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그린 70년대의 풍속화
활화산 2002/06/18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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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70년대,라는 말을 듣거나 보게 되면,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이유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태어난 게 70년대 중반인 데 대한 무조건적인 편애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말을 배우고 세상을 알아간 데 대한 애틋함 때문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연어가 모천의 기억을 더듬어 그 긴 여정에 오르는 것처럼, 내게 70년대는 모천과도 같이 의식적으로 더듬고, 집착하게 되는 시공간대이다.
그렇다고 70년대를 막연하게 그리워하거나 회귀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우선 70년대,하면 월남전쟁의 종전, 박정희 유신독재의 장기화, 석유파동, 한국이 개발도상국이 되기 위해 발악을 하면서 각종 도시문제로 몸살을 앓고, 이농현상으로 농촌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한 당대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분위기를 떠올린다.
그 다음으로는 통기타 가수들이 대마초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고, 남진`나훈아 같은 가수에 이어 이은하, 혜은이, 송창식, 윤수일, 최헌 등의 가수들이 활발하게 활동한 시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발표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시대, <미워도 다시 한 번> , <영자의 전성시대> 등의 영화가 흥행한 시대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듣거나 보거나 읽어서 아는 것들이지 내가 피부로 느낀 지식이 아니란 점에 한계가 있다. 그런 굵직굵직한 사건들이나 현상들은 70년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는 될 수 있겠지만, 70년대의 모습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데 또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내가 알고 싶어하는 건 굵직굵직한 것들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당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이다. 사람들의 구체적 삶의 모습이 결여된 역사가 뭔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역사만이 아닌 70년대의 구체적 모습을 알고 싶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당시에 발표된 소설이나, 앞서 말한 가요나 영화 등이 보여주지 못한, 도시 서민들의 삶의 양태를 꼼꼼하게 보여준 것으로 박완서 선생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만한 책이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90년대 중반-94년에서 95년에 걸친 겨울-이었는데, 한 번 책을 잡고서는 도저히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내가 마치 70년대의 어느 거리와 골목, 어느 집 마당, 안방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의식주 생활, 이를테면 돈의 가치라든가 , 패션, 난방 시설 등등 서민들의 삶의 모습은 호기심을 일으키기기에 충분했다. 서민들의 건강하고 당당한 삶의 태도를 곳곳에서 만나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했다.
<머리털 좀 길어 봤자>, <고추와 만추국>, <노상방뇨와 비로드 치마> , <항아리를 고르던 손> 등을 비롯해 표제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를 읽다보면 얼굴을 일그러뜨리게도 되고 미소도 짓게 된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살았구나, 나와 가족, 이웃 넓게 70년대 한국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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