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에게 질문 둘, ‘시의 종언’과 ‘독자’
근대문학을 좀 안다는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가리타니 고진에게서 촉발한 ‘근대문학의 종언’을 화제로 삼고 있다. 특히 비평가들은 자신의 해석이 가장 옳다고 주장하는데, 어쨌든 비평가가 아닌 자들의 입장에서는 조영일씨의 해석이 가장 화끈하고 통쾌하게 읽힐 테다. 다른 비평가들의 해석은 사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도 힘들다. 조영일씨의 해석과 그 해석의 자부심을 통한 한국문학의 주류들에 대한 해부는 딴지일보 총수였던 분의 말투을 빌리자면, 똥꼬를 쑤심 당한 것 같은 쾌가 있다. 나는 조영일씨의 「한국문학과 그 적들」에 두 번씩이나 이름 석 자가 언급된 문단문학 소설가다. 문단문학 소설가로서, 조영일씨의 비판은 너무나도 지당한지라 독서하는 동안 식은땀이 날 정도로 창피했다. 다음의 죽비명령과도 같은 문단을 읽을 때는, 정말 죽어버리고 싶었다.
생계가 위협받기 때문에 문학을 제대로 하지 못하겠다고 외치는 입에 필요한 것은, 국가가 배급하는 일용한 양식이 아니라 시대의 현기증과 구토이다. 문학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을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국가에 기대어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그토록 숭배하는(그러나 생계문제를 앞세워 외면하는) ‘문학정신’이기 때문이며, ‘새로운 문학’이라는 꽃은 바로 그런 전사들의 시체들 위해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치부를 부엌칼로 저밈 당하는 것 같았다. 나는 조영일씨가 이 책에 적어놓은 모든 비판에 수긍한다. 뒈지게 얻어맞았다. 일일이 다 옳은 소리여서 반박조차 할 수 없다. 비통하고 아플 뿐이다. 맞은 게 아파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국가에 기대는 것을 비롯해, 갖은 구차하고 치졸한 짓을 통해 생계비를 버는 한편, 소설을 쓸 것이기 때문이다. 입이 열 개라도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때문에 내가 리뷰를 빙자해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변명하거나 반박하거나 트집잡거나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묻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다. 혹시 조영일씨가 이 리뷰를 빙자한 질문을 읽게 된다면, 인터넷공간이든 지면이든 어떤 식으로든 성실히 대답해주시리라 믿는다.
1. 시는 ‘근대문학의 종언’과 무관한가?
‘근대문학’에는 소설말고도 의당, 시 수필 희곡 평론 등이 포함될 것이다. 전작과 이번 책에서 평론과 비평가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많이 하고 있다. 수필과 희곡은 논외로 치고 있는 듯한데 그럴 수밖에 없겠다고 인정한다. 그런데 시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일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의 근대문학은 ‘시’와 ‘소설’이다. 다른 비평가들도 마찬가지겠으나, 조 비평가도 ‘근대문학의 종언’이 아니라 ‘근대소설의 종언’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물론 시인과 시는 시장과 관련해서는 도저히 시스템의 한 축이라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왜소하지만, 조 비평가가 시스템의 가장 강대한 축으로 지적하고 있는 문단이나 국문과 문예창작학과 등을 생각한다면, 역시 시스템의 노른자일 수밖에 없다. 가리타니 고진이 소설만 이야기했으니 그에 따랐다는 식으로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근대시의 종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2. 독자(대중)는 근대문학의 종언(무한복제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조 비평가의 근대문학(소설)의 종언은, 내가 이해한 바로는, 새로움이나 불안함이나 불화 같은, 소설의 참모습이 더 불가능한 문학,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쓸데 없는 스타일의 무한 복제다. 내가 오독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훌륭한 비평가들도 오독했으니 나의 오독을 너무 나무라지 마시기를. 아무튼 그 무한복제시스템을 구성하는 출판사 문단소설가 국문과 문예창작과 국가자본 등등이 바로 한국문학의 적들이다. 그러나 나는 그 적들 중에 독자들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본다. 조 비평가는 작가에게 용기가 있다면 문단문학을 떠나라고 말했다. 그 말은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라는 뜻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그게 아니라면 독자를 생각하지 말고 쓰라는 것일 테니. 그런데 그 독자가 대체 어떤 독자들이란 말인가. 조 비평가는 신경숙 황석영 공지영 등의 근간소설-독자와 가장 폭넓은 소통을 한 그 작품들-에 대해서 내 판단으로는 ‘영양가 없는 별로 안 좋은 소설들’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내 판단으로는, 한국문단문학의 공허를 채운 바나나니 가오리나 하루끼니 하는 일본문학의 독자나, 우리 대가들의 영양가 없는 소설을 대박나게(출판사의 마케팅을 감안하더라도) 한 독자들이나, 대동소이한 분들이라고 본다. 독자들은 얼마 되지 않고 다양하지도 못하다. 게다가 독자들은 매우 편향적이다. 문단문학 작가들이 문단을 떠나도 사실상 만날 독자가 없다. 문단문학의 전복은 비평가 작가 등에게만 요구되는 것일까? 문학의 종언을 완성한 무한복제시스템에 독자들이 빠져 있는 이유가 있는가? 독자들은 무슨 면죄부라도 받았는가? 사실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같은 질문일 수도 이겠다. 한국문학이 종언을 고해서 독자가 없어진 것이냐? 독자가 없어져서 한국문학이 종언을 고한 것이냐? 국민이 썪어서 정치하는 것들이 저 모양이냐? 정치하는 것들이 썪어서 국민들도 닮아가는 것이냐? 같은 원색적인 질문일 수도 있겠다. 한 마디로 말해서, ‘독자’님들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 조 비평가가 진정으로 한국문단문학을 전복시킬 희망으로 생각하는, ‘한국의 문학청년’들도 궁금해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