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말 사전이라는 제목만 보고 무슨 이야기일지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쌍시옷이 들어가는 욕(~ㅅㄲ, ㅆㅂ같은), 외국어욕 같은 것을 떠올렸고 이 책이 욕의 기원을 알려주는 책인가 싶었어요. '이 욕의 뜻이 얼마나 상스럽고 성적인지 알고나면 도저히 쓸 수 없을걸 ㅎㅎㅎ' 이런 느낌의 책인 줄 알았지요. 그런데 욕의 종류가 책을 한 권 가득 채울 만큼이었던가 의아해 하며 아이들과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펼쳐 읽었을 때 그런 욕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어요. 대신 일상생활에서 편견과 갈등을 부추기는 나쁜 마음을 은연중 만들게 하는 말들이 나왔지요. 어, 이런 말도 나쁜 말이었어?????
2학년, 5학년 오누이와 책을 읽는데 '사전'이라는 특성때문에 함께 읽기에 요령이 필요했습니다. 순서대로 그냥 읽어주니 흐름이 종종 끊기더라고요. 지루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나쁜말 씨(나쁜 말씨를 사람이름으로 바로 쓰다니!ㅎㅎ)가 경험하는 상황을 실감나게 읽어주면서 '이렇게 평범한 대화에 나쁜 말이 어디 숨어있었을까?' 퀴즈를 내고, 정답을 찾아보고 (말 뜻을 몰라도 느낌으로 쉽게 찾아요ㅎ), '너라면 어떻게 바꿀래?' 생각을 나누며(작가님이 대체한 낱말보다 창의적인 대체어가 막막 나옵니다. 웃기고 기특해요) 며칠에 나누어서 읽었습니다.
이 책을 함께 읽으니 아이들과 대화거리가 정말 풍성해진다는게 좋은 점이었는데요, 아이들이 이런 말을 쓰는 장면을 보거나 들었던 경험을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저에겐 익숙한 말이지만 요즘은 잘 쓰지 않는지 아이들이 전혀 모르는 나쁜말들은 어떤 때 쓰이는지 질문 받기도 하면서 '왜 이 말이 나쁜지'에 대해 일러줄 수 있었어요.
사실 성차별, 직업차별, 장애인 차별 등 차별과 편견이야기를 아직 아이들이 생활에서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나쁜말 사전]을 함께 읽으면서 차별과 편견을 막는 예방 주사를 맞은 것 처럼 아이를 준비시킬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읽어주면서 어른인 제가 더 찔리기도 했지요. 둔감하게 습관처럼 썼던 말이 꽤 많았거든요.
제가 아이들과 책 읽는 장면을 먼 발치서 듣던 남편이 '그런데 이 책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그런말까지 아이들한테 나쁜 말이라고 가르치는 건 유난스러운 것 같은데?'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출처도 찾아봤어요. 이게 작가님의 개인적인 관점에서만 작성된 목록이 아니라 국가에서 지원한 연구 결과와 대학의 연구진들이 작성한 논문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는 것을 알고 정말 뜨끔했습니다. 편견과 차별의 언어를 쓰는 이들은 자신이 정의롭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저와 남편이 보여주고 있더라고요.
다만 읽어나가며 아쉬웠던 것은 이제는 아이들이 잘 쓰지 않는 낱말들이 간혹 있었고 지금 아이들의 입말 중에서 고민이 필요한 말들도 들어갔다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기 유튜버의 영상이나 게임언어, 개그프로그램 같은데서 무분별하게 가져다 쓰는 말들도 많으니까요. 이런 바람을 담아 나쁜 말 사전이 개정판으로 해마다 나오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