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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단지 공작소



















J 이야기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었다고 했다.

내가 동생을 돌보고 사촌 동생들 기저귀를 갈아주고 어른들에게 예쁜 얼굴로 인사를 잘하고 제사일을 도우면 엄마가 내게 고맙다고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잘하네. 고맙다. 등 말을 건네줄거고 내 얼굴을 한 번 더 봐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묵묵무답이었다.

일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내가 하는 일은 당연했다.

제사지내러 왔으면 놀러 온 것도 아닌데 일을 도와야지

어른을 보면 인사하는 건 당연하지

어른이 널 모른 척 하고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정신없이 바쁜데 일일이 그런 걸 누가 신경이나 쓰니?

언니가 동생 봐주는게 뭐가 어때서?

걔가 젤 순한 애인데 걔 봐주는게 뭐 그리 대수라고

엄마가 나를 봐주는 건 공부를 잘해서 성적이 좋았을 때. 학원 선생님이 나를 칭찬했을 때

나 정도면 일반대학보다 의대를 가야하는 거라고 친척어른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를 할 때 그때 엄마는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계속 공부를 했고 공부를 잘 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내가 마침내 원하는 의대를 갔을 때 엄마는 본인의 한이 다 풀린다고 이야기를 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일 그래서 온 가족이 공부를 막은 일

대학을 갔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결혼을 한 것

그냥 이름없는 종가집 종부가 되어버린 일

엄마에게는 모든 것이 한이었고 모든 것이 억울했다.

그 억울함에는 나도 포함되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날개를 달았을거야

그러나 내가 태어나고 엄마는 날개가 꺽였지

나는 엄마와 대화를 끊었다. 공부한다는 건 좋은 핑계였다.

굳이 거실에서 얼굴을 마주 하지 않아도 방에 있어도 좋은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쌓인 분노가 터지던 날 나는 집을 나왔고 독립을 하기로 했다.

엄마가 역겹다고 표현했다.

엄마는 억지로 엄마를 한 거였어. 적어도 나에게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나를 바라보지 않고 엄마가 해야할 의무를 하지 않은 것

그러면서 내게 바라는 것도 많았지

대학을 진학하고 나는 이제 잘 지낼 자신이 있었다.

이대로라면 취직까지 문제가 없을 것이고 독립이 가능하다.

굳이 엄마에게 사과를 받고 싶지도 않고 이제와서 내게 관심을 가져 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지금은 엄마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역겨워

엄마를 이해할 수는 있지. 여자로서 날개가 꺽이고 가부장제안에서 희생만을 강요당한거 충분히 이해하지만 엄마가 딸에게 그러면 안되는 거였어

 

딸의 존재를 부정하고 딸을 차별하고 딸을 자기 꿈의 대타로 만드는 것

어쩌면 그 덕에 내가 이만큼 왔다는 것 그건 인정할게

 

나중에 돈을 벌게 되면 엄마에게 거금이 든 통장을 던질거야

그동안 키워준 빚을 이걸로 갚겠다고

그리고 이제 우리는 영영 보지 말자고

물론 그 사이에도 볼 일은 없겠지만 이제 나는 마음의 빚도 없는 타인이라고 단호하게 말할거야

그런데 그 돈을 내밀면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게 어떤 말을 할까

그 표정과 말이 궁금하면서 두려워

내가 원하는 건 뭐였을까

 

 

“나는 엄마가 이해하지 못할 것들을 내가 원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우리는 서로의 차이점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녀한테 그 차이점을 숨기려고 애쓰며 나는 오히려 정말 피하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 내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에게 모든 걸 말했어야 했던 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 경우 생겨날 수 있는 또다른 잔인함이 드러났을 것이다. 엄마를 더 신뢰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녀에게 거듭 상처를 주었다.

 

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화나게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들을 잃을 위험은 다르다. 오랫동안 나는 그 둘을 구별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뒤에야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줌으로써 생긴 고통과 그들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구별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극복이 가능하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일이다. ”

(테스모포리아 중)

 

페르세포네가 지옥에서 보내 계절 그 계절이 어둡고 암울하기만 했을까

데미테르가 딸에게 느끼는 불안. 나를 떠나면 고통스럽고 위험한 일을 경험할 거라는 두려움 누군가 분명 내 딸을 납치해서 해꼬지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들이 딸을 보내기 주저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딸은 납치범을 따라가고 싶어하고 그와 함께 지내는 일에 대해 주저하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그를 따라가는 일 그게 엄마에게 가장 두려운 일일 수 있다.

그렇게 떠난 딸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마음 그걸 두려워했을 것이다.

