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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단지 공작소
  • 가족의 두 얼굴
  • 최광현
  • 14,400원 (10%800)
  • 2021-04-26
  • : 3,753

   


책도 올 때가 있고 떠날 때가 있는 모양이다.

쉽게 읽혔고 많이 도움이 되었고 그리고 나를 돌아보게 되기도 했던 책 세권을 정리했다.

사실 볼 때마다 내가 아닌 타인을 대입하면서 그가 변하지 않으니 문제야... 했던 시각이 점차 나에게 집중되면서 그럼에도 내가 어떻게 해야하나? 나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이란 참 지랄맞아서 없으면 아쉽고 뭔가 내가 부족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되지만

막상 함께 하면 몰래 버리고 싶기도 하고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인연의 굴레에서 헤매고 있는가 자책을 할 때가 있다.

내 가족이어서 감사하다가도 돌아서면 내 가족이라는 것 때문에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


우스개로 넘어갈 때도 있고 심각하게 고민할 때도 있는 어쩌면 내가 살아가면서 나보다 더 많이 머리속에 넣고 나보다 더 많이 애써주고 나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나보다 더 많이 실망하게 되는 존재가 가족이다.

원가족을 피해서 새롭게 가족을 구성했더니 늘 그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찝찝한 기분들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 굴에 들어왔다는 당혹감

어디서 꼭 나같은 것들이 나와서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가 하는 마음들

버리자니 욕먹는게 싫고 참아내자니 미쳐버릴 것 같은......


가족아래 더 작은 요소 개인이 있지만

특히나 한국사회에서는 개인주의가 많아지고 있다고 하지마는 여전히 가족이 우선이다.

한때 코로자 지원금도 가족단위로 받았고 

가족단위로 국가에서 통제하고 

가족단위로 뭉뚱거려서 꼬리표가 붙어버린다.


가족이라서 가장 많이 상처를 주고 가장 위험한 존재인데

가족이라고 가족안에서 안정을 찾으라고 한다.

그 가족에 대해 많이 배운

그리고 많이 삐딱해진 책 세권을 다시 읽고 정리하고 이제 보내려고 한다. 



가족의 두얼굴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

 

- 가족도 권력관계다.

가족도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 나의 감정, 욕구의 표현도 연습이 필요하다.

원가족과 현가족

사람은 사랑과 인정이 필요하다.

가족내에서 각자 역할이 있다. 영웅이 있고 희생양이 있고 그래도 되는 사람이 있다.

관계는 쌍방이다. 서로 비슷한 크기와 무게가 오고갈 때 안전하다. 한쪽이 일방적이라면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1.어린 시절 나를 돌아보다.

 

가족은 우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관계를 맺는 곳이다. 우리가 가족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감정을 경험하는가는 평생 동안 간직될 감정의 채널을 고정시키게 만든다.

우리는 가족관계를 통해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형성하게 될 대인관계에 대한 기본적 믿음과 기대를 갖게 되며 이것은 친구, 연인 부부, 자녀 등 여러 관계 속에서 많은 영향을 미친다. 가족관계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찍어 내는 붕어빵 틀이라 할 수 있다.

(동창모임이 각자 자기 자랑만 하는 지루한 모임이 아니라 그 모임에 있는 내가 외로운 것이다. 나 자신이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느끼고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

 

자신의 외로움의 실체를 알았다고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린시절부터 따라오는 외로움과 상실에 대한 불안은 생활습관처럼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체를 알고 나면 조금씩 차이가 생기게 된다. 이제 매일 일상에서 자신과 대화하며 자신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상처는 한 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다만 자기의 상처를 잘 인식하고 그것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설득하고 그 상처가 주는 고통을 스스로가 통제하고 다룰 수 있으면 된 것이다.

 

“어렸을 때 상처를 받거나 좌절하면 누구에게 먼저 달려갔나요?”

무언가에 상처를 받았으 때 누구에게도 갈 수 없었다는 것은 한번도 사람을 통해 상처를 치유받은 경험이 없다는 뜻이다.

