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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으로 다시 날아오르기
  • 빌헬름 슈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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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16
  • : 11,530





삶의 그네타기: 상실의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고 삶을 사는 기술

《삶으로 다시 날아오르기》

 

빌헬름 슈미트 지음

강민경 옮김 [피카] (2026)

 





사람이 태어난 이상 피해갈 수 없는 진실이 하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함께 시간을 겪어온 가족 구성원의 상실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부모, 배우자나 자녀, 혹은 반려동물의 죽음을 지켜보는 남은 이들의 슬픔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적어도 내게는 죽음을 통한 상실감을 시간이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이러한 상실감과 슬픔이 내게는 시간이 지나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다. 이제는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라는 기대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어쩌면 슬픔을 기억하는 빈도가 조금은 줄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문득 올라오는 슬픔의 강도는 시간이 지나도 약해지는 것이 아닌 것만 같다. 어쩌면 사람마다 슬픔을 느끼는 방식이나 양상은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상실감과 슬픔이 너무나 큰 나머지 여기에 잠식되어 다시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 복귀가 어려울 지경인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아니 사실, 사라진 대상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한, 결코 예전 같을 수는 없는 셈이다.

 


《삶으로 다시 날아오르기》의 저자 빌헬름 슈미트는 독일의 철학자다.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평생을 함께 했던 아내가 어느 날 식도암 판정을 받고 먼저 떠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아내의 마지막 까지 곁을 지키고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그네타기’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의 직접적인 삶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기에 어려운 이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게는 ‘상실감과 슬픔에 잠식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삶이라는 그네에 태우는 자신의 모습을 기록한 글이면서 삶을 마주하는 기술’에 가깝다. 배우자를 생각하면서 썼을 한 문장 한 문장이 얼마나 힘겨웠을까도 생각해본다. 하지만 글쓰기란 슬픔에 잠식되지 않고 애도하는 의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내게는 ‘시간이 다 해결해줄 것’이라는 식의 모호하고 조금의 도움도 안 되는 훈수를 두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오히려 삶의 엄정한 진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부정적 순간을 우리 삶에서 배제할 방법은 없다.’(94)는 것을 분명히 해둔다. 대신 우리가 그네를 타던 것처럼 삶이라는 ‘흔들림에 몸을 맡겨보라’(121)고 말한다. 내게는 흔들림에 몸을 맡기는 기술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상실의 슬픔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저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삶을 축제처럼 즐기는 일’(161)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어느 중산층 지식인의 표피적인 수사학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내가 살면서 바라는 바였기도 하다. 천상병 시인의 글귀처럼, 이 삶을 ‘소풍처럼 살다 가는 삶’말이다. 내가 속으로 생각해오던 표현을 저자가 공감하고 글로써 화답해준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줄곧 언급하는 그네타기 비유처럼, 누구나 삶에서 상승과 하강을 겪게 마련이다. 저자는 이 진실을 단순하고 모호하게 바라보거나 회피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담백하게 삶의 모습들을 지켜볼 수 있게 해준 것은 그만의 글쓰기 시간이었을 테다.

 


저자는 우리가 삶을 축제처럼 즐길 수 있으려면 필요한 것이 ‘회복탄력성’이라 말하는 듯하다. 우리가 삶이라는 통로를 지나갈 때 이 회복탄력성, 곧 삶에 대한 유연성을 기를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금 감각의 즐거움을 환기하고 삶을 축제처럼 즐길 수 있다고 말이다. 이 회복탄력성이야말로 삶에서의 쉼과 수행 사이를 반복하는 삶의 리듬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 본다. 상실의 슬픔에 압도당하지 않고 잠시 숨을 고를 여유를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충고가 모든 이들에게 해당하지는 않을 수는 있을 텐데, 분명한 것은 삶이라는 그네에 몸을 맡기지 않으면 이 ‘쉼과 수행’ 사이를 오갈 수 없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저자는 배우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을 읽고 또 읽어본다.


“나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땅에서 왔어.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갈 테지. 당신은 거기서 나를 언제든, 영원히 찾을 수 있어.”(181)


남편은 아내의 글에 다시 아내를 찾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다시금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기술을 연습할 힘을 얻은 듯하다. 이 책은 저자인 남편이 아내와 다시 만나기 전에 남은 생을 온전히 즐기고 가겠다는 아내와의 약속이었구나 싶다. 






[책속으로]

[1] "모든 물방울은 어떤 형태로든 다시 돌아온다."- P14
[2] "삶은 그네타기다."(27)

"그네타기는 응용된 변증법과 같다."(25)- P25
[3] "금욕주의는 언제나 ‘올바른 정도만’ 실천하는 것"- P45
[4] "올바른 정도란 ‘충분하다’는 뜻이다."- P47
[5] "중요한 건 삶을 축제처럼 즐기는 일이다."- P161
[6] "나는 더 정확하게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한한 광대함 속에 아내가 잠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P181
[7] "아내는 죽기 전에 나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땅에서 왔어.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갈 테지. 당신은 거기서 나를 언제든, 영원히 찾을 수 있어."

"나는 이 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정말로 아내를 언제든 찾을 수 있다는 안도가 들었다. 그 덕분에 나는 인생을 즐기는 작은 기술을 다시 연습할 수 있다. 그네를 타며."-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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