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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서재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후 집어든 책이다.
학술적으로  여러 학자들이 꼼꼼히 분석한 점은 마음에 들지만, 한자가 너무 많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저자들 입장에서는 생활한자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한글 전용화 세대이다 보니 솔직히 여기 나온 한자들, 정말 기초적인 거 아니면 못 읽겠다.
좀 더 대중적으로 읽히기 위해 한글로만 쓰던지, 아니면 한자 옆에 한글을 병행 표기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실 이재난고처럼 덜 유명한 원저들은 대중들이 접하기 어려운 만큼, 학자들이 풀어서 설명한 이런 시도들이 참 유용하고 값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중 수준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종종 망각하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대중을 위한 교양서가 아니라 전공자를 위한 책 같기도 하다.
내용의 2/3 정도를 이해한 것 같다.
그렇지만 구성도 탄탄하고 무엇보다 이재난고라는 방대한 책을 여러 명의 학자들이 매달려 찬찬히 뜯어 봤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이런 신뢰할 수 있는 저자들의 학문적 접근이 보다 대중적인 차원에서 많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황윤석이라는 조선 후기 학자는 높은 벼슬을 한 사람도 아니고 시대적으로도 임진왜란 같은 격동기가 아니다 보니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재난고라는 방대한 분량의 문집을 남겨 후대인들로 하여금 영정조 시대를 꼼꼼히 복원할 수 있게 해 준다.
마치 미암일기가 조선 전기 사회를 알려주듯 말이다.
다만 고위 벼슬을 역임한 유희춘과는 달리 황윤석은 제일 높히 올라간 벼슬이 종 6품의 하위직이다 보니 중앙 정계에 대한 식견이나 정보는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승정원에서 발간되는 조보를 지방에 있을 때조차 매일 구해 보려고 애를 썼고, 호남제1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중앙 정계 인사들과 많이 교류했으며 본인 자신이 박학다식을 추구한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에 정진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정보를 후대인에게 제공한다.
재밌는 사실은, 황윤석의 아버지가 천석꾼의 부자였고 무엇보다 황윤석 자신이 학문에 있어서는 호남제일인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당대 최고의 학자였으나 정작 문과는 한 번도 급제를 못했다는 것이다.
조선의 관리는 곧 유학자를 뽑는 것과 다름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대과에 합격한다는 것이 요즘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는지, 아니면 후기로 올수록 지방 유생이 정계에 진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만큼 폐쇄적으로 변질되었는지 궁금하다.
즉 황윤석이 대과에 급제할 만큼의 수준은 못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충분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과거제가 워낙 폐쇄적이라 급제를 못한 건지 정확히 모르겠다.
이런 걸 보면 신숙주나 이이처럼 역사에 이름을 남긴 관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당대에는 엄청난 거물들이었던 것 같다.

황윤석의 아버지는 천석꾼이었고 자식들에게 재산을 분해하면서 황윤석은 5백꾼 지주가 되지만, 흉년에는 큰 타격을 받을 정도로 당시의 식량 사정은 열악했다.
저자의 말마따나 5백석 지주면 당시 상위 0.5% 내에 들 정도로 엄청난 부자인데도 말이 없어 서울 출타를 못하고 흉년이 들면 하루 두 끼로 연명했을 만큼 식량 걱정을 해야할 정도니, 하위층들은 흉년 때 말그대로 굶어 죽는 일이 속출했을 것이다.
역사의 진보가 과연 타당한 말인가 싶다가도 이런 부분을 읽을 때마다 적어도 생존 측면에서는 확실히 진보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황윤석은 전라도에 거주했기 때문에 한 번씩 서울로 갈 때마다 교통비가 많이 들었다.
특히 서울의 하위직에 근무할 때는 집을 구입하지 못해 오늘날로 치면 하숙을 했는데 주인에게 월급을 전부 주고도 늘 모자라 빚까지 진다.
드라마 허준에서 유도지가 내의원에 합격한 후 상경하여 집을 사고 하인을 부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실적으로 보면 굉장한 부자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지방 현감으로 내려간 후는 흑자로 돌아선다.
수령의 횡령이나 포탈 행위가 요즘 인식보다 훨씬 느슨했으며 어느 정도는 관례화 됐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 역시 후대로 갈수록 제한이 더욱 엄격해져 지방 수령의 재정 유용 범위가 축소된다.
삼정의 문란이니 하면서 후기로 갈수록 행정체계가 무너진 것처럼 보이나, 그것은 왕조 말기 현상이었고 적어도 18세기에는 조선왕조는 더욱 법적인 탄탄함을 더해갔음을 보여준다.
문득 드는 생각이, 왜 조선 시대에는 관혼상제 같은 예절을 차리는데는 그렇게도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고 마치 그것을 인간성이나 도의 완성으로까지 생각했으면서, 정작 청렴결백이나 만인평등 같은 기본적인 불변의 도덕 진리에 대해서는 둔감했냐는 것이다.
실생활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예절을 잘 차리는 것이 성인의 기본 조건으로 인식되는 대신, 정말 사회를 아름답게 꾸려 나갈 수 있는 덕성들, 이를테면 이웃을 사랑하고 남을 배려하고 청렴결백 하게 공무를 처리해야 사회적 권위를 얻을 수 있는 진짜 성인으로 간주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인간은 정말로 이기적인 동물이고 결단코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 것 같다.
사회의 발전은 정말로 개인개인의 이기적인 욕구들이 모여 조화를 이룰 때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아담 스미스의 견해는 참으로 탁월하다.

어려운 한자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고 재밌에 읽은 책이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꽤 두꺼운 분량이지만 소설책을 읽듯 한 번에 쭉쭉 읽을 수 있다.
더불어 정치 대신 조선 시대의 문화상에 대해 관심이 증폭됐다.
관련 서적들을 더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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