지하세계로 간 딸은 바쁘다.

엄마 전화 못해서 미안해. 수업 때문에 너무 바빴어.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 잘 지내고 있어

괜찮아. 별 일 없어.

이 중 절반은 사실이고 절반은 사실이 아니지만 문제 없었다.

집이 그리웠고 돌아오면 편안했다. 그러나 얼른 그 곳을 떠나고 싶었다.

욕구처럼, 굶주림처럼, 어떤 특정한 종류의 사랑처럼 내안에서 근질거리는 욕망처럼

 

우리는 우리를 납치한 것들을 사랑하기도 한다. 때로는 사랑하는 이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나는 상상한다. 만일 내 인생의 절반이 누군가에게 묶여 있다면 나도 그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페르세포네는 지옥에서의 일들을 일일이 이야기 하지 않는다.

데미테르는 궁금하지만 물을 수 없다. 무엇과 직면할지 두렵다. 그저 잘 있다는 말을 믿고 싶다.

지옥에서 엄마에게 왔을 때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는 걸 딸들은 안다.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

그 말 조차 힘들다. 그 말은 왜 걱정해야하는지를 또 설명을 해야 한다.

지옥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 그도 나쁜 사람이 아니야. 설명하기 어렵지만..

여기 지옥은 완전 다른 세계지만 여기 역시 내 집이기도 해.

그말을 짐작하지만 듣는 건 다른 일이다.

그래서 엄마도 딸도 침묵한다. 상처를 주고 싶지 않고 상처를 받고 싶지 않고 그것을 상처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하지 않은 말들은 어쩌면 상대를 배려하는 행동이다.

짐작할뿐 더 이상 알지 않으려는 태도들

더 이상 알려주지 않으려는 태도들

그러나 그 배려앞에서 상처입고 상처받았다는 사실에 또 마음이 아프다.

어려운 관계다

아버지와 아들도 그럴까? 아닐 것이다.

 

착한 여자아이들은 침묵한다.

아니예요 부모님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되요. 상황이 더 나빠질 뿐이예요.

 

우리가족은 지옥의 한철을 빠져나왔고. 나는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했다. 마침내 나는 안다. 내가 그녀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그게 그녀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 일을 부끄러워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슬퍼하리라는 걸 알았다. 그 일이 또다른 재앙이 되리라는 걸 알았다.

나는 그녀의 또다른 손이었고 그녀에게는 내가 필요했다. 나마저 망가질 순 없었다. 그래서 또다른 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해 덜한 재앙 속으로 나자신을 숨겼다. 나 자신을 완전히 숨겼다.

엄마는 아버지가 오랫동안 품어온 죽음의 꿈속으로 매일매일 일허라 갔다가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녀에게는 내가 필요했다.

(제너두)

어쩌면 모두가 견디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말하지 않은 것이 보호하는 일이고 내가 부모를 보호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철이 든 거이다. 내가 의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에게 의지하는 어른이 있다는 감각이 깨어나면 아이는 그 순간 어른이 되어버린다.

내게 닥친 일들 내가 받은 모멸감과 고립감과 두려움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내가 겪은 것들이 폭력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닌 가엾은 피해자일 뿐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나도 즐거웠고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이 필요했다.

그래서 침묵했고 괜찮다고 했고 그냥 견뎠다.

내 엄마가 모른다면 괜찮다. 그냥 없는 일일 수 있다.

그렇게 겪어온 시간을 서로 나누었을 때 상대가 받을 충격이 걱정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내가 단단해졌다

내가 그 모든 이야기를 글로 쓰고 모두에게 공개할 수 있다면 단 한사람 그도 괜찮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그 시간을 건넜다.

그리고 지금은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가끔 상대의 비밀을 알고서 비로소 이해가 될 때가 있다.

그가 하는 말 절대 감옥에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그 얼토당토않은 한마디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고 얼마나 복잡한 감정이 들어있느지 나중에 비로소 퍼즐이 맞춰졌다.

아무렇지 않게 딸을 감옥에 보내고 인생을 망가뜨린 부모

작은 잘못에 대한 큰 벌

그 잘못 역시 본인 마음에 들지 않은 행동들이었다는 것

그 경험앞에서 엄마는 반항하는 딸과 손녀가 두렵다.

그러다 감옥을 갈 수도 있다는 강한 신념이 계속 그 엉뚱해보이는 말을 중얼거리게 한다.

도데체 나를 어떻게 보고 하는 말이야

내 아이가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 아니라고

그러가 그 한마디에 담긴 그 마음을 알고서 비로소 이해가 되고 마음이 무너진다.

