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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 24,300원 (10%1,350)
  • 2025-11-20
  • : 3,051


식민주의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라틴 아메리카의 열린 혈맥>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조구호 옮김 [알렙] (2026)

 



지난달 강원도 영월의 세계 최대 텅스텐 광산이 재개장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1980년대 중국의 저가 텅스텐 공급으로 경쟁력을 잃으면서 상동광산은 1994년에 문을 닫았는데, 30여 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는 내용이었다. 놀라운 소식이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불편한 사실이 있었다. 현재 광산의 소유권은 캐나다의 광산기업 알몬티 인더스트리스가 지분 100%를 쥐고 있다고 한다. 광산이 문을 닫은 시기, 그 빈자리에 외국 자본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추정 경제적 가치 약 60조 원에 이를 자원의 광업권을 온전히 외국 회사가 보유하고 있었다.

 


우루과이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 1940~2015)의 역작 <라틴 아메리카의 열린 혈맥>을 느릿느릿 읽는 동안 강원에 있는 상동광산에 관한 기사를 종종 떠올렸다. 이 책은 라틴 아메리카가 지난 500년 동안 겪은 식민주의적 수탈의 역사를 담아 1971년에 출간되었다. 갈레아노는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청소년기에 자동차 수리공, 외상 수금원, 간판화가, 경리원 등의 직업을 전전하며 노동의 현장을 직접 겪었던 언론인이자 작가였다. 이런 삶의 체험이 바탕이 되어서인지 그는 방대한 역사 자료와 날카로운 문장으로 식민 지배와 제국주의의 본질을 이 책에서 해부해 놓았다. 이 책이 지닌 폭발력은 군부독재 시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등 여러 나라에서 금서로 지정될 만큼 컸다고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이 책이 지닌 주제의 무거움을 조금 덜어준 것은 표지와 본문의 삽화였다. 게다가 앞뒤 표지 안쪽에도 그림이 있는 책은 드문데,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제작 과정에서 의도되었던 이런 작은 마음과 상상력을 만나는 일은 그 반가움이 배가 되곤 한다. 표지 안쪽에 있는 삽화는 아마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산타 마리아호를 타고 대서양 서쪽으로 항해를 떠난 모습(앞)인듯하다. 표지 뒤쪽의 삽화는 두 개의 십자가와 갈라진 땅 밖으로 올라온 한쪽 팔이 그려져 있는데, 원주민의 무덤처럼 보이는 장면은 유럽에서 온‘정복자’가 라틴 아메리카에 출현한 후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다.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의 눈에는 배를 타고 유럽에서 온 정복자들이 모두 ‘죽음이 신’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에 한국어로 번역된 책은 출간 5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을 저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견지한 논지는 간결하지만 단호하고 거침이 없었다. 그의 관점은 라틴 아메리카의 ‘낙후성’과 ‘저개발’이 자연적 후진성이 아니라, 무려 500년에 걸친 체계적 수탈의 결과라는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잘 모르는 제3자의 입장에서 보아도 저자의 입장은 지극히 명료하고 비판적이다. 또 한편으로는 삽화가의 경력을 지닌 언론인다운 위트가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정복자들이 규정해 온 표현)이 아닌,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의 관점에서 선택된 언어가 낯설었지만 이내 수긍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16세기 스페인·포르투갈의 라틴 아메리카 정복 이후 영국, 미국으로 이어지는 식민주의적 수탈의 연속성을 추적하며, 풍요로웠던 땅이 어떻게 빈곤과 죽음의 땅이 되었는지 집요하고 치밀하게 서술해 나간다. 금과 은, 사탕수수, 면화, 카카오, 고무, 석유에 이르기까지, 자원이 풍부할수록 그 땅의 원주민들이 더 가난해진 역설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책에서 인상적인 대목 한 가지를 꼽아본다면, 볼리비아 포토시 은광과 멕시코 금·은광 채굴 과정과 그 결과를 들 수 있다. 16~17세기 포토시 광산에서만 백만 명의 원주민이 ‘미타(mita)’라는 강제노역 제도에 의해 동원되어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 제도를 두고 “죽음으로 향하는 초대장”이라 불렀다. 광산 내부의 수은 증기와 상존하는 붕괴 위험, 혹한 및 굶주림 같은 가혹한 작업 환경 속에서 원주민들은 소모품처럼 소비되거나 죽어 나왔다. 그들은 언어를 가졌으나 정복자들의 언어와 편견에 의해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인간 이하의 존재로 대상화되었다. 정복자들의 억압과 요구에 그들은 가축처럼 무거운 짐을 나르며 쓰러져 가기도 했다. 인류의 폭력성이 현대로 오면서 감소했다고 주장하는 서구의 학자들이 있지만, 나는 이런 역사 앞에서 과연 인류가 더 나은 윤리·도덕성을 지니게 되고 성숙해 왔는지는 의문이다.


