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삶을 써보세요.
쓰면 만나고 만나면 비로소 헤어질 수 있습니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한곳에 머물기도 한다.
머문 시간은 갇힌 물처럼 냄새를 풍긴다.
숙성되어갈지 부패되어갈지는 자신만 알지만 때로 스스로도 모를 때가 있다.
그러나 흘러가야할 속성을 가진 것을 그대로 멈추게 한다면 그건 옳은 것이 아닐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야 우리는 또 새로운 시간을 맞이 할 수 있다.
과거는 지났고 미래는 다가올 것이라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흘려보내고 과거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시간은 연속적이지 않고 가끔 장난을 친다.
지금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다시 돌고 돌아서 내 앞에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문제를 끝까지 만나지 않은 건 아주 극소수의 행운이거나 내가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못할만큼 그 문제에서 도망치고 있는 중일 것이다.
저자는 일기쓰기 교실에서 자신의 시간들과 마주한다.
8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한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상을 보여주고 그 아이가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를 꼼꼼하게 기록해나간다.
시옷으로 불리우는 그 아이는 어쩌면 지났지만 내가 몰랐거나 내가 애써 모른 척 했던 시간들일 수 있다. 서서히 몰락해가는 가족들, 무심한 어른들은 시옷이 여자아이인지 남자아이인지조차 관심이 없다. 그냥 보이는대로 자기가 편한대로 판단하고는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왜 오해하게 만드냐고 상대에게 혐오를 드러내거나 폭력을 휘두른다.
환절기 같은 시대에 어른들은 제 고민에 빠져 아이들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 그러나 아이는 늘 조금씩 자라고 있고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누군가 붙잡고 조곤조곤 알려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귀동냥으로 분위기로 그리고 본능적인 감각으로 어떤 변화가 오고 있음을 조금씩 삶의 한 귀퉁이가 허물어가고 있음을 그 몰락을 어른들이 애를 써서 버티고 있지만 쉽지 않음을 안다. 시옷은 귀하게 태어난 아이지만 마음이 바빠진 어른들은 누구도 시옷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아이는 모를 것이고 몰라도 되는 존재이므로
그러나 시옷은 어른들과 함께 또는 어른들과 다른 리듬과 방향으로 조금씩 알아가고 성장해간다.
애니의 도움으로 여자처럼 화장을 하고 합창단에 기어이 갔지만 돌아오는 건 혐오와 모멸이었고 엄마가 싫어하는 제비다방 청년과 함께 하는 시간이 유일한 안식이고 행복이지만 그마저 엄마에게 들켜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제비다방 청년을 많이 오해하고 거리를 두었는데 그는 참 좋은 어른이었다. 무심하게 아이들을 도와주고 책을 읽어주고 시옷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본능으로 안다. 어쩌면 그 청년도 시옷의 시간을 버텨오고 건너오지 않았을까)
아빠가 돌아왔지만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고 동생이 태어났다.
시옷이 태어나는 동생을 부러워 하는 부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태어날 테고 그래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자기 멋대로 판단하지도 않을 것이고 만약 고운 소년이 되어 노래를 부른다면 엄마와 할머니는 빚을 내서라도 단복을 맞춰주었을 것이고..... 동생에 대한 시옷의 마음이 와락 와 닿는다.
그리고 이사한 집에서 만난 눈이 아름다운 윤수
이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둘은 접점이 없었을텐데
작은 집에서 어른들의 관심에서 비껴난 아이들은 용케도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친구가 되었다.
이야기가 막바지를 향해가는데 등장한 윤수가 괜히 마음에 걸렸다.
지금 나와서 그냥 배경처럼 사라질 인물일까
두아이가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고 친구가 되고 곁이 되어주는 시간들은 한없이 따뜻했지만 어느 순간 어른이 된 시옷에게는 윤수와 애니는 등장하지 않았다. 애니는 그래도 유년시절 ㅇ일한 친구였고 자기 방식으로 시옷을 도와준 철없고 아슬아슬한 면이 있으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존재였는데 윤수는 어떤 의미가 될까
애니보다는 좀 더 시옷과 가깝고 은밀하고 서로가 가장 든든한 순간을 경험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보이지 않더니 먹먹한 마음을 남긴다.
수호말처럼 입체적인 새끼였떤 윤수
소심한 소년이었다가 껄렁한 동네 형이었다가 든든한 아들이었다가 속을 알수 없는 중년이 되더니 어느 순간 이웃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가깝고도 먼 동생 윤수가 등장한다.
어느 남매가 그렇지 않을까
내동생은 내가 책임진다고 열기에 끓었다가 나에게 없는 것을 달고 나온 너를 미워하고 증오했다가 서로 데면데면해지고 멀어졌다가 궁금해지지만 그 궁금증이 해소되면 또다시 잊고 살다가 멋쩍은 농담을 던지다가 조금은 어색해지고 멋쩍어지는 사이
윤수도 나름 기록하고 알아가고 버려야할 시간들을 살아왔을 것이다.
시옷이 일기쓰기 교실에서 쏟아낸 자신의 이야기들 비로소 만나고 비로소 놓아주게 되었을까
엄마를 좋아하지만 엄마에게 이해받지 못했고 말하지 못한 것들이 있었는데
여전히 딸 해준과도 사이가 어렵다.
꽃이 진다고 꽃의 잘못이 아니기에 꽃이 다시 피기를 기다리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린 석구와도 어긋나 지금은 가족이 각각 흩어져서 혼자 살고 있는 시옷
지금 이순간 힘듦과 불안을 지금이 아닌 그때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다시 맞춰본다.
지금 내가 이해가 되지 않고 용서가 되지 않으면 과거의 나를 돌아봐야 한다.
내가 나를 이해하는 것
내가 나를 알아주고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 시간에서 내가 놓쳤던 것, 내가 받지 못했던 것들을 그 시간을 다시 기록하고 만나면서 메워나가야 한다. 이제 와서 누구를 무엇을 탓하랴
받아들이는 것 그것도 연습이 필요한 일이더라
시옷이 혜준과 다시 화해하고 석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삐거덕거리는 부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에게 조금 너그러워졌다면 관계에도 기름칠이 되지 않을까??
어디에나 있는 시옷들이 있다.
스스로를 용서하거나 인정하기 쉽지않은 단호하고 엄격한 시옷들이 있다.
그 엄격함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줄도 모르고 절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겠다 폐끼치지 않겠따는 마음으로 단단해지는 그 마음을 방패삼은 시옷들이 있다.
지금 내 곁에도 있고 당신 곁에도 있다.
조금 놓아주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면 주제넘은 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