 

<환상유착> 아이가 학대하는 부모가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나쁜 아이여서 생긴 일이라고 믿어버리는 것 그것이 덜 고통스럽게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에는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blind spot)

가족으로부터 받은 수많은 가치와 신념들 너는 공부에 소질이 없어. 너는 못됐어. 너는 나약해. 언니보다 못해 등등

가족최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과 자세가 필요하다. 폐쇄적인 가족은 언제나 경직되어 있으며 무엇을 하면 안되고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엄격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가족은 융통성있고 유연하게 일상을 움직여야 한다.

 

새로운 가족은 백지상태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부부는 자신이 근본적으로 뿌리를 둔 가족 전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각 배우자는 이전 세대의 가족문화와 전통을 새로 시작하는 결혼생활로 가지고 온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불행의 시작이든.

 

2. 배우자 선택의 숨은 이유

남녀가 서로 낯설지 않으면 즉 상대에게서 자신의 익숙한 모습을 발견하면 편안해지고 끌리는 것이 사랑의 일반적인 법칙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린시절 경험한 내 가족의 모습을 재현해 줄 사람에게 강하게 끌린다.

어린시절의 모습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린 시절의 가족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 경험한 감정에 용기 있게 직면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먼저 자기 가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자신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고 힘들었는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헤아려야 한다. 이렇게 자신과 가족을 들여다 보는 작업을 하고 나면 배우자의 선택과 만남 속에서 발생하는 불안과 긴장에 좀 더 초연할 수 있다.

 

세상에 낮은 기대치를 갖는 아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하기 쉽다.

불행의 패턴을 똑바로 바라보는 용기가 출발점이다.

직면의 대상은 어린 시절의 상처이다. 자신 안에 존재하는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고찰하며 자기 공감의 경험을 가져야 한다.

 

3. 상처를 주고 받는 가족

 

가족의 문제와 갈등은 구성원 한 사람의 탓이라기보다 그를 둘러싼 가족의 환경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본다. (시스템의 관점에서 개인이 아닌 개인이 처한 환경에서 원인을 찾아본다.)

 

죄책감과 수치심을 부르는 가족 비밀

고통스러운 사건이나 문제의 비밀은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의도와 다르게 더욱 아래 세대에게 영향을 많이 끼친다. 고통스러운 사건의 비밀을 간직한 첫세대는 비밀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이를 털어놓음으로써 자유로워지고 싶은 양가감정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누설된 비밀 때문에 아래세대는 무언가 있음을 직감하지만 전모를 알기 어렵고 물어볼 수 없다.

첫 세대에게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 있었다면 다음 세대에게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 된다.

여기서 비밀의 내용은 잊혀지고 오로지 그 존재만 감지되면서 끊임없이 의문을 자아낼 뿐이다.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비밀은 자녀세대에게까지 불안감을 전달한다.

(알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덩치를 부풀리고 괴물이 된다. 마루밑에는 그저 어둠이 있고 먼지가 있을 뿐이지만 계속 그 아래를 들여다 보지 못하는 동안 괴물이 존재하고 자라고 자라서 절대 보면 안되는 공간이 되면서 누구도 근처를 지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모르기 때문에 상상을 하고 상상은 걷잡을 수 없이 뻗어 나간다. 비밀은 안전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후 누구도 감당할 수 없고 마주하기 두려운 불안이 된다. 그리고 내가 그 불안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지 못하는 동안 수치심과 죄책감이 함께 달라붙는다.)

 

가족은 변화에 저항한다. 가족 시스템에는 일종의 관성이 있어서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가족 시스템의 경향을 향상성이라고 한다. 가족의 붕괴를 두려워하고 변화에 저항하려는 향상성 때문에 가족 비밀이 만들어지지만 그로 인해 가족 사이의 갈등은 증폭된다.

 

어린 시절 생존하기 위해 부모의 사랑이 필요했다면 성인에게는 주변의 인정이 필요하다.

(아들러) 인간 본성에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 어려서는 부모의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싫어하는 것을 함으로써 관심을 끌기도 한다. 이도 하나의 권력욕구라 할 수 있다.

