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이란 독립된 완결 구조를 갖춘 각각의 작품들이 연쇄적으로 묶여 있는 소설을 가리킨다. 형식적 완결성을 갖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한 편의 장편소설의 형식을 갖춘 소설이다. 인생의 한 단면을 압축된 구성으로 제시하는 단편의 장점과 인간의 삶과 그 관계의 면모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장편의 장점을 지녔다. 황정은 작가의 《디디의 우산》은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로 구성된 연작 소설이다. 우선 소설 《d》는 하루아침에 연인 'dd'를 잃은 남자 'd'의 남겨진 이야기를 그렸다면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나'와 연인 '서수경' 그리고 동생 '김소리'와 그녀의 아들 '정진원'의 이야기를 읊조리듯 풀어냈다. 이 두 이야기 사이를 관통하는 것은 시간과 역사, 뜨거운 침묵과 차가운 혁명이라는 역사가 조용히 관통하며 흘러간다. 사물과 죽음, 그리고 책, 여기에 문장이 덧붙여 '나'가 쓰고자 하는 누구도 죽지 않은 이야기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늘이라는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의 앞마당을 쓸고 가듯 훑어낸다.
dd의 죽음 이후로 d의 세계는 진공이 된다. 소리도 없는 세계 안에서 d를 끄집어낸 것은 여소녀 아저씨의 빈티지 오디오이다. 소리가 곧 그를 기억으로부터, 과거로부터, 죽음으로부터 불러낸다. 그가 죽은 듯이 살아갔던 시대는 2009년 용산 참사,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침몰, 그리고 더 옛날로 거슬러 1983년 북한 공군 이웅평 대위가 전투기를 몰고 남한으로 귀순했던, 탈출의 장면을 기억한다. 그리고 무척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여소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진공관의 섬뜩한 열기는 집요한 통증처럼 그의 손 끝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건 마치 혁명의 불씨처럼 아주 작고 사소한 열기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2016년 겨울 초입의 촛불 집회를 지나 다음 이야기는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선고한 정오가 막 지난 짧은 시간으로 점프한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그렇게 혁명의 전말이라 불리는 여러 사건을 기억의 소환이라는 형태로 드문드문 불러 낸다. 소설가 '나'의 입을 통해서, 혹은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서, 한 편의 소설을 쓰듯 독백처럼 회고한다. '나'와 '서수경'은 1996년 8월 연세대 항쟁에서 재회한다. 그로부터 20년을 그렇게 곁에서, 너희 둘은 대체 무슨 관계이냐고 묻는 타인의 시선을 묵묵히 견디며, 둘 중의 한 명이 사라진 다음에도 남은 한 사람의 생활을 보호하고, 그를 각자의 가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언젠가 그 일이 닥칠 때 서로의 유언대로 남은 삶을 품위 있게 마저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모두가 돌아갈 무렵에는 우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둘은 20년 뒤에도 여전히 함께 있을 것이다.
과연 상식이란 무엇이며,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며, 혁명이란 무엇인가. 2016년의 촛불집회부터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을 선고하였다 하여 과연 세상의 혁명을 이루어졌는가. 심지어 '魔女OUT'이라는 팻말이 버젓이 광장에서 들고 다닐 때조차 여성은 묘하게 배제되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말할 필요 없는 세상 속에서 겪은 부조리와 이해 불가능의 현실 속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당연하듯 받은 차별과 눈물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이 거치고 살아온 흔적의 징검다리를 하나하나 꾹꾹 밝으며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우리는, 나는, 오늘은 과연 어떻게 기억될까. 그 광장에 나도 있었다고, 나 역시 같은 마음으로, 한 뜻으로 감히 서 있었노라고 이야기할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내가 나아가는 방향이 맞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읽는 동안 눈을 뗄 수 없는 흡입력으로 끌어당겼다. 그건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모두의 이야기와도 같았다. 그래서 굳이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는' 그같은 이야기로 문장을 곱씹으며 멈칫할 것만 같다. 그건 마치 d가 오디오의 음악에 온 몸과 마음을 내 맡겼듯이, 어떤 전기 신호처럼 저릿한 감각으로 새겨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