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모임에서 쓴 에세이입니다.)
“몸이 하고 싶지 않은 걸 하고, 마음이 하고 싶은 걸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근성이다!” 만화가 김성모 화백의 근성론이다.
에세이 한 편을 쓰기 위해 전에 없던 근성을 발휘해야 했다. 내 몸과 마음은 에세이를 쓰기 싫어했다. 당최 쓸 이야기가 없는 것이다. 목요일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까지 계속 컨디션이 좋지 않아 역시 이번 모임은 불참해야겠다 생각했다. 컨디션이 조금 나아졌다.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더 커졌다.
‘의지와 저항’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다. 이럴 때는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정의를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의지란 어떠한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다. 저항은 어떤 힘이나 조건에 굽히지 아니하고 거역하거나 버팀을 말한다. 의지와 저항이 동전의 양면같다는 생각이 든다. 때때로 개인 또는 집단의 의지는 외부와 충돌한다. 외부에서 그 의지를 억누르려 하면 개인 또는 집단은 그에 저항한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 저항 정신도 강하리라 추측할 수 있다.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해보면 된다. 독립을 향한 의지가 강할수록 독립을 막는 외부에 대한 저항도 강해진다.
모든 사람이 살면서 의지도 발휘하고 저항도 할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살아왔다. 새삼스레 그런 이야기들을 풀어놓아 읽는 이들을 지루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의지와 저항에 대한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으면 할 텐데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특별하게 풀어낼 능력도 의지도 없다. 나는 운이 좋게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왔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최대한 피해 왔다. 물론 사람이 100%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거기에 큰 불만 없이 살아왔다. 가끔 궁시렁 궁시렁 대긴 했지만.
유튜브에서 김성모 화백의 근성론을 들었을 때, 나는 근성을 발휘하며 살아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스로 제법 근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김성모 화백의 근성론으로 내 근성을 평가하면 근성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열심히 했던 적도 있지만 그건 내 몸과 마음이 하고 싶고 원해서 한 거였다. 결코 몸과 마음을 거역해가며 억지로 무언가를 한 적은 드문 거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떻게든 에세이를 써보자 하고 근성을 발휘했다.
이번 챕터에서 가장 좋았던 그림은 <페가소스를 탄 뮤즈> 였다. 밝고 아름다웠다. 특히 우측 아래에 금빛이 좋았다. 다양한 색깔들이 경계가 흐릿하게 어우러져 있는데 지저분하지 않고 깔끔한 느낌이다. 금색, 붉은색, 녹색, 파란색 등 색감이 이뻤다.
예술가들은 뮤즈에 대한 환상이 있다. 예술적 영감에 사로잡혀 신들린 듯이 창작활동을 하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하지만 뮤즈는 환상일 뿐 실상은 고통과 인내와 노동이다. 나는 에세이 한 편을 쓰기 위해 일주일간 뮤즈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결국 의자에 앉아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나가기 위해 근성을 발휘해야 했다. 모든 예술가들의 노고와 근성에 찬가를 보내며 이 글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