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할아버지가 책을 매개로 쌓는 우정.
뭔가 뻔한 착한 소설이 아닐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책 속에는 착하고 소설 같은 이야기 그 너머로 “책”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와 책에 대한 애정, 그리고 다양한 소수자의 모습이 조화롭게 어울려 있었다.
중학교-고등학교-그리고 곧바로 취업. 떨어져나온 거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업이, 수치상으로 지원자 가운데 80퍼센트가 바칼로레아(프랑스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통과한다. 나는 그저 나머지 20퍼센트 쪽으로 스르륵 굴러떨어진 거고....중략
나에게는 그저 끝없이 코앞에서 연속적으로 쾅 하고 닫히는 문들일 뿐이었다.
이제 열여덟살이 된 주인공 그레구아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천적이다. 하지만 미래와 취업에 대한 불안과 고민은 한국의 청년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가 자리를 얻은 건 수레국화 요양원.
그렇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요양원이다.
한가롭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인생 100세 시대가 더 이상 축복이 아님을 깨우쳐주는 그곳.
이런저런 일로 그레구아르와 피키에씨는 서로 티격태격하게 되고,
그레구아르는 그가 “곁가지 문학” (!) ㅋ 이라는 서점을 운영했다는 것과 이제는 서점에서 요양원 그의 방으로 옮겨온 3천권의 책이 전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책을 사랑하고 숭배하는 피키에씨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다.
파킨슨병과 녹내장이 그에게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그레구아르나 피키에씨에게 한 시간씩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들의 첫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
책이라면 질색이었던 그레구아르지만, 피키에씨에게 읽어주다보니 어쩐지 자기가 홀든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야기에 따라 마치 홀든이 된 것처럼 얼굴이 빨개지기도 하고, 또 그 공허함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그렇게 시작된 낭독의 시간.
모파상, 잭 런던, 알렉산드로 바리코, 가스통 바슐라르, 로트레아몽,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프랑수아 라블레, 디노 부차티....
프랑스 문학사에 남은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에서부터 고전 명작, 해외 명작, 현대 소설, 금서에 이르기까지 자기만의 리스트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상황과 상대에 맞는 작품들을 이제는 “선별”하고 “선택”할 수 있게 된 그레구아르....
그렇게 그에게도 책이 스며들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책 속에는 “책”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피키에씨의 입을 통해 설명되고 전해진다. 작가와 독자는 물론, 피키에씨처럼 책을 판매하는 서점주인의 이야기, 번역가에 대한 이야기등. 한국의 상황과 비슷한 것도 있고, 다른 점도 있는데 어쨌든 피키에씨의 기본 마인드는 “리스펙!” 이기 때문에 읽는 나도 같이 고맙고 흐뭇한 마음으로 읽게 된다.
텍스트들마다 나는 제목, 작가 이름, 번역가 이름을 기록한다. 책방 할아버지는 나에게 항상 번역가 이름을 언급하라고 가르쳤다. 그들이 기여한 몫에 대해 정당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서다. 번역자들이 없다면,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그 작업이 없었다면, 그 작품들은 우리에게 영원히 낯선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p.116)
이 세상에 그 어떤 책도 단숨에 써내려진 건 없어. 글쓰기는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작업일 뿐이지. 새 양초가 완전히 타들어갈 때까지 말이야. 전달되는 시간은 불꽃에 맡겨두고..(p.62)
겉으로는 평화롭지만 정해진 결말을 가진 요양원의 노인들에게 그레구아르가 낭독하는 책속의 이야기가 그야말로 오늘을 새롭게 만들고, “지금 이 순간”을 빛나게 해준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던 수레국화 요양원은 그렇게 조금씩 하지만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모르게 들썩이고 생기를 가진다.
책 속에는 다양한 소수자들이 혹은 사회적 약자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피키에씨는 성소수자이고, 그레구아르는 교육이나 소득이 그야말로 하위층에 속하는 약자고 비정규직이다. 디알리카는 세네갈에서 취업을 위해 프랑스에 온 간호사다.
이들 모두는 책을 통해서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배려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눈다.
어쩌면 기초교육기관에서 제일 먼저 배우고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인데, 막상 우리의 현실에서는 제일 먼저 생략되고 외면받는 그런 어떤 덕목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피키에씨의 마지막 미션을 수행하는 그레구아르의 모습을 따라가다보면 인생 뭔가 싶은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그냥 착한 소설로 집어들었다면, 다시금 “책”을 좋아하고 그 속에서 열린 또 다른 세상을 만났던 나의 기억들을 소환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열리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그야말로 이불 밖은 위험한 요즘,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겨울밤 펼쳐보면 딱인 소설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책은 우리를 타자에게로 인도하는 길이란다. 그리고 나 자신보다 더 나와 가까운 타자는 없기 때문에,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책을 읽는 거야. 그러니까 책을 읽는다는 건 하나의 타자인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행위와도 같은 거지. 설령 그저 심심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을 읽는다 해도 마찬가지야. (p.53)
책은 우리를 타자에게로 인도하는 길이란다. 그리고 나 자신보다 더 나와 가까운 타자는 없기 때문에,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책을 읽는 거야. 그러니까 책을 읽는다는 건 하나의 타자인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행위와도 같은 거지. 설령 그저 심심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을 읽는다 해도 마찬가지야.
- P53
걷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너는 더 이상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너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자기 삶의 지표가 된다. 그리고 의식하지도 못한 채, 과거는 멀어질 뿐이고 미래는 다가올 뿐인 배경 속에서 가장 순수한 현재에 다다른다.- P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