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슬픔에 관한 이야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은 슬픔 그 너머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감정 덩어리다.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우리는 판단을 한다.
그 판단의 기준은 나의 경험, 나의 감정 그리고 나의 입장이다.
공평하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라는 말 역시 나의 주관이 듬뿍 든 단어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인폿된 값으로 계산을 뽑아내는 기계가 아니다.
아니 기계 역시 그 안에 고도로 복잡한 알고리즘이 있고 그대로 아웃풋을 뽑아낼 뿐이다.
우리에게 들어온 장면들, 말들, 표정들 역시 우리 속에 있는 나만의 독특한 알고리즘을 통해 그 값을 뽑아낼 뿐이다.
결국 누가 어디서 어떻게 보고 경험하는가에 따라 그 모습은 각각 다르게 기억된다.
어쩌면 세상에 진실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많을 것이다.
주인공 최현수는 비현실적이다.
어떤 경험이 그 아이의 짧은 삶을 통과했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학교를 가지 않거나 가도 주변에서 서성이며 누구와도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고 경계하는 모습은 현실감이 없다.
현실감이 없다는 건 얼토당토않다는 말이 아니다. 아니 얼토당토 않은 말이 맞다.
그 아이는 으레 어른들이 그 나이에 해야한다고 하는 행동이나 표정이 아니다.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 신경쓰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담임처럼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냥 에둘러서 알아차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인물이다.
그 아이가 생각하는 부모 역시 부모답지 않다. 그러나 부모를 바라보는 현수의 시선에는 어떤 감정도 없다. 그냥 그런 부모가 그렇게 있을 뿐이다.
마음이 아픈 엄마와 여기저기 일정한 직업없이 떠도는 아빠
그리고 센터와 학교를 오가지만 어디에서 성실하게 다니는 것 같지 않다.
잘 먹지도 않으면서 먹은 것을 다 개워내고 누군가 다가오기를 꺼리지만 그렇다고 심하게 경계하지 않고 어이없이 허물어지기도 한다.
그 틈을 묘하게 알아차리고 선생님과 수민이 끼어들고 개가 끼어든다.
그리고 하나하나 현수의 상황이 밝혀진다.
어느 여름 떠난 가족여행, 바닷가 호텔 부모님의 짧은 일탈의 시간 (일탈도 아니다. 어느 정도 자란 자녀가 있다면 부부만의 짧은 시간은 필요하다) 그리고 게임에 몰두하는 그또래 남자 아이, 활발하고 에너지가 많은 여동생
그 조합이 하필이면 가장 운이 없는 일을 겪었고 기억은 오래도록 그 가족안에 머문다.
어쩌면 일어난 일을 그대로 덮어버림으로서 기억은 오래동안 그 형체를 아무도 알지못하면서 가장 무시무시한 존재로 가족을 덮어버렸다.
쉽게 남의 말을 하는 사람들
어리석었던 초등수사
주변의 기이하게 심한 관심과 말들 말들
한 가족이 망가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떤 고난이 닥쳤고 그 고난을 용기있게 마주하고 그 의미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여러 가지 다른 해석들이 덧대어지고 그리고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가고 그 위로 흘러내리면서 가족은 서서히 망가졌다.
그리고 우리는 쉽게 말한다.
그러게 왜 그랬대. 좀 조심하지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
위로의 말도 공감의 말도 가족들에게는 있는 그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그리고 기이하고 얼토당토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접촉과 대화의 경험들이 쌓이면서
현수는 자신의 동생을 다시 기억하고 타인의 입을 통해 동생의 이야기를 듣는다.
의외로 세상에는 아직 따뜻하게 배려하는 사람들이 있고 남의 일을 내 일인양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고 도움을 주려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역시 얼토당토않고 기이한 일처럼 보인다.
왜 남의 일에 이렇게나.....
그렇게 어쩌면 세상은 그만큼의 슬픔과 그만큼의 기쁨 그만큼의 고통과 그만큼의 위로를 모두 경험해야 무시하 퀘스트를 마치고 떠날 수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마주하고 그 상처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
그것으로 가족들은 한 고비를 넘겼다.
이제 세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 라고 마무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혜진이가 불쑥 올라오고 우울감이 깊어지고 방황이 어지러이 휘몰아칠 것이다.
그러나 한 고비를 넘겼다면 두 번째 고비는 조금은 넘을 만할 것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살만하고 살아볼 만하다.
세상에는 나쁜 놈의 수만큼 좋은 사람의 수가 있다.
세상은 울고 화내고 고통스러운만큼 즐겁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순간도 있다.
다만 그 기회가 내게 잘 오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나 역시 나의 위치에서 나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보고 있음을 안다.
알지만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그것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감정들과 많은 상황들과 많은 관계들이 있음을
그래서 나 역시 그 많은 것들 중 하나라는 생각
가끔 그 생각이 나를 찌르지만 그 생각이 나를 살게 한다.
현수는 괜찮은 어른이 될 것 같다.
생각보다 회복이 빠른 엄마 아빠가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괜찮은 어른들도 있다.
마음은 가득하지만 마주하기 두렵고 겁이 많은 어른도 있고 어쩔줄을 몰라하는 어른들도 있고 도움을 주고 싶지만 나 역시 고통속에서 허우적거리고 그 고통을 애써 아닌 척 하는 어른들이 있다.
현수는 어떤 어른이 될까?
어떤 어른이 되든 나 혼자 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 같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