폭력과 분노를 표출하는 가장은 대부분 가정의 테두리 밖에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매시간 권력을 상대에게 행사한다. 지극히 사적인 관계에서도 권력은 존재한다.

누가 선택을 할지 누가 결정을 할지 등등

 

아이에게 좋은 아빠는 무엇보다 아내와 사이가 좋은 아빠다.

아이의 영역은 엄마의 영역에 속한다. 아빠가 아이들과 사이가 좋으려면 이것을 암묵적으로 지지해 주는 엄마가 있어야 한다.

 

희생양

한 사회 안에서 불안 불만과 갈등이 일어났을 때 가장 적은 대가를 치르고 일시적으로 가장 높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응책은 누군가 또는 일부 소수자들에게 문제의 책임을 전자시키는 것이다.

가족 희생양은 가족 중 한 사람의 희생으로 가족 구성원 전체가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

부부 갈등에 자녀가 하는 역할들 (문제아 또는 영웅)

문제아 역할을 맡은 자녀는 억울하게도 여러 가족 문제의 원인 제공자로 비난 받는다. 한번 문제아로 지목된 자녀는 가족 안에 야기되는 긴장과 불안에 극도로 예민해져서 식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더욱 비난받을 짓을 하는 식으로 반응한다. 역설적이지만 문제아는 나쁜 짓을 함으로ㅆ 가족이 느끼는 고통과 분노를 자신에게 돌리게 만들어 가족의 결속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족은 일시적인 안정을 찾겠지만 희생양이 되니 자녀는 죄책감과 열등감 그리고 높은 불안감을 피할 길이 없다.

누군가 희생양이 되면 다른 자녀는 안전하게 자신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희생양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겁이 많다. 부모의 고통스러운 상태를 재빨리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하고 죄책감을 과도하게 갖고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만큼 겁이 많고 조화를 갈구하는 아이일 경우가 많다.

 

영웅의 역할은 자녀가 부모를 대신해서 부모의 오랜 바람을 풀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부모에게 충성심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은혜를 갚으려 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면 부모가 자녀의 충성심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좋은 성적, 높은 연봉 등을 강요하는 것 등

 

가족에서 발생하는 많은 상처는 대개는 선한 의도와 동기에서 출발한다. 동기 자체는 나쁘지 않을지 모르지만 방법에 문제가 많다.

파괴적 권리: 부모에게 이용당한 자녀가 자신이 당한 것을 다시 되돌려 주려 할 때 행사하는 권력 (시집살이 되물림, 군대 후임에 대한 폭력 등 본전 생각)

 

삼각관계 속에서 자녀는 부모의 대리 배우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부부 간에 발생하는 갈등 분노 원망 우울 등을 느끼면서 부부는 자녀를 배우자의 자리에 세우고 배우자를 대신해서 위로를 받으려고 한다. 삼각관계에 편입이 되면 자녀는 더 이상 자녀로서 존재하기 보다 부부 갈등을 담당하는 한 축으로 정서적 불안 상태에 놓이게 된다.

 

 

가족안에서 많이 쓰이는 이중구속언어들

명확한 의사전달도 연습이 필요하다.

 

 

관계의 심리학

 

먼저 자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타이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건강하게 작동한다.

내가 진지하게 한 말에 상대가 건성으로 받으면 나는 상대방의 태도에 이미 상처받는다. 말이 아닌 태도, 비언어적 표현이 더 상처가 되거나 위안이 될 때가 있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메마르면 타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일 수 있다.

 

갈등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관계의 두가지 시선

콤플렉스 (마음의 응어리) 관계 패턴의 재현 즉 익숙함에 끌린다.

힘든 기억이라도 익숙함이 더 강하다.

자신의 상처를 당사자가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를 닮은) 약자에게 쏟아붓는다.

소통(체계이론) 감정(정서)는 전염이 강하다. / 이중메세지 화법 (하라는거야? 말라는거야?)

균형잡힌 상태를 잘 유지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부분이 아닌 전체를 봐야 한다. 상호작용에 세심하라. 향상성 (안정적 예측가능성)

3. 나는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자아분화)

불행에도 패턴이 있다. (무의식적인 반복)

행복도 배워야 한다.

