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주는 이 책을 읽기로 했다.
며칠 걸릴 지는 모르지만.
나의 독서법은 이러하다.
일단 징검다리 건너듯 눈에 띄는 텍스트 위주로 읽는다.
읽으며 밑줄, 하이라이트 총동원.
(이런 움직임을 양산하지 못하는 책은 일단 덮고 모셔둔다.
이런 책은 시간이 지나 내 자리나 위치나 입장이나 하다못해 나이라도 좀 바뀐 다음에
다시 본다. 그럼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그때도 안 달라지면 과감히 중고판매하거나 폐기한다.
더 좋은 책을 데려오기 위해)
재독 시에는 그 텍스트 근처를 탐색한다.
재독 때, 초독시 놏친 보석같은 텍스트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그걸 위해서다.
삼독을 부르는 책은 '양서'다.
내게 그렇단 말이다.
내가 양서 발굴 전문가는 아니니까.
이 책을 사서 읽기로 한 이유는...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잘 안 빌린다.
밑줄을 못 그으니까.
밑줄이 그어지지 않는 텍스트를 읽어나갈 용기가 내겐 없으니까.
나는 피아노를 엥간히 친다.
엘리제를 위하여,가 18번인데.
눈감고도 치는데.
악보가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도 피아노 잘 친다는 소리를 늘 듣게 해주는 곡이다.
그런데 랑랑이 치는 이 곡을 듣고, 그동안 내가 쳐온 '엘리제를 위하여'에 미안해서 혼났다.
내가 얼마나 빨리 치는지 깨달았고,
이 곡은 굉장히 슬픈 곡이고,
안에서 부서지는 슬픔을 모아모아 덩어리로 만들어
좁은 목구멍으로 끌어올리듯 쳐야한다는 것을,
그래서 아주 천천히 쳐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렇게 천천히 쳤더니,
우리집에 같이 사는 사람이 이런다.
피아노 실력이 퇴보했냐고.
천천히 친다고 랑랑처럼 칠 수 있는 건 아닌데 말이지.
책으로 돌아가자.
이 책은 피아니스트가 쓴 책이다.
미국의 피아니스트로 오벌린 대학에서 '당연히'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화학도 같이 공부했다.
박사는 줄리아드 스쿨에서 마쳤다.
우리집에서 딱 35분 걸리는데.
가본 적도 있는데.
각종 악기를 떠매고 끌어안고 다니는 음악학도들의 눈빛을 구경했다.
대개는 날 쳐다보지 않았다. 그래서 구경하기 좋았다.
물론, 나도 옆눈이나 흘끔거림이라 내가 보는 줄 몰랐을 테지만.
비록, 눈으로 마주하진 못했지만
그들의 탁월할 영감이 가득한 건물 안에서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영감을 느끼는 것 같아 좋았다.
순전히 기분 탓이겠지만.
제러미 덴크는 카네기 홀에서 자주 공연한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음반이 알아준다.
'리게티/베토벤' 음반은 '뉴요커'에서 올해 최고 음반으로 선정되었다고.
당장 사야겠다.
2018년, 19년에 한국에 와서 리처드 용재 오닐과 듀오 콘서트를 했다고.
그의 눈에 띄는 특징은
글을 잘.쓴.다.
이 정보에 눈이 번쩍 띄었다.
글 잘 쓰는 피아니스트.
자기 음반에 대한 해석을 스스로 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
머리말부터 읽어야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단순합니다. 직접 대면하여 말로 가르치는 음악 교습의 전통을 보존하고 싶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식으로 음악을 배웠고요.
나도 내가 배운 소설쓰기 방식으로 소설을 가르친다.
나한텐 학위도 뭣도 없지만 내가 배운 방식이 있다.
그 방식이 좋은지 성공적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있게 된 방식임은 안다.
지금의 내가 좋은지 성공적인지, 당연히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을 가르칠 수 있는 건,
내가 배운 걸 존중해서일 것이다.
스승을 존중하고, 그 스승의 가르침을 존중한 나를 존중하고.
그래서 '가르침'은 '존중'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얼마간의 돈과 보람이 따라오는 건
피로와 노력이 앞서야 하니 뿌라스, 마이너스 하면 그 값은 '0'일 것이고.
남는 건 '존중'이란 뜻이다.
이 책의 '가르침'이 존중 같아서 맘이 일단 열린다.
한 인터뷰에서 저는 이 책을
'음악 교사들에게 바치는 러브레터'라고 했습니다.
러브레터.
좋다!
회고록 중간에 저만의 독특한 레슨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끼워 넣었습니다.
음악의 가장 기초적인 면들을 엉뚱한 방식으로 생각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엉뚱한 방식
좋다!
토론토에서 수줍음 많은 한 피아니스트가 말하기를 제 책이 자신의 불안정함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음악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자기만 힘든 삶을 사는 게 아님을 깨닫고 힘을 냈다고 했습니다.
(중략) 이것이 제가 받은 최고의 찬사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울컥하는지.
내가 쓰는 소설을 읽은 독자가 내게 이렇게 말해준다면...
작품을 만들고, 연주하는 사람들의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