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신간 코너에 꽂혀 있던 책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빌리게 됐다.
따로 메모해 둔 책이 아니라 이번에 안 빌리면 영영 못 보게 될까 봐 항상 신간을 먼저 빌리다 보니, 기존 리스트에 있던 책들이 계속 밀리게 된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책만 보며 살 수 있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은퇴 후의 삶이 기다려지면서도 정작 눈이 나빠져 원만큼 못 읽게 될까 봐 제일 무섭다.
남들은 퇴직 후 돈 걱정을 제일 많이 하던데 나는 시력이 진심으로 가장 큰 걱정이다.
아빠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하필 시신경에 문제가 생겨 한동안 앞이 안 보이게 됐다.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아빠는, 당시에 자살 사고가 너무 커서 정신과 진료까지 받았던 적이 있는데 그 절망감과 공포가 진심 이해가 된다.
벌써 40대 후반에 들어서는데 매일 열심히 읽어야지 하는데도 사실 집에 오면 너무 피곤해서 양만큼 읽지를 못한다.
이번 책은 국악에 관한 책인데, 듣는 것에 약해서인지 사실 음악, 그것도 국악에 대해서는 전혀 흥미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제목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인문학"으로 읽는 국악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기악곡이 아닌 노랫말이 있는 민요 등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사용되던 한자나 사투리가 많고, 직접 듣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노래의 가사를 읽어서인지 해설을 봐도 이해가 잘 안 된다.
직관적으로 와 닿지가 않는다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 전통적인 우리 노랫가락들이라 그런지 저자의 해설을 찬찬히 읽어 보면 농사를 짓고 살아가던 우리 조상들의 삶이 그려지는 것 같아 흥미롭다.
책에서 배우던 시조들, 이를테면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라든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이런 시조들이 곡을 붙여 노래로 불려졌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전해 내려울 수 있었다고 한다.
과연 지식인 양반들이 기생들이 따라주는 술을 마시며 우아하게 한 자락씩 뽑았을 법한 가락들이다.
이런 양반문학들이 기층으로 내려와 하층민들의 일상적인 삶의 애환과 합해져 민요가 됐다고 한다.
요즘은 민요나 국악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는 듯하여 쉽게 즐길 수 없어 아쉽다.
판소리는 지루한 줄만 알았는데 고등학교 때 무슨 수련회에서 춘향전의 사랑가를 배웠던 기억이 난다.
의외로 너무 재밌어 다른 건 몰라도 춘향전은 그 후로도 몇 번 찾아서 들어봤다.
확실히 문화가 살아 있으려면 현재의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형식으로 발전해야 하는 모양이다.
<인상깊은 구절>
208p
우리 국악 노랫말을 들여다보면 그 주제가 대부분은 전통사회의 윤리의식을 강하게 표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다 하더라도 한 낭군에 대한 지고지순한 여인의 기다림이 대부분이다. 판소리 <춘향가>가 이를 대표한다. 기다리던 여인이 남자를 배반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 내용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삼강오륜이라는 유교적 덕목을 기본으로 판을 짜고 있는 것이다.
노랫말에서 충과 효를 기본으로 하는 조선적 질서 체계를 뒤흔들만한 혁명적 내용을 담기는 어려웠다. 당시의 의식적, 무의식적 검열체계가 엄격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