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품격, 제목에서부터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이 풍긴다.
좋아하는 필자였는데 어느새 은퇴를 하신 모양이다.
세월이 참 빠르다.
어려울까 봐 걱정했는데 320 페이지의 적당한 분량에 주제의식도 선명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문장으로 쓰여져 금방 읽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학문을 하고 연구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옳고 그름을 따지고 도덕적인 가치를 부여하기 위함일까?
윤리학이나 철학은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역사학의 목적은 결코 포폄에 있지 않고 정말로 그 사회를 발전시키거나 퇴보시켰던 진짜 이유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도덕적으로 옳으냐 그르냐는 본질이 아닌 것 같다.
식민지 피지배 경험이 있는 나라인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국 제국주의의 긍정성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심적으로 힘들 것 같긴 하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여부가 아닐까?
지금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21세기의 국민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저자는 영제국이 스페인 등과는 다른 상업주의 제국이었음을 지적한다.
기본적으로 영국은 무역을 통해 부를 획득하고 자신들의 제품을 팔기 위해 대양으로 나섰고 상인들의 무역활동을 보호해 준 것이 강력한 해군이었다.
섬나라라는 특성상 대륙을 지배하기 보다는 대륙들의 세력 다툼시 균형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국가를 방어하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다.
교과서에 영국 하면 고립주의 외교정책이라고 배울 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는데 기본적으로 이들이 영토 획득보다는 무역할 수 있는 시장을 찾았기 때문에 굳이 대륙의 세력 판도에 끼어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아편전쟁도 그렇고 인도의 지배도 무역을 원했으나 현지에서 거부하자 지배 개념으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지배가 목적이 아니었고 고대의 로마 제국처럼 영토를 넓히고자 했으면 해군이 아닌 육군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유무역을 할 수 있는 시장을 넓히길 원했던 그들이 전 세계 영토의 1/4를 가진 제국을 거듭나게 된 것은 책에 의하면 산업혁명 덕분에 다른 국가들에 비해 월등하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기술과 생산량이 최고조에 이르러 압도적인 차이로 주변국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국의 유지에는 돈과 인력이 많이 든다.
특히 인도처럼 거대한 땅덩어리를 영국의 인구로 직접 통치하기란 불가능했으므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현지인들의 협조를 얻은 간접통치 형태를 띠었다.
이 제국의 비효율성이 커지자 프랑스와는 달리 영국은 2차 대전 후 미련없이 떠나 버린다.
저자는 영국이 세계 역사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바로, 의회민주주의, 개인의 자유, 근면성실한 기독교적 윤리관, 노예제 폐지, 법치주의, 과학 기술을 중시하는 실용적인 지적 풍토, 사유재산권 보장 등을 든다.
이것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식민지가 바로 미국이다.
항상 궁금했던 점이 왜 같은 유럽의 식민지였는데 미국과 캐나다는 잘 살고 남미는 못 사는 것일까였다.
다른 책에서 영국과 스페인의 통치 스타일 차이였다고 하는데 확실히 공감이 간다.
스페인이 지배하는 남미 대륙에는 본국과 똑같은 소수 지주 계층이 지배자로 건너가 구대륙과 같은 불평등하고 구태의연한 사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성공했느냐는 중요한 문제 같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상인들의 무역을 지지하고 사유재산권과 특허권을 보장해 주고 무엇보다 과학 이론을 실용기술로 바꾸는 지적 풍토가 확립되어 산업혁명이라는 엄청난 변화가 가능해졌다.
저자는 줄곧 자유무역주의가 인류 전체를 부유하게 만든다는 분위기를 띄우는데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와 반대되는 개념이라 좀더 읽어 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무역은 소비자들에 더 많은 생활 속의 편리함을 주는 건 맞다.
자본주의 사회의 풍족함은 너무 당연한 현실이니 말이다.
정규재씨가 어떤 토론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누가 가장 이익을 보는가? 대기업인가?
그렇지 않다,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 바로 소비자다.
자영업자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대기업 체제에서 살아남기가 참 힘든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 좋은 품질이 물건을 더 싼 가격에서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맨 마지막 부분에 인종주의와 다문화주의의 갈등에 대해 언급한다.
같은 아시아인도 거부하는 한국인이고 보면 영국의 인종주의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같긴 하다.
손해를 감수하고 도덕적 이상에 부합하게끔 노예제 폐지 운동을 했던 나라도 일상 수준에서 유색인종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문제인 모양이다.
단순히 인종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요즘은 아예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이니 국가의 통합을 위한 정책자들의 고민도 깊어질 것 같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