 모를 안드로이드들이 곤경에 처한 것을 알고 도와주려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지도어는 화성으로 갈 수 있었던 ‘선택된’ 인간과 ‘은퇴할 운명인’ 안드로이드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 혹은 이 둘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존재로도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언젠가 이 소설을 다시 읽을 때 이지도어의 존재에 주목하여 읽어보면 조금 새롭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지도어는 공감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누구보다 공감할 줄 아는 인간이었으니까요. 이런 생각을 사회로 확장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사회의 성숙도는 다수가 소수를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죠. 사회 속의 소수를 포용하고 환대할 수 없는 사회는, 인위적인 경계 짓기의 효용성을 넘어 결국 서로를 타자화하고 나아가 인간성 상실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필립 K. 딕이 우려하던 바였지요.
주어진 시간을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이지도어가 인용한 영국 시인 존 던의 “인간은 누구도 섬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가 작품 전체에서 던지는 질문,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은 이 영국 시인의 문장 앞에서 특히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이어서 참가자분들은 이 작품이 1968년에 발표되었지만, AI가 우리의 삶에 깊이 들어온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해주셨습니다. 비 오는 주말 아침에 함께 생각하고 좋은 의견을 나누어주신 참가자분들 모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