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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mostred
  • 소년이 온다
  •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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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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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광장에서 총에 맞아 쓰러진 정대를 버려두고, "저격수의 눈에 띄지 않을 곳이 어디일까만을 생각하며 벽에 바싹 몸을 붙인 채 광장을 등지고 빠르게" 걷지만 않았다면, 동호는 상무관으로 가지 않았을 테고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도청에 남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학교 3학년밖에 안 됐으면서도 시민군들에게 나이를 높여 속여가며 필사적으로 도청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쓰러진 친구를 버려두고 “달아난” 경험을 일찍이 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러니까, 어차피 정대가 죽었더라도 그가 모르는 곳에서 죽었더라면,

동호는 5.18 희생자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제, <오마이뉴스>에는 "오월의 가수" 김원중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전남대 정문 앞에서 계엄군을 향해 첫 번째 돌을 던졌"다가 외갓집으로 가 열흘 동안 꼼짝 않고 숨어 지냈던 김원중은 "그 사건(계엄군의 살육)도 충격적이었지만 두려워서 도망가 숨었던 것도 내겐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고 증언했다. 


도망가 숨는 나를 발견한다는 것.

이성이 마비된 채 짐승 같은 생존 본능만 두근대는 나 자신을 맞닥뜨린다는 것. 

인간이 존엄한 존재라면 그것은 존엄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일 것이다.

존엄하지 않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프리모 레비는 포로수용소에서 포로 생활 도중에 자살이 일어난 경우는 드물다면서, 그 이유가“자살은 동물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인데 라거에서는“노예가 된 동물처럼”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존엄이 무너지면 동물이라는 뜻이다.

물론 계속 동물 상태에 머문다면 자살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굳이 살아내겠지만,

대부분은 위기 상황이 끝나고 인간으로 돌아와 자신의 ‘동물 상태’를 바라보게 된다.

거기가 고통이 밀려오는 지점이고, 자살이 가능해지는, 아니, 간절해지는 지점이다.

아우슈비츠 생존자는 물론이고 5.18 생존자 중에서도 자살자가 많은 이유는 그래서다.

극적으로 살아났지만,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던 생존이었지만,

존엄이 무너진 자리를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도망가 숨는 나’를 경험한 김원중과 동호는 그때부터는‘비겁하게’살아남은 부끄러움에 맞서 생존 투쟁을 벌여야 한다. 외부의 적도 없고 종전도 없을 긴 싸움.

김원중들과 동호들. 우리 광주가 아직까지 싸우고 있는 무엇.

이들에게는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총을 쏜 자들의 잘못이라고 천 번 만 번이라도 말해주어야 하지만,

총을 쏜 자들과 그 지지자들은 아직까지 김원중과 동호들을 폭도 취급하며 조롱한다.


"김진수의 생각에 대해선 알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이 죽으리라고 예상하면서도 도청 밖까지 나갔다가 되돌아왔던 걸까요. 아니면 나처럼, 죽을 수도 있지만 살 수도 있다는 생각, 어쩌면 도청을 지킬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평생 동안 부끄러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낙관에 몸을 실었던 걸까요."


계엄군이 쳐들어오기로 예정된 밤에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들은, 물론 자신들이 도청을 포기했을 때 총구가 일반 시민들에게로 향할 거라는, 즉 자신들이 사선을 지켜야 한다는 대의도 있었고,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양심의) 느낌"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도청을 사수했던 가장 큰 동기는 위의 생존자가 증언하듯이, "평생 동안 부끄러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낙관", 다른 말로 하면, 도저히 평생 동안 부끄러움에 시달리며 살 수는 없다는 생생한 비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부끄러움을 알았다.

부끄러움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다.

총칼보다도 더 무섭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를 광장에 버려둔 중학교 3학년 동호처럼, 계속되는 진압 속에서 상당수들이 부끄러움과 치욕을 경험했을 터였다. 

이 부끄러움이 양심일 것이다.

존엄을 저버린 수치를 아는 것.


어제, 신동아에 실렸다는 전두환과 이순자의 기사가 인터넷을 달궜다. 


"광주하고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어느 누가 총을 쏘라고 하겠어, 국민에게."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자신은 발포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위치였다며, 전두환은 발포 명령을 전면 부인했다. 무서워서 백담사로 쫓겨갔다면서, 이순자는 마치 자신이 어떤 국가 폭력 같은 것의 희생자라도 되는 양, 노태우에 대한 원망과 분노까지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억울해 죽겠다는 듯이.


여기에는 양심이 없다.

애초에,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명령한 자에게는 양심이 없었고, 애초에 양심이 없던 자는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반성하고 용서를 구할 양심도, 당연히 없다. 

전범 재판을 받던 나치들이 대부분 책임을 전가하고 부인하며 반성하지 못했던 것처럼, 

일본인들이 아직까지 아무런 사죄를 하지 않는 것처럼,

세월호 선장과 생존 승무원들이 책임을 발뼘하며 되레 억울함을 호소하듯이,

가해-피해 상황이 만들어지면, 그 상황에서 가해에 섰던 치들은 이미 양심을 버리기로 선택을 했으므로 새삼 버린 양심을 찾아와 사죄 따위 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버렸던 그 순간에 양심은 공중분해되어 새삼 다시 찾으려 해도 찾기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누가 반성을 할까.