(열다섯)

 

아이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정확히 그들이 원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모습 그대로 기억하게 해주는 것에는 아름다움과 힘이 있다.

나는 이야기가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야기는 우리의 위대한 자산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기꺼이 뭔가를 공유하려고 하는 것은 친밀감을 시험하는 행위이며 천상의 선물이다.

고백은 그 사람의 어깨위의 짐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지만 인간애를 나누는 순간이기도 하다. 정중함의 베일, 일상의 베일을 벗고 그 순간 진실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신이 누구인지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야기 하는 자는 결국 살아남은 자다.

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살았다. 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망각과 상실괃 J 나아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맞선 싸움이다. 죽은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는 부활한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우리의 삶은 곱절이 된다.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하는 것들이 완전한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안다. 아이들의 장밋빛 세계가 현실이 아님을 알고 그것을 누군가가 인정한다는 것이 위안이 될 수 있다. 인생은 복잡하고 풍요롭다는 것 암울하지만 동시에 아름답다는 것 (이야기 하지 않은 건 없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화를 거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걸면 엄마가 말을 할 것이고 그러면 엄마를 사랑하기 너무 힘들어질까봐 두려웠다.

내가 엄마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그때 전화로 말하려던 모든 것 핸드폰을 꺼내 들고 스크롤하면서 엄마를 차자가 그걸 쳐다보다가 다시 핸드폰을 치워버린 그 순간 말하려는 모든 것이다.

아마 우리에게는 커다랗게 갈라진 틈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믿는 ‘엄마’ 마땅이 이래야 하고 우리에게 전부를 주어야 하는 ‘엄마’와 실제 우리 엄마가 일치하지 않아서 생기는 틈 내가 그녀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은 내가 그것에 대해 계속 슬퍼하지도 화나지도 않는 길을 찾을 때 그녀에게 이야기하게 될 모든 것이다.

 

모유수유를 그만뒀을 때 불현듯 두려워졌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확실하고 깔끔한 방법 아이가 진정되리라 보장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일시에 사라진 것이다. 아이가 뭔가를 필요로 하고 원하고 힘들어하면 나는 말로 어르고 포옹하고 달래고 물어보고 안아주면서 최선을 다해 추측할 뿐이다. 내게는 단지 인간이 사랑하는 그 불완전하고 추상적인 방식만 있을 뿐이다.

내가 엄마에게 이야기할 수 없던 것은 그녀는 내게 상처를 주었고 나는 화가 났지만 그건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모두 상처를 준다. 그녀는 내게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다. 나를 화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내가 그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마침내 이제 괜찮다는 것이다. (엄마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

나는 괜찮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그말은 이제 그에 대한 사랑이 옅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랑하지 않은 이에게 상처 받을 이유는 없다.

그래서 괜찮다는 말은 이제 우리에게 거리가 생겼고 내가 그 거리를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이고 그 말은 상대를 서운하게 할 수 있는 말이다.

성장과 독립이란 내가 더 이상 너를 필요료 하지 않는다. 덜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므로

평생동안 자식의 성장과 독립을 바라는 동시에 영원히 그 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 역시 엄마의 마음이다.

 

엄마와 내가 이야기 하지 않은 것들은 이렇다. 그녀의 인생이 그리도 불행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 그녀는 나를 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날려버렸다는 것 소원해진 우리 사이에 대해 나는 단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 사실 후회의 감정이 나타나길 기다렸지만 그러지 않아서 놀랐다. 그녀가 자신의 삶에 그리도 불만스러운 건 유감이라는 것 (나는 내 인생 최악의 원수에게도 그걸 바라지 않는다.) 어린 시절 엄마와 나눈 것들은 그립지만 나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고 다시 그렇게 되지 못할 거라는 것 그리고 부모가 되는 걸 고민하는 내내 방해가 된건 은 돈 이나 열정이 아니라 내가 어린시절 배워야 할 것들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두려움

내가 바란 것보다 엄마를 더 닮았다는 두려움이다. (모국어)

 

누구나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다.

이건 엄마와 딸 사이의 사실 명제이고 명언이다.

그래서 엄마와 닮은 나를 보면 두렵고 싫다. 그냥.

 

나는 이제 깨달았다. 내가 한때 엄마에게 뭔가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만큼 엄마도 내게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

그건 단지 물건만이 아니다. 그녀가 내게 주고 있는 것은 베풂이다. 오랫동안 할 수 없어서 회한으로 남은 것, 나는 받음으로써 준다는 것의 만족감을 그녀에게 준다. (오빠 잔돈 좀 빌려줄 수 있어)

 

나는 그녀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며 소중히 여기는 아이인 동시에 쓸모없는 쓰레기였다. 그녀난 가끔 내게 빵을 구워주고 원피스를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나더러 쓸모없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나는 나에 대한 이 두가지 해석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가며 어디에 안착해야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항상 내 정체성의 증거를 찾아다녔다.