애착은 대인관계의 시작이다.

가까워지려는 마음(애착) vs 거리를 두려는 마음( 분화) 독립성과 자율성이 필요하다.

4. 삼각관계 익숙함에 끌린다. / 세사람이 되면 관계가 복잡해진다.

5. 나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자존감)

성장 공감능력 (의사소통)

6 희생양 : 가족의 짐을 짊어진 사람

고맙지 않고 수치스럽고 만만하고 보이지 않은

예민하고 민감하고 죄책감과 두려움이 큰, 분위기를 잘 파악하고 신경쓰는,

부모의 보호자, 우상 대리인 악당, 광대 문제아 등등등

7 가족구조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애쓰지만 구조적 문제로 갈등과 문제를 야기한다.

관계의 문제는 개개인이 아닌 전체적인 시각에서 봐야 한다.

현상 뒤의 감정 (정서), 관계 역학을 봐야 한다.

(아이의 도벽 – 통제 무관심- 불안 잘 키울 수 있을까?- 친밀감 부족- 아이의 불안 혼란- 도벽)

8. 가족 트라우마 (침대위의 여섯사람)

상처는 상처를 만든다.

가족은 두 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두 남녀의 선택과 동시에 이전 세대에서 수없이 반복되고 해결되지 않은 상처들 역시 함께 선택된다.

가족은 무의식적으로 감정 욕구 신념 등을 공유한다.

어쩌면 인생이란 도화지의 절반이 채워진 채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9. 존중받고 싶은 욕구 (권력)

관심이 필요하다 = 권력을 가지고 싶다.

가족안의 서열문제

의사소통 역시 권력에서 표현된다. (지시 vs 복종)

10 해답은 당신 안에 있다. (관점 바꾸기)

강의 물길을 차단하는 것이 직면이라면 강의 줄기를 바꾸고 흐름을 바꾸는 건 존중이다.

관점이 변하면 다른 것이 보인다.

 

상처는 가만있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고 싶어한다.

위로받고 지지받고 용서받기 바란다.

상처는 현재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상처에 공감받고 싶어 한다.

 

가족의 발견

 

상담에서 ‘의미전환’ ‘재구성’ ‘긍정적 피드백’이라 부르는 치료기법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과 갈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고통을 유발하는 환경을 바꿀 수는 없어도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어떤 사건이나 문제 행동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 그에 대한 개인의 관점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관점도 바뀐다. 새로운 의미 부여나 의미의 전환은 내면의 판단 기준과 사고의 틀에 영향을 주고 부정적인 측면 반대편에 있는 긍정적인 측면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뭄ㄴ제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치료과정이 된다.

 

화가는 한 곳을 소실점으로 정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려 나간다. 우리는 풍경 그 자체를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점을 중심으로 풍경을 그리고 그 외에 다른 것들을 본다. 그림의 전체 구도는 관점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기에 객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일한 풍경이라도 어디에 기준점을 찍고 바라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이 소실점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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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불안, 우울증, 위통, 여드름, 알레르기 같은 증상들을 유발한다. 분노를 자신의 내면 깊숙이 억눌러 둔 사람은 이를 느끼고 적절히 표출해야 하지만 분노가 허용되지 않은 환경 속에서는 분노를 더 깊은 곳으로 가져간다. 이렇게 하는 그들은 착한 사람들이다.

분노의 표현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은 욕구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분노와 욕구가 표출되지 못한 채 내면에 쌓이면 분노는 부패되고 변질되어 원망이라는 감정으로 변한다. 분노는 사랑과 관심 이해를 원하는 감정이지만 원망은 파괴를 원하는 감정이다. 원망의 감정에 휩싸이면 모든 대인관계가 자기 안에 있는 원망을 더욱 건드리고 촉진시켜 고착된다.

회복은 자신안에 있는 감정을 알아채는 데서 시작된다.

안정된 치료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분노의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해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자기 안에 있는 분노를 이해받으면 그 자신도 그것을 인정하고 해소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관계의 문제’는 상대방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해결의 열쇠를 상대방이 쥐고 있다고 생각하면 답답하고 조급하지만 열쇠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부담감이 훨씬 덜해진다.