김원중과 동호가 한다. 

김원중과 동호가 유난히 맑고 투명한 양심의 소유자들이기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

그보다는, 애초에 피해자가, 피해자라는 위치가, 피해자라는 위치만이,

반성과 사죄와 양심의 가책과 부끄러움을, 그리하여 심지어 자살까지도 가능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죄가 가벼울 때 반성도 가능한 것이고,

내 의지와 크게 상관없이 존엄이 깨졌을 때 부끄러움도 가능한 것이다. 

내가 적극적으로 존엄을 배반하지 않았을 때에나.


군인이 옥상에서 저격한 총알에 쓰러진 친구에게 달려나가지 못한 동호는,

"아무 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라며 도청에 남는다.

부끄러워서. 

정대를 쏜 군인보다도 당장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이 부끄러움을 지고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단 며칠의 경험으로 절절하게 알기에.  

도청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에 상무관에서 같이 시신을 수습하던 은숙 누나가 "같이 가자, 동호야"라며 손을 내밀자, 동호는,“계단으로 날쌔게”달아난다.“겁에 질린 얼굴로, 마치 달아나는 것만이 살길인 것처럼.”그러고도 동호는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서서" 떨었고, 은숙 누나와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는 "살고 싶어서, 무서워서" 눈꺼풀이 떨렸다. 그렇지만, 맞다. 동호에게는 도청 밖으로 끌려나가지 않으려 도청 깊숙이로 "달아나는 것만이 살길"이었을 것이다. 그것만이 부끄러움을 피해 달아나는 길이니까. 당장 총칼도 무섭지만, 정대를 버려두고 나서 겪고 있는 부끄러움의 공포가 훨씬 더 크니까.


한편,

광장에서 시위를 하다가 저격수의 총에 맞아 동호의 손을 놓치고 광장에 쓰러졌던 정대는 영혼이 되어 군용트럭에 실려 숲에 버려지는 제 비루한 시신을 따라간다. 거기서 정대의 영혼이 발견하는 것도, 심지어 영혼이 발견하는 것도 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증오다.


“몸들의 높은 탑 아래 짐승처럼 끼여 있는 내 몸이 부끄럽고 증오스러웠어.

그래, 그 순간부터 내 몸을 증오하게 되었어. 고깃덩어리처럼 던져지고 쌓아올려진 우리들의 몸을. 햇빛 속에 악취를 뿜으며 썩어간 더러운 얼굴들을.”


희생자라는 것은, 굳이 정대의 영혼까지 불러내지 않더라도, 이런 것일 것이다. 

뿌리 깊게 덧씌워지는 자기혐오. 부끄러움.

존엄이 말살되는 순간 불가피하게 밀고 들어오는 수치.

뿌리깊게. 

영혼까지.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희생자라는 것은. 부끄러워 할 수 있는 위치라는 것은. 가해자가 아니라는 것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저 가해자들이 안간힘을 쓴다 해도,

우리는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내가‘작은’가해자가 되지 않기를,

평생 부끄러움을 지고 생존 투쟁을 벌일 수 있기를,

부끄럽게 내 패배를 혐오할 수 있기를,

염원할 밖에.


가해와 피해의 역학에 대해 누구보다 치밀하게 경험적으로 파고들었던,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는,

2차대전이 끝나고 40년쯤 뒤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40년 동안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많은 책을 냈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아 길렀고, 문학적으로 성과를 거뒀지만, 나치의 만행에 버금가는 학살들이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횡행하고, 2차대전 중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과 같은 일들이 충분히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예감하며, 이제나마 잠들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듯이 홀연히 떠났다.


결국,

상처의 회복과 치유 따위는 불가능한 것일까.

희생자들만이 끝끝내 희생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가해자는 죽었다 깨나도 사죄하지 않을 것이므로, 고통의 원인과 책임과 결과가 고스란히 희생자의 몫으로 떨어진다. 


폭력의 주체가 되느니 부끄러움을 지고 살아가는 희생자가 되는 편이 낫다는 위로는 그래서 아무 위로가 되지 못한다.

분명히, 다른 길도 있을 것이다.

부당함과 폭력을 개인들에게 꾹꾹 감수시키는 길 말고,

좀 더 정의로운 길.

역사 청산과 책임자 처벌의 경험이 없는 우리는 이 부당함을 당연한 세상 이치인 양 받아들이고 살아가지만,

누군가들에게 가해진 물리적, 정서적, 정신적 죽음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

김원중과 동호는 어느날 느닷없이 "도망가 숨는 나"를 발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존엄하지 않은 인간의 수치와 혐오를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당연하지 않다.

우리의 고통은. 패배는. 부끄러움은.




* <채식주의자>도 좋지만, <소년이 온다>가 더 좋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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