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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돌프의 사랑
  • 뱅자맹 콩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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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11
  • : 762

아돌프의 사랑

뱅자맹 콩스탕 지음, 김석희 옮김

문학과 지성사 펴냄

"아돌프, 당신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이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내가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나를 위해 당신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거라고요. 당신은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동정일 뿐이에요."

88쪽

아돌프는 냉소적이며 한편으로는 상대방을 괄시하는 듯한 느낌을 풍기는 젊은이다. 그에 대한 사교계의 특이한 평판 불구하고 스스로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청년이라 여긴다. 순수와 냉소, 전혀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관 사이에 그 어떤 고민도 하지 않는 아돌프는 일찍이 모순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리고 아돌프의 모순은 한 여자, 엘레노르의 삶을 끌어내릴 것을 암시한다.

아돌프는 우연히 P 백작의 첩인 엘레노르를 만나게 된다. 그보다 열 살 많은 그녀의 지성은 평범하지만 아이가 둘 있음에도 엘레노르의 미모는 여전히 빛났다. 아돌프는 엘레노르의 배경과 가치관에 어울리지 않는 사회적 위치에 호기심을 품는다. 그리고 그의 "순수"한 열망은 엘레노르의 결점을 탐색하며 사랑으로 변질된다.

(...) 그녀는 어쩌면 가장 지체 높고 품행이 반듯한 사람들만 자택에 초대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아무하고나 교제하고, 따라서 존경을 잃는 것쯤은 염두에도 없으며 인간관계에서 추구하는 것이라고는 오직 향락밖에 없는 그런 족속의 여자들과 자신의 운명이 끊임없이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녀는 일거수일투족을 통하여 자신이 처해 있는 계급에 반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31쪽

그는 엘레노르를 특별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사랑의 대상이 아닌, 타겟으로서 엘레노르를 대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가 가진 권력과 힘은 인정하지만 동시에 어떤 혐오감을 가지며 남들이 줄 수 없는 씻을수 없는 상처를 남기려한다. 아돌프의 치기어린 모습은 어떤 면으로는 사랑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껄끄러운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사랑이 전부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린 엘레노르와 달리 아돌프는 그 어떤 것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돌프는 엘레노르가 멀어질 때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반대로 틈없이 가까워질때면 벗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옭아맨다. 결국 모든 것을 잃고 지쳐버린 엘레노르는 아돌프에게 자신을 내버려두기를 간청한다. 엘레노르와 아돌프 두 사람만이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돌프는 자유를 갈망한다. (도대체 어쩌라는 거지?)

나는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런말을 털어놓게 만든 그 감정이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사라져버리다니, 이 변덕스러운 마음의 갈피를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 108쪽

오만하다. 아돌프는 아주 오만하다. 하다못해 마음의 파동을 걷잡을 수 없으면 하나라도 놓치는 법인데 엘레노르와의 관계 완급조절을 화가 날 정도로 한다. 그것을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은 이별하고 엘레노르는 파국을 맞이한다. 결국 아돌프는 엘레노르의 완전한 무너짐 이후 그녀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발견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간다.

책을 덮고 처음 느낀점, 등장인물 중 자주적인 사랑을 한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는 것이다. 엘레노르에 대한 은근한 멸시를 즐기며 그 누구보다도 숭고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는 아돌프, 아돌프의 사랑은 몰아치는 감정과 자신을 지켜주는 사회적 울타리 안을 맴도는 하루살이 같았다. 단 몇분 안에 죽어버리는 사랑,(사랑이라 부르기도 애매하다.) 엘레노르에 대한 사랑을 목적으로 움직인 것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엘레노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지위적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모든 것을 갖고 싶어했던 그녀는 뒤돌아서야할 때를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특히 어느 시점을 지나면 아돌프에게 움켜져 고통으로 가득찬 사랑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피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완전한 파멸로 마무리 되는 엘레노르의 모습은 자주를 잃은 사람 그 자체였다.

<아돌프의 사랑>은 불편했다. 젊다 못해 어리고 모자란 사람이 사랑이 전부인 사람과 엮일 때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모두 나열한 듯 했다. 뿐만 아니라 심리 묘사를 아주 치밀하고 단촐하게, 한 줄에 파악할 수 있게끔 표현했다. 많지 않은 등장인물과 제한된 상황은 로맨스적 요소가 조금이라도 가미되어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스릴러 작품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짧고도 명료한 서사, 그러나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스토리를 원하는 독자라면 <아돌프의 사랑>을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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