 

니체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권력이 필요하다.’

모든 인간은 권력을 추구한다. 단지 힘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인정받기 위해, 자존감을 획득하고 자기 삶의 의미를 얻기 위해서이다. 권력은 힘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아실현과 자기 성취를 위해서 필요하다.

마음의 병을 가진 모든 사람의 한가지 공통점은 바로 무기력이다.

무기력하다는 자기 인식은 더욱 무기력한 상황을 불러온다.

때로는 자살이 주도권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일하게 자신의 몸에 혹은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자해밖에 없는 경우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주도권이 있어야 한다.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무의식을 의식의 차원으로 바꾸는 것

과거고통과 기억들 감정들을 잘 분류하고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현재는 과거와 다르다.

나는 누구인지 내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르고 그들 속에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나의 인생에서 ‘현재’는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면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새의 시각으로 보기 (객관적 관찰)

자기 문제를 한걸음 뒤로 물러나 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은 부분이 보이고 여기서 새로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의심하기 – 바라보기 – 결심하기

객관적으로 자기를 바라보면서 홍수처럼 밀려오는 부정적인 생각을 나를 관통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흘러 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내 생각을 의심해 볼 것.

 

 

“어떤 사람이든 사고나 행동에는 반드시 패턴이 있고 그런 패턴이 있으면 거기에 약점이 생기지 (중략) 패턴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어. 음악에서의 테마 같은 거야. 하지만 그건 동시에 인간의 사고나 행동에 틀을 만들고 자유를 제약해 ‘ (1Q84)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으며 이것은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하는 틀이 된다. 마찬가지로 어느 가족이든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사고와 행동의 패턴이 존재한다. 가족 관계의 패턴은 결혼생활 속에서 어떤 관계나 일이 매일 반복되면서 만들어 진다. 그리고 이런 패턴 속에서 가족 문제는 반복된다. 개개인의 성격이나 마음이 맞지 않아서, 조금 더 참지 않아서, 누군가의 성격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일정한 패턴에 따라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가족은 백지상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이전 세대의 가족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온다.

 

가족문제에서 현재의 문제가 과거의 문제의 연속이거나 반복임을 알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반복의 매듭에 얽매어 있거나 자신을 잡아주고 끌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채 불행하르 반복하고 있다.

 

기성세대의 가족상처 3종세트 – 돈만 벌어오는 가장, 중독(숨은 중독 오피스 중독) , 무기력.

*무기력 자신감과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사람, 자기 학대적 우울, 폭력적 절대적인 가부장

잃어버린 자신의 힘을 가족 안에서 보상받으려고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자기중심적으로 주변과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이유는 어린 시절 자기 중심적인 시각을 건강하게 성장시키지 못한 데 있다. 어린 시절 학대를 받은 사람은 그에 대한 기억과 생각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를 괴롭히는 학대의 환경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도 그에 대한 생각들로 아침부터 밤까지 내내 고통을 당한다.

트라우마 희생자들은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 그들은 왜곡된 시각을 통해 다른 사람이나 사건을 바라본다. 불신으로 가득한 자신의 세계에 너무 익숙해져서 여전히 믿을 수 없게 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본다. 그 결과 그들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늘 적대적이고 위험하고 불안하다.

(자신의 욕구에 대해 미숙한 사람, 자기 감정과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기중ㅅ임적 시각에서 자기를 보고 있다. 자신이 아들이 아닌 딸이라서 엄마의 인생을 힘들게 만들었고 엄마와 고통이 모두 자기때문이라며 스스로 수치스러워했던 바로 그 시각으로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

 

상대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수많은 실망과 갈등을 낳는다. 여기에 덧붙여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가 행동할 것이라는 거울생각의 함정은 남녀 관계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 위험으로 빠뜨릴 수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생각을 투사한다‘

우리는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한다면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어떤 특정한 행동은 자기 마음속으로 정해놓은 일정한 행동으로 상대방도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 그대로 행동하고 반응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안타깝게도 안제나 빗나가고 실망감을 안겨주게 된다. 남녀의 근본적인 갈등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두 남녀는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고 기대하는지 전혀 모른 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상대가 행동해주기를 바라면서 더욱 갈등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자존감이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와 가족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가족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가족구성원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키기는 사실상 어렵다. 그러나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각은 변화가 가능하다.