 

그들이 자신의 인생을 구하려 들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과 함께 익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를 위해 다른 길을 만들어 왔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나는 내 마음을 알고 그것을 안전하게 지켜줄 이들을 찾았다. 나는 나 자신을 매일매일 대부분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누군가로 만들어왔다. 나 자신에게 나아갔고 사랑도 전염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도 배웠다. 어릴 때는 상상할 수도 없던 인생을 우리가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과거의 어린 우리를 새롭고 눈부신 인생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부모가 주지 않아도 나는 배울 수 있다.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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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차마 할 수 없는 말들은 어쩌면 사랑한다는 말도 포함된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내 마음은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다.

그를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 마음을 표현했을 때 돌아올 것들을 이미 나는 안다.

그냥 무시당하거나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는 면박일 수 있고 말만 하지말고 뭔가 원하는 걸 표현해달라는 뻔뻔한 요구일 수도 있어서 입을 다문다.

되돌아오는 것이 가벼운 고마움 나도 같은 마음이야 라는 동의의 표현이 차라리 낫다.

묵직하게 돌아오는 것들이 두려운 것이다.

엄마라면 당연히 ~ 해야하지 않나 라는 마음에는 자식이라면 당연히 ~ 해야하지 않나 라는 마음이 포개어져 있다.

관계란 그런 것이다. 한 쪽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내가 느낀 부담감만큼 상대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가까울수록 표현이 쉽지 않다.

표현이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부터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 않고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 연습이 있었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상대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뱉을 수 있는 말들이다.

해보지 않은 것은 어렵다.

나도 엄마에게 사랑한다거나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엄마 역시 그런 말을 내게 해주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 당연한 것이 된다. 가족끼리 하는 말이 아닌 것 중 하나가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용서하라 는 말일 것이다.

서로 당연히 사랑해야하고 서로 당연히 해주어야 하고 가족끼리는 잘못할 리가 없다는 명제들이 각각 개인을 외롭게 하고 아프게 했다. 내가 아픈 만큼 다른 누군가에게 되돌려 주면 안되는 것임에도 나는 당연하게 내 딸에게 되돌려준다.

원래 그런거야.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엄마에게 힘든 일들을 말하지 않았다.

친구가 나를 따돌리고 나만 모르고 있는 일이 있는 것 같아.

저 친구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런 마음이 드는 나 자신이 너무 싫어.

일하고 돈 버는 일은 너무 어렵고 세상 모든 상사들은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남편을 만나고 결혼한 나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어

너무 힘들고 괴로워

이말을 엄마앞에서는 꿀꺽 삼킨다.

삼킬 수가 없어서 연락을 아예 하지 않는다.

내가 무심하고 못된 딸이 되는 것이 더 낫지 엄마를 걱정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이 더 두렵다. 누군가가 썼듯이 걱정하고 아프게 하는 것과 그를 다시 보지 않게 되는 것은 다른 일임에도 나는 엄마가 아픈 것이 두려워서 보지 않은 방법을 택한다.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에게 말하지 않은 많은 고민들이 더 아팠다.

함께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도 힘들고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거지 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동안 몰랐던 나 자신이 더 밉고 싫었다.

도데체 내가 어떤 존재로 보였기에 말을 하지 못했을까 라는 마음

그러나 딸의 입장에서는 말하지 못하는 것이 수두룩하다.

내 자존심이기도 했고 혼나거나 걱정하는 것이 싫기도 했고 말을 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지레짐작이었다.

어쩌면 기대가 커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바에는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걱정을 나눌 수 없는 타인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겠지만 결국 나는 누구와도 걱정을 나눌 수 없는 갇힌 사람이었다.

내가 쌓은 울타리가 크고 높아서 가까운 사람과도 거리를 만든다.

해결해 줄 수 없는 사람에게 거리를 둔다.

가족이어도 부모여도 그렇다.

그러나 세상에 내 문제를 나 말고 해결해주는 이는 없다는 걸 나중에 알게된다.

그냥 나눈다는 것 말을 하고 털어내고 그리고 그가 나에게 말을 하고 나에게 털어낼 여지를 주는 것 그게 가장 힘들다.

괜찮다는 말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괜찮아. 걱정마

그런데 안괜찮고 걱정해주면 좋겠어.

그게 해결방법은 아니지만 누군가 나를 걱정해주는 것만으로도 내가 안심되고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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