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삼킨 이후 가지게 되는 편안함
이불킥을 만드는 것은 후회되는 내 말들과 행동들이다.
간혹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 어정쩡하고 용기없는 내 모습에서 이불킥을 하기도 한다.
그때 그런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냥 넘어가지 말아야 했는데
물론 그런 후회도 있다.
어떤 정의앞에서 내가 비굴했던 기억, 그냥 좋은게 좋은거지 라는 말로 변명하며 애써 태연한척 했던 나를 후회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냥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지켜보고 기다리줘야 하는 순간이 있다.
굳이 꺼내 표현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갹했던 순간들이 있다.
내가 조금 참길 잘했지
그건 오래된 사이에서 가능한 것일까? 아니다 처음 본 사이에서도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때로 침묵과 기다림과 그럴 수도 있겠지 라는 포용이 필요하다.
손해보는 거라고 여겨지기도 하고 나만 왜 맨날 맥아리없이 살까 하는 마음이 불쑥 쏟아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럴 때가 있다.
저맘도 내맘같아서 나처럼 견디고 있구나 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전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그냥 가만히 있길 잘 했다는 마음이 들면서 내 머리를 스스로 쓰다듬어주고 싶다.
말을 하면 시원할 수는 있겠지만 그 뒤에 남는 묘한 찌꺼기가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묘해서 내가 견디는 무게만큼 상대도 견디고 있고 참고 있었다.
(물론 서로 평등하고 다정한 사이가 더 그러하다.)
해진 작가의 책은 말하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라면
은영 작가의 책은 말하지 못했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읽힌다.
관계라는 것은 그 자체가 유기체라고 생각된다.
만나고 이어지고 유지되고 그리고 조금씩 멀어지기도 하고 다시 이제 끝인가 싶다가도 다시 이어지기도 한다. 오랫동안 익숙해서 잊기도 하고 다시 되살아나기도 하는 것
그러다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들
관계란 노력이 필요하지만 노력이 무용할 때가 있다.
가장 맛있는 케이크는 안도감에서 오는 것 같다.
내가 천천히 여유있게 맛을 볼 수 있는 순간
그건 내가 말이나 상황에 대해 잘 대처했구나, 내가 괜찮았구나 싶은 순간에 찾아온다.
누군가의 마음을 알게 되는 건 오랜 시간이 흐를 뒤 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시간이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동안 이리저리 흐르고 요동쳤던 내 마음이 이제 한풀 꺽이고 담담해진 순간 그때 그 순간의 마음이나 감정이 이해가 된다. 내가 올려다 보지 못할만큼이 아니라 나랑 다르지 않았다고 믿었던 홍콩친구의 변화들과 성장들이 나를 더 작아 보이게 했지만 결국 나도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나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의 슬픔도 받아들이며 편안해진다.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은 것
나를 드러내는 것과 가만히 있는 것
어떤 것이 더 좋고 나쁨은 없다.
상황이 있을 뿐이고 관계가 있을 뿐이다.
말해도 후회하고 말하지 않아도 후회한다.
그러니 어쩌랴... 정말 중요한 건 후회한 그 이후가 아닐까
후회라는 것이 뒤에 생각하고 알아차리는 것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그러하다.
미리 안다는 것, 당시 알아차리는 일보다 나중에 모든 것이 지난 후에 보이는 것이 더 많지 않을까
은영작가는 미묘한 폭력의 순간을 참 잘 묘사하고 잡아낸다.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이 배려이고 사랑이라고 한다면
상대가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걸 뻔히 알면서 내가 옳다고 믿고 밀어붙이는 건 결국 폭력이다.
고기를 먹지 않은 아이에게 성장 때문에 건강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며 억지로 들이미는 것
그리고 그것 봐라 다 할 수 있지 않으냐며 자기 행동에 합리화 하고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는 것, 그리고 그런 행동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치보며 침묵하는 것
그 모든 것이 폭력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왜 그렇게 어렵고 힘들었는지
내가 버릇없고 예의없는 아이였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일들
폭력은 그렇게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누군가 조금씩 불편한 순간, 혼자만 즐겁고 만족하는 순간, 단 한사람이라도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은 순간,
모두가 고기를 좋아하고 모두가 먹어야 하는 건 아니다.
모두가 이성을 좋아하고 모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함께 웃는 농담도 없고 모두가 함께 금기하는 조건도 없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그래서 삐뚤어 보이고 일그러져 보이게 흘러가겠지만
그것이 일상이 아닐까
말을 하는 것과 하지 않은 것
어떤 쪽이 더 나은 건지 상황에 따라 늘 변한다.
자기를 표현하고 드러내야 상대가 알 수 있다.
알면 오해가 줄고 서로 조심할 수 있고 배려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조금 걸리더라도 한번 꿀꺽 삼켜진 말들 그 말들이 관계를 조금 더 매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그 미묘한 경계를 찾아내는 것
상황이나 상대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아는 것이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고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