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상대를 글 속에서 죽여버리는 일 그건 통쾌한 일일까 서글픈 일일까
어쨌든 복수를 한다는 의미에서 통쾌하기도 하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실제 그는 여전히 살아서 돌아다닐 텐데 라는 마음이 들면 서글프지 않을까
하지만 사람은 미운 감정 부정적인 마음을 흘려보내야 한다.
마음속에 깊이 묻어둬서 내가 아프거나 나빠지는 것보다 흘려 보내고 해소해야 할 필요가 있다.
뭐라고 화내기에는 멋쩍은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나의 하루를 완벽하게 망친 것도 폭력이라면 폭력이다.
만일 상대가 남자였다면, 그렇게 무례하게 굴었을까
막무가내로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드러내면서 나에게 너를 맞추라는 태도를 취할 수 있었을까
언어를 모른다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당당하고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될 수 있다.
초대받지 않은 자리에서 권하지 않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고 마시면서, 더구나 게걸스럽게 먹고 마시고 내뱉는 한마디가 이런 멋직 공간에서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겨우 이까짓 케잌을 굽고 수영을 하고 요리나 하고 있나요 라는 말은 무례를 넘어 폭력이다.
그 방문객을 그냥 글속에서 잘근잘근 씹어서 아내에게 버림받고 곧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남자로 묘사하고 잠시 눈을 붙이고 쉰 다음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글을 쓰는 일
그 일은 충분한 복수가 될 수도 있겠다.
좀 서글프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안에서 내가 만족할만큼의 어떤 보상을 스스로 받아내는 일은 용기 있는 일이고 건강한 해소라고 봐도 되겠다.
무례함을 무례함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폭력이다.
평범하고 보통의 남자가 겪는 하루의 일을 우리는 그냥 평범하게 읽어간다.
직장생활을 하고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간단한 식사를 차려 먹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
그는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았다.
동료와 대화를 하고 사소한 권유를 거절하고 인사를 하고 대중교통을 타고 옆자리에 우연히 앉은 말이 많은 사람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일일이 대꾸해주는 것 그냥 그렇게 본다면 예의있고 괜찮은 사람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이전에 어떤 여자를 만났고 함께 데이트를 하고 집에서 함께 요리를 해서 먹고 잠을 자고 청혼을 하고 결혼을 하기로 결정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 남자의 태도들
여기서 자연스럽다라는 말은 그 남자 생각에 늘 해오던 행동과 생각들, 누구도 나에게 이상하다거나 태클을 걸지 않은 말과 행동이 그 여자에게 도드라진다는 점이다.
그건 그 여자가 까탈스럽거나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사실 누군가에게는 그 남자의 말이나 행동이 무례하고 상스럽고 좀스럽고 속물적인 면이 있다. 그 여자는 그걸 알아봤을 뿐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남자들은 모른다. 자연스럽고 익숙하고 늘 해왔던 말이고 늘 해왔던 행동일 뿐이다.
어린 시절 식사준비를 해주고 자기 몴의 접시를 가지고 오던 엄마의 의자를 장난스럽게 빼서 엄마가 나동그라지고 그릇이 깨지고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웃음을 터뜨린 아빠와 형제들
그냥 장난이고 재미고 소소한 유머라고 생각하는 것 그 자체가 폭력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행동들이 그냥 자연스럽고 일상이며 재미라고만 생각한다.
그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그가 바뀔 수도 있는 기회였지만 그가 그냥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변화의 공기는 피시식 바람이 빠져버리고 그는 여전히 그로 남아 있다.
무얼 잘못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를 버리고 떠난 여자를 욕하면서
그녀를 위해 썼던 체리값이나 중국음식 배달값이나 반지값을 아까워하면서
그는 평생 모르고 그렇게 늙어갈 것이다.
무지가 폭력이라는 것
알려고 하지 않는 태도가 권력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에피소드다.
낯선 경험을 원하는 여자는 자신을 돌보는 남자를 만나 짜릿한 체험을 하지만 그 결과는 예상밖이다.
더 이상 설명할 길이 없다.
그녀를 탓하는 건 가장 쉽다. 그러게 왜 그랬대? 알만한 사람이...
그러나 그건 가장 폭력적이다.
그래도 되는 대상은 없으니까
모든 이야기를 읽고 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내가 놓친 단서를 찾고 싶어졌다.
이 남자의 본 모습을 어디서 짐작할 수 있을까
문장을 샅샅이 뒤진다.
여기부터 뭔가 쎄했다. 싶은 곳을 찾지만 찾을 수 없다.
내가 발견한 부분은 이미 결말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보여지는 것이지 모르고 읽는다면 그냥 넘어갈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자연스러움, 평범함
정말 평범한 그 모습이 이제 공포가 된다.
작가는 평범하고 자연스러움을 조심하라는 경고로 이야기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숨은 그림찾기처럼 일상에 숨어있는 폭력이나 차별, 혐오를 희미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남자들은 절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를 것이다.
그냥 평범하거나 일상적이거나 열심히 살거나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고 믿고 지금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이 더 공포스럽다.
여전히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있을 것 같아서
한쪽은 사라져야 한다... 이말이 이렇게 푹 꽂일 줄은 처음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