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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처럼
  • 다니엘 페낙
  • 9,000원 (10%500)
  • 2018-11-05
  • : 2,533





건너뛰며 읽을 독자의 권리

- 《소설처럼》

 


다니엘 페나크 지음 | 이정임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3, 2판)

 




《소설처럼》는 모로코 카사블랑카 출신의 작가 다니엘 페나크의 독서론을 담은 유쾌한 에세이다. 목차를 보다가 책의 후반부에서 ‘침해할 수 없는 독자의 권리’ 10가지를 말하는 글들을 보고 흥미가 생겼다. 이 10가지 권리 가운데 ‘건너뛰며 읽을 권리’를 말하는 글에서 페나크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아이들이 《모비 딕》을 읽고 싶은데 멜빌이 고래 사냥의 장비며 기술을 한도 끝도 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바람에 번번이 도중하차할 수밖에 없다면, 읽기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그 대목을 건너뛰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나머지 내용들이야 어찌 되었든 겅중겅중 건너뛰며 열심히 에이하브 선장을 쫓아다니고 볼 일이다. 에이하브 선장에 죽기 살기로 흰 고래를 쫓아다녔듯 말이다!”(199)


 

일반적으로 소설은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읽으라고 말한다. 이야기에는 이어지는 흐름이 있고, 주로 초반에 제시되는 인물이나 장소 혹은 환경과 관련한 배경정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조언은 특히 소설의 경우, 수긍할만하다. 어느 정도 이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모비 딕》처럼 포경선이 바다로 나간 후의 사건들이 무한히 옆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듯 보이는 이야기일 경우 참 곤란해진다. 고래 분류에 대한 이야기며, 고래 해체 과정을 모두가(내게는 흥미롭지만) 흥미로워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페나크의 불평대로 중간에 책을 덮느니, 그가 제시하는 조언처럼 지루한 부분을 넘기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착실하게 읽도록’ 교육받은 독자일수록 중간을 건너뛰고 읽기란 쉽지 않다. 소설을 읽는 내내 기분이 찜찜한 것이다.


 

이를 예상한 듯, 저자는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까지 교과서적으로 완독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질 것을 말한다. 소설까지도 말이다. 이 제안에 용기를 내어, 나 역시 책의 앞부분을 대부분 건너뛰어 곧바로 ‘건너뛰며 읽을 권리’란 글부터 읽어본다.

 


저자에 따르면, 원래 이것이 어린 시절부터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같은 소설을 읽어온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원래 읽기란, ‘소설처럼’ 읽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한 가지 더. 이 읽기 방식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저자가 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어린 독자의 경우, 건너 뛸 부분을 아이들 스스로 결정할 것! 바로 이점이다. 어쩌면 이 읽기 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른들의 잣대로 “형편없이 잘리고, 훼손되고, 쪼그라들고, 말라비틀어진 몰골이 되었다가, 종국에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답시고 빈약하기 짝이 없는 언어로 다시 쓰이는 참담한 지경”(200)에 이른 책을 아이들 손에 쥐어주지 말 것! 어린 독자들에게는 그들 스스로 책을 고르고, 건너뛰고 상상할 권리가 있다! 이것 또한 어린 독자를 하나의 인격으로 인정하는 일 아닐까.




 

[1] "만약 아이들이 《모비 딕》을 읽고 싶은데 멜빌이 고래 사냥의 장비며 기술을 한도 끝도 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바람에 번번이 도중하차할 수밖에 없다면, 읽기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그 대목을 건너뛰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나머지 내용들이야 어찌 되었든 겅중겅중 건너뛰며 열심히 에이하브 선장을 쫓아다니고 볼 일이다. 에이하브 선장에 죽기 살기로 흰 고래를 쫓아다녔듯 말이다!"(199)
- P199
[2] "《모비 딕》이나 《레미제라블》이 졸지에 150페이지짜리로 줄어들어 형편없이 잘리고, 훼손되고, 쪼그라들고, 말라비틀어진 몰골이 되었다가, 종국에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답시고 빈약하기 짝이 없는 언어로 다시 쓰이는 참담한 지경에 이를테니 말이다! 그건 마치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열두어 살 먹은 아이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다시 그려보겠다고 덤비는 격이다."(200)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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