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삶을 본다는 것
우리는 보이는 것을 보고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여기 두 삶이 있다.
컬럼비아에서 40마일 떨어진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에게 태어난 스토너는 어느날 부모의 권유로 미주리 대학 농과에 입학한다.
새로운 농업기술을 배워 졸엄 후 돌아와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보기를 희망한 부모는 기꺼이 아들을 대학을 보냈다. 스토너는 대학에서 이방인이었고 낯선 사람이었으나 문학을 만나면서 대학에 깊이 빠진다. 아니 문학에 눈을 뜨면서 배우는 즐거움, 읽고 쓰는 기쁨을 알게 된다. 문학으로 전과를 하고 전쟁동안 참전하지 않고 학문에 매진하여 미주리 대학 강사가 되고 종신보장 교수가 된다.
그 사이 스토너는 이디스를 만나 첫눈에 빠져 성급한 결혼을 하고 딸 그레이스를 갖는다.
결혼생활은 행복했다고 할 수 없다.
이디스는 첫 만남과 달리 예민하고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스토너에게는 그랬다. 딸 그레이스가 태어나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알게 되고 소중한 존재라는 걸 배우지만 그 행복도 오래가지 않는다.
어찌된 일인지 이디스는 스토너에게 늘 걸림돌이었다. 조금의 행복도 용납지 않겠다는 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스토너는 그 또한 견뎌낸다.
학교에서는 고지식하고 원칙적인 사람인 스토너는 어느 순간 그의 가치를 알아본 학생들로 인해 학문의 기쁨 가르치는 즐거움을 누리지만 그것도 길지 않다.
학교내 정치에 본의 아니게 휘말리고 그의 곧고 고지식한 학문에 대한 사랑과 성품은 학교내에서 어쩔 수 없이 타자로 밀려난다.
스토너의 삶은 성공적이었을까
“넌 무엇을 기대했나?‘
우리는 모두 삶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살아가는가
내 삶이 어떻게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살아가고 있는가
스토너는 말년에 자신의 질문에 기꺼이 대답할 수 있었다.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죽음을 앞둔 그에게 삶이란 그런대로 괜찮았다. 내가 기대하고 좋아했던 것들을 발견하고 함께 했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누렸던 시간을 돌아보며 기꺼이 눈을 감는다.
그의 삶은 타인의 시선에서 보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공부를 했고 교수가 되었지만 조교수에서 더 이상 승진하지 못했고 괜찮은 저술을 남기지도 학생들 기억에 남는 존경받는 교수도 아니었다. 고지식하고 괴팍하고 깐깐한 그래서 질문이 많고 조금은 피곤한 사람
결혼생활 역시 행복하지 않다. 이디스는 전혀 스토너를 이해하거나 살피지 않았고 딸 그레이스와의 관계에서도 어깃장을 놓았다. 집에서도 쉴 곳이 없는 스토너는 서재도 빼앗기고 거실에 자고 심지어 유리로 된 온실에서 책을 읽어야 했다.
그리고 인생 중후반기에 만난 캐서린과의 짧은 사랑은 주변의 견제와 시선으로 마무리 된다.
어쩌면 소심해서 내 앞에 놓인 길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사람
미련하게 견디고 버티며 살아온 사람
그가 과연 행복하긴 했을까 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이디스와 이혼을 했더라면
모든 것을 버리고 캐서린과 떠났더라면
적어도 이디스에게 화를 내며 그레이스를 보호했더라면
영문과 학장을 탐냈더라면
교수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느 정도 타협을 했더라면
그의 삶은 달라졌을까
그러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있을까
죽음앞에서 후회보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는가 라는 질문에 기꺼이 대답할 수 있는 스토너는
작가의 말대로 그대로 영웅이었다.
’마치 생애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한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라는 문장은 스토너의 부모님뿐 아니라 본인도 그러하다.
참아낸 결과 무엇이 남았나
견뎌낸 결과 그는 누구인가.
스토너에게서 평범한 삶을 지속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본다.
인내가 깊어 아님을 알지만 그럼에도 지속하는 그 마음의 깊이를 나는 모르지만
그 길이 나쁘지 않았다는 그의 마지막 미소가 모든 걸 말해주지 않을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누가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나만 아는 것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삶의 이면을 꿋꿋하게 살아낸 그 사람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여기 한국의 홍석주 편집자가 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한채 대학 학과를 선택하고 배우는 학생이 있다. 쓴다는 일에 끌리지만 내가 그럴 능력이 없다고 소심하게 망설이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일생을 돌아보면 그는 늘 무언가에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국문과 전공 수업에 청강을 요청하고 해내는 일
출판사에서 일을 못한다고 스스로 자책하면서도 버티며 필사를 해가며 배워나가는 일
해도해도 익숙해지지 않은 사람을 만나 접대하는 일, 남의 글을 읽으며 그 글을 평가하고 참삭하고 고민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해낸다
내가 이 일을 잘 한다. 좋아한다는 생각없이 맡은 일을 계속 해내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석주는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무슨 일이든 버티고 해내는 동안 사람은 성장한다.
시간의 힘일 수도 있고 개인의 인내의 힘일 수도 있다.
그녀 역시 다른 길은 보지 않고 편집에서 즐거움을 찾고 내가 해야할 일을 하고 조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을 키워나간다.
일상과 사랑보다 우선한 책에 대한 사랑 작가에 대한 헌신은 어쩌면 삶의 어떤 순간 내가 잘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내가 다른 무언가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맞는 길을 가는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서술 되지 않았지만 편집인 홍석주가 아닌 인간 홍석주에게는 그런 고민의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묵묵히 선택한 길에 대한 후회나 자책은 없다.
스스로 오늘 못하면 내일 다시 하면 되고 잠을 줄이고 하고 내 시간을 줄여서 일을 하면 된다. 그 가치를 누가 평가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고 보완하면서 나아간다.
그렇게 일에 조금씩 스며들면서 돌아보니 어느새 온전히 나는 그 일을 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그 일을 해야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예전 스토너를 읽으며 아버지의 삶을 대비해 보았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 도시에서의 공부 그리고 약간의 성공과 묵묵함
나이든 아버지를 돌아보면 그가 삶을 즐긴 것이 아니라 견뎌냈다는 말을 어울린다는 걸 알았다. 그에게 다른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내 앞에 놓인 역할이 아닌 다른 역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다 버리고 나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아니 그의 삶에 나의 즐거움은 얼마나 될까
지금 이 삶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최선이 있을 테고 나는 지금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그러나 그 차선 역시 묵묵히 견디고 살아왔다면 그 역시 최선일 것이다.
차선을 최선처럼 살아내는 삶 그게 내가 본 아버지의 삶이었고
어쩌면 우리는 누구나 최선을 꿈꾸면서 차선을 살아가고 그 차선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진심 원하는 일을 잘 알지 못하고 해야만 하는, 할 수 있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면서 그 일이 최선이라고 믿는 것
나의 최선은 무엇일지 궁금해하고 찾아보지만 지금 가고 있는 차선 역시 포기 하지 못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런 것이 아닐까
스토너도 홍석주도 자심의 삶이 꿈꾸었던 삶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상황에 따라 순간적인 선택들을 하면서 이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이 있을거야 라는 꿈만 꾸지 않고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게 되는 것
그리고 즐거움과 가치를 발견한다.
성공한 화려한 삶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끈기있게 해내고 있는 삶들이 가장 존경스럽다.
그걸 두 책은 말해준다.
나는 이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나에게도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