 

가족향상성

가족 간의 느낌 안정감, 생산성, 친밀감과 관계의식, 통합된 구조의식, 책임감, 도전과 자극의 욕구, 기쁨과 긍정의 욕구 등 모든 심리적 욕구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가족은 항상성의 법칙에 따라 가족 내 문제를 계속 유지한다. 한 가족은 언제나 일정한 긴장과 갈등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가족항상성이다. 가족항상성은 나아가 가족의 문제와 증상이 어떻게 계속 유지되는지 설명한다. 즉 패턴화된 가족 증상을 잘 설명해준다.

 

가족의 균형이 깨졌다는 건 지금까지 지속된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항상성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 가족 안에서 누군가의 변화가 받아들여지면 이것은 당사자의 변화에서 가족 전체의 변화로 이어지게 된다.

가족안에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개방성과 폐쇄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사이의 경계와 접근성

가족안에서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지만 기본적인 관계의 틀과 질서는 있어야 한다.

 

가족 안에서 일정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가족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의 서열, 즉 가족내 자기 자리가 분명해야 한다. 만일 가족 구성원 중에 자기 서열이 무시되고 불분명한 위치를 점하는 사람이 있을 때 가족 안에는 반드시 갈등과 문제가 생긴다.

”가족 갈등과 문제는 가족 안에 존재해아 하는 사랑의 질서가 무너졌을 때 발생한다.“

사랑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먼저 경계가 필요하다.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비밀 자기만의 세계가 어느 정도 허용되면 아이는 부모에게 존중을 받는다고 느낀다. 부모 자녀 관계는 사랑만으로는 안된다. 균형을 잡아주는 존중이 필요하다.

경계가 존재한다면 이번에는 접근성이 필요하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서로 다가갈 수 있으며 정서적 교류를 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능력이다. 공감은 보통 다음과 같이 형성된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에게 감정이입을 하면 상대방은 자신이 이해받는다고 느낀다. 그러면 두 사람 간에 신뢰가 쌓인다. 타인의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으로 상대방이 표현하는 것에 주파수를 맞출 수 있다. 그 순간 별개였던 두 사람은 감정적으로 연결이 된다.

우리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공감능력 덕분이다. 비록 상대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지만 그의 기분이 어떤지 입장이 어떤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헤아릴 수 있고 이것이 서로 간에 소통을 가능하게 만든다.

 

가족의 진짜 문제는 트라우마를 일으킨 그 사건이 아니다.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 어떤 이해도 공감도 받지 못했던 데 대한 절망과 슬픔이라는 사실이다.

일어난 일이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반응, 말이 상처가 된다.

 

정면 공격이 아닌 측면 공격

부정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대신 긍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행동을 촉진하여 부정적인 요소나 문제를 중화시킬수 있다.

이때 필요한 최고의 행동은 감사다. ( 감사 일기 쓰기)

 

이야기 치료는 문제가 가족들이 공유하는 이야기 속에서 존재하고 유지되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가족 문제를 하나의 이야기로 객관화시켜서 가족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사람이 아닌 문제 자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사람들이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관계의 맥락 속에서 발생한다. 문제는 관계와 소통의 과정 중에서 발생한다.

가족에서 문제를 떼어내면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문제에 이름 붙이기

지금껏 말하지 못했던 것을 이야기와 생각을 통해 정리하고 구분하는 행위는 감정적인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 자기가 겪었던 트라우마를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상처는 이제 덜 아프고 통제할 수 있는 상처로 변할 것이다.

 

뭐라고 할 수는 없으나

남자들이 쓴 심리서적에는 특히 가족상담 심리서적에서는 고개숙인 남자에 대한 애틋함이 늘 배어있다. 가장의 고단함을 이야기 한다.

