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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누스  2010-11-30 01:05  좋아요  l (0)
  • 읽으실지는 모르겠지만, 2번 질문에 대해서 의견을 남깁니다. 리뷰를 쓰신 책을 읽지는 않았으므로 제가 조영일씨의 의중을 짐작해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설령 읽었다 하더라도 그럴 수는 없겠네요. 먼저 저는 문학과 정치의 비교에 대해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정치는 공동체의 운영을 결정하는 과정이니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책임을 나눠 갖는다 할 수 있겠지만, 문학이 문학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공동의 책임을 지우는 무엇이라고 주장하는 것은...글쎄요, 문학적 성취를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선험적으로 상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마 선험적인 가치를 갖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읽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도 자기 자신을 독자 삼아 묵묵히 쫓으면 되는 문제겠지요. 다음으로 이 글에서 '독자'란 말을 사용하시는 방식에 대해서도 의문이 듭니다. 이 글에서 독자는 ‘판매량 등으로 확인되는 읽은 사람의 수’라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는 ‘읽은 사람’뿐만 아니라 ‘읽을 사람’도 의미하는 말 아닌가요? 읽은 사람을 읽을 사람에 등치시킨다면 읽히지 않았던 글을 쓰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이 ‘독자’의 애매성 문제는 다음의 마지막 의문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근대문학은 종언을 고했지만, 새로운 문학은 가능한 것인가요, 아니면 문학이라는 것이 근대의 역사적 현상인 한 근대문학의 종언은 문학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만약 후자라면 독자들은 ‘읽은 독자’에 한정될 것이므로 독자의 외면도 종언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힐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책임이 물어져야 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그러나 전자라면, 그러니까 새로운 문학은 가능하지 않지만 아직 새로운 문학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책임이 독자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새로운 문학이 쓰였는데도 독자의 외면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면 독자의 수준 문제를 지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오늘날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안목 없는 대중들을 질타하게 할 만한 작가가 있나요? 개인적으론 그런 주장을 확신을 갖고 열정적으로 전개하는 자신 있는 작가나 비평가들이 등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그럴 거라는 생각은 별로 안 드네요. 문학을 정치에 비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문학가와 정치가는 비교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가 자신의 선거 패배의 원인을 자기를 찍어주지 않은 유권자들에게서 찾을 수는 없는 것처럼 문학가도 자신이 좋은 문학을 쓰지 못하는 이유를 독자들에게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요.
    솔직히 현역작가의 입에서 ‘좋은 안목을 가진 독자가 없어서 좋은 글을 쓰지 못 한다’는 식의 말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현역작가로서 조영일씨의 글이 죽비명령처럼 느껴졌다는 문장의 진정성이 의심스러워 질 정도입니다. 안목 없음을 질타하는 죽비를 기꺼이 맞을 자세가 되어 있는 독자로서 ‘좋은 글을 썼지만 좋은 안목을 가진 독자가 없다’는 말 정도는 뱉을 수 있는 작가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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