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스파르의 ‘완벽한’ 일일(一日), 또는 일일(日日)
- 《가스파르의 하루》
아르노 네바슈 지음
안의진 옮김 [바람의아이들] (2025)
조각가 콩스탕탱 브랑쿠시의 작품을 둘러싼 예술 논쟁과 재판을 소재로 삼았던 그래픽 노블 《이것이 새입니까?》(2024)로 국내에 소개되었던 아동문학 작가/삽화가 아르노 네바슈가 이번에는 우리 삶의 일상에 주목했다. 《가스파르의 하루》(2025)에서 작가는 도시의 환경미화원 가스파르의 하루, 혹은 매일의 모습을 담은 그림책을 만들어 냈다. 작가가 전작 《이것이 새입니까?》에서 그림책과 예술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화두를 던졌다면, 이번에 출간된 《가스파르의 하루》는 삶을 예술처럼 만드는 가스파르의 일상을 소개한다.
도시는 현대인이 살아가는 제2의 자연이기도 하다. 문명의 상징인 거대 공동체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구성원 각자가 역할을 충실해 해내는 과정 속에서만 도시는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스파르의 하루를 따라가 보면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존재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리 주변에는 도시의 행정을 맡은 ‘눈에 보이는’ 이들도 있지만, 가스파르처럼 새벽이나 밤부터 일을 시작하는, 잘 ‘보이지 않는’ 이들도 많다. 작가 아르노 네바슈는 이처럼 우리의 삶을 지속적으로 영위할 수 있게 해주지만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던 우리 주변의 영웅들을 소환한다.
가스파르는 매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밤새 쌓인 도시의 쓰레기를 수거하러 나간다. 쓰레기 수거차를 타려면 도시가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집을 나서야만 한다. 가스파르는 이른 새벽 시간을 아주 좋아한다. 그는 쓰레기 수거차를 모는 카를로스, 쓰레기를 수거하는 동료 엘사와 함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한다. “엘사와 가스파르가 지나간 자리는 늘 깨끗해져요.”란 문장이 마음에 들어 책에 잠시 머문다. 가스파르와 동료들은 정오가 되기까지 매일 3톤에 가까운 쓰레기를 수거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일을 스스로 인정하고 매일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이들이다. 이렇게 힘들고 궂은일을 태어나면서부터 좋아할 사람은 없을 테지만, 분명한 건 이들이 없어서는 결코 안 될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고 오염을 막기 위해 도시는 수백 명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쳇바퀴 돌 듯 매일 똑같아 보이는 일상 속에서 가스파르는 ‘사소하고 재미있는 일들’을 찾아낸다. “가스파르에게 가장 소중한 건, 매일 아침 마주치는 작은 순간들이에요.”이처럼 그는 매일 반복되는 소소한 만남들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다. 이 ‘소소한 만남’ 중에서도 그가 가장 기대하는 시간은 매일 노란 우비를 입고 킥보드를 타는 꼬마를 만나는 일이다. 가스파르가 매일 아침 킥보드 타고 지나치는 꼬마를 보는 일은 그에게 매일 거쳐야하는 개인적인 의례와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매일 반복되는 소소한 만남이 가스파르에게는 소중한 일과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노란 우비를 입은 꼬마를 만나지 못하게 되는데, 가스파르는 그 꼬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해 하는 듯하다. 쓰레기 더미를 자세히 보니 꼬마가 타던 킥보드가 고장 난 것을 알고 집에 가져와 수리를 한다. 그리고 고장 난 킥보드 부품들을 가지고 다시 조립하여 꼬마 집 앞에 놓아둔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도시의 쓰레기를 수거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버려지는 물건들에 다시 생명을 불어 넣는 가스파르의 관심과 행동이 꼬마의 하루를 행복하게 했을 것 같다.
이쯤 되니 문득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생각났더랬다. 영화의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는 일본 시부야의 공중화장실 청소부다. 가스파르처럼 도시가 아직 잠들어 있는 새벽에 일어나 공중화장실을 매일 청소한다. 또한 자신이 하는 일에 책임감과 정성을 다하는 인물이다. 점심시간에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매주 현상/인화하여 결과물들을 보관하기도 한다. 여기에 음악 감상이나 독서 등의 취지를 꾸준히 이어나가는데, 그는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는 듯 하다. 자신만의 생활과 마치 의례와도 같은 개인적인 일상의 행위들로 하루가 채워져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일상의 모습 또한 가스파르의 일상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환경미화원 가스파르나 공중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가 공통적으로 내게 말해주는 것은, 이들이 일상의 예술가와 같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반복되는 일상의 삶을 예술로 만드는 이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의 의미는 조금 느슨하게 말해 ‘감성적인 반복을 통해 인간이 주체로 만들어지는 의례’로 보았다. 이는 일본의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의 책 <모두를 위한 철학 입문>에서 가져온 표현이다. 현대인은 타인이 부여하고 강요하는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곤 한다. 여기에 나의 것이 아닌 ‘의미’가 나의 권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 아닐까 싶었다. 사사키 아타루는 우리가 반복적인 의례를 통해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주체로 되어간다고 말한다. 다시 정리하면, 사사키 아타루의 예술과 의례의 의미를 적용해볼 때 내 눈에는 가스파르나 히라야마가 일상의 의례를 예술로 만드는 이들로 보였다는 점이다.
작가 아르노 네바슈의 <가스파르의 하루>는 이제 내게 새로운 인식을 주고 있다. 가스파르나 히라야마는 우리의 공적 삶을 지속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숨은 영웅일 뿐만 아니라, 반복되는 자신의 일상을 예술로 만들어 나가는 ‘일상의 예술가’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또한 새롭게 느끼는 시대적 징후로서 현대인의 삶이 공동체의 기억을 담은 집단 의례의 시대에서 개인적 의례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 세대 이후에는 이제 조상의 제사를 집에서 지내는 이들이 매우 적을 것이다. 대신 개개인 각자 자신만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고 만들어 나가지 않을까. 이처럼 앞으로는 개인적 의례, 혹은 일상 속 의례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 같다. 결국 가스파르가 노란 우비를 입은 꼬마와 느슨한 만남이라도 기대하듯 타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일, 그리고 가스파르가 이들의 삶과 얽히는 모습은 그와 같은 일상 속 예술가의 ‘일일’(一日, 하루) 혹은 ‘일일’(日日, 매일)을 더 완벽하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 여기서의 ‘완벽함’은 충만함의 정도에 더 가깝다. 가스파르는 우리에게 ‘하루’, 나아가 ‘매일’의 일상을 이처럼 충만하게 보내는 법을 알려준다. 우리의 삶은 가스파르의 하루처럼 이렇게 작지만 ‘완벽한/충만한’ 일상의 의식, 일상의 예술로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
[1] "집을 나설 채비를 하는 가스파르는 고요한 이른 새벽 시간을 아주 좋아해요."
[2] "엘사와 가스파르가 지나간 자리는 늘 깨끗해져요."
[3] "가스파르의 하루에는 매일 사소하고 재미있는 일들이 있어요."
[4] "가스파르가 가장 기대하는 순간은 바로 이 골목을 지날 때예요. 여기서 늘 노란 우비를 입은 꼬마를 마주치거든요."
[5]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고 오염을 막기 위해서는 수백 명의 손길이 필요해요."
[6] "가스파르에게 가장 소중한 건, 매일 아침 마주치는 작은 순간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