돈벌이에 급급해서 그게 가장의 역할 전부라고 생각해서 가족을 등한시 했던 가장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이야기 하며 그렇게 살지 말라고 가족을 돌보고 함께 눈맞추고 살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결론은 그들이 외롭고 측은한 존재라는 걸 자꾸 들먹인다.

그래서 어쩌라는 걸까

가장이 집 밖에서 집안을 위해 애쓰고 있는 동안 다른 가족들이 희희락낙하며 편하게 지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이지 않은 노동, 댓가가 없는 노동인 가사일을 하는 아내가 있고 (어쩌면 함께 경제활동을 했을 수도 있다.) 부모와 감정을 나누고 위로받고 싶었지만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고 견딘 자녀들도 있다.

가족은 모두가 함께 견디는 존재들이다.

내가 너무 힘겹게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면 내 가족 역시 그렇다.

가족은 집단이고 서로 정서공동체이다.

모빌에 비유되는 가족인 만큼 누군가 애쓰고 견디는 그 힘에 다른 가족에게 그대로 전달이 된다. 그 견딤에 감사하며 함께 견디기도 하지만 그 견딤이 너무 힘들고 부담스러워 참으면서 견디는 구성원도 있다

가정폭력을 알고 그래서 해체되어 마땅하다 싶은 가족을 그래도 끌고 가려는 건 폭력 피해자의 몫이었다. 왜 그래야 하나 의문이 들고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가족을 해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은 가족 누구에게나 있다.

죄책감을 갖거나 나중에 어떤 모멸감이 올지 몰라 두려워할 수도 있고

자녀에게 망가진 가족을 안겨줄 수가 없기도 하고

경제적인 문제나 주변의 시선때문일 수 있겠으나 가족구성원 누구든 견디고 버티고 있다.

 

애착 문제가 나오면 늘 엄마는 죄인이 된다.

자식을 잘못 키워서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엄마 탓이 아니라고 하지만 주 양육자는 여전히 엄마라고 생각한다. 엄마와의 애착이 잘못되었다.

엄마가 사회생활을 해서 엄마가 우울해서 엄마가 잘 몰라서

그래서 아이가 망가지고 문제가 생기면 계속해서 엄마의 양육태도를 점검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만 그 교육과 점검에 아빠가 참여하는 경우는 참 드물다.

그냥 옆에 있는 사람이다.

엄마와 마주해서 질책하는 사람이거나 상관없이 옆에 서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세상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이 남자여서 당연히 남녀구분을 하고 남녀 역할이 다르다고 믿고 아이 양육과 교육이 엄마의 몫이라고 믿는 그들의 고정관념에서 나온 이론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한번도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으면서 젖은 똥귀저기를 갈고 밤새 아이를 재우느라 눈이 벌개진 경험도 없이 아이가 토하고 아플 때 피가 마르는 경험도 없이 아이의 웃고 울고 싸우고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과정도 없이 보여지는대로 이론을 만든 건 아니었을까

 

가족이 해체되거나 망가지면 가장 피해를 받는 건 어쩔 수 없이 자녀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참고 견디는 건 고개 숙이 남자들 만이 아니다.

남자가 고개를 숙일 수도 있다. 힘들면 누구나 어깨가 처지고 고개가 내려간다.

위로는 누구나 필요하다.

가장이 고개를 숙이는데 아무렇지 않은 가족이 있을까

반대로 아내가 , 엄마가 고개가 쳐지고 수치심 또는 죄책감을 느끼는데 아무렇지 않은 가족이 있어야 할까? 엄마에게 수치심 또는 죄책감은 디폴트 값으로 따라다니면서 아빠의 죄책감은 호들갑스럽게 떨쳐야 할 이물질처럼 군다.

 

가족은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가족이 해체 되어도 괜찮다고 말해야 한다.

가족이 중요하니까.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정말 중요하니까 계속되는 고통이나 상처를 주는 가족은 잘라내고 새롭게 대안적 가족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가족은 하나가 아니다.

한번 만들어지면 영원불변한 것이어서도 안된다.

가족도 유기체처럼 변화하고 생성했다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보면 안될까

세상에는 영원 불변하다고 믿는 것들이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할 때가 많다.

가족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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