 

한편 스페인으로 유출된 라틴 아메리카 은의 총량은 당시 유럽 전체가 보유했던 양의 세 배가 넘었다고 추산된다. 이 은이 유럽의 산업혁명을 가능케 한 자본으로 전환되는 동안, 포토시 원주민의 인구는 불과 수십 년 만에 격감했다. 저자는 이 현실을 다름 아닌 ‘학살’이라 불렀다. 영화 <미션>에서 볼 수 있듯이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식민지 수탈 과정에는 교회도 유럽 정복자들의 착취 구조를 신의 섭리로 정당화하는 데 일조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렇게 빠져나간 은과 금 등의 자원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제적 몰락을 앞당겼다는 점이다. 이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라틴 아메리카의 은과 금 등을 비롯한 막대한 자원을 유럽에 유입시킨 장본인들이었지만, 건실한 제조업에 재투자되지 않았던 두 나라는 자원의 이동통로 역할만 했을 뿐이다. 실제적인 부가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주변국으로 넘어갔다는 저자의 지적은 현재 유럽의 지형도를 다시 보게 해주었다. 오늘날 번성한 유럽의 존재는 사실상 라틴 아메리카 덕분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테다.

 


갈레아노의 표현에 따르면, ‘자원은 그 땅에 있되 이윤은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형태는 각각 달라도 구조는 닮아있다. 500년 전 포토시의 은이 스페인 왕실의 금고를 잠시나마 채웠듯, 강원도의 텅스텐 역시 그 수익의 핵심이 어디로 귀속되는지 관심을 가지고 물어볼 일이다. 우리의 경우 구한말 시기에 이미 전국 각지에 있는 광산을 소유했던 것은 외국의 자본이었다. 우리 땅에서 생산된 금과 은, 구리, 철, 석탄 등을 소유했던 국가는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이었다고 한다. 내가 상동광산에 관한 기사에 주목한 이유는 국내 광산을 소유한 외국 기업과 자본의 존재보다는 자원에 대한 서구 문명의 집착과 욕망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실감,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구조가 계속되리라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눈여겨보게 되는 지점은, 분노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가 겪었던 현실에 대한 저자의 구조적 인식이다. 수탈은 폭력을 수반하곤 하지만 이것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폭력을 수행하는 주체뿐만 아니라, 자본과 시장의 논리, 그리고 때로는 사람들의 무지와 무관심 속에서 조용히 이루어지기도 한다. 출간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열린 혈맥>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이 땅에서 나오는 자원이 이곳에 사는 이들의 삶을 위해서도 충분히 쓰이고 있는지 자문해 볼 수 있겠다. 이 책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과 그 위에 살고 있는 우리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강원도의 텅스텐 광산이 열렸다는 소식에 환호하고 주가를 검색하기에 앞서, 이 책을 읽은 우리는 갈레아노처럼 질문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땅의 혈맥은 지금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또 내일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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