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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는 젤소민아
  •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 존 버거
  • 15,000원 (450)
  • 2017-03-05
  • : 1,070

나는 거의 팔십 년간 글을 써 왔다. 처음엔 편지였고, 그 다음엔 시와 연설, 나중엔 이야기와 기사, 그리고 책이었으며 이젠 짧은 글을 쓴다.

(7p)


존 버거는 1926년 생을 얻고 2017년에 죽음을 얻었다.

팔십 년간 글을 썼다면 91세까지 살았으니, 11세부터 글을 썼다고 셈한 것이다.


글을 쓴다는 건 많이 쓰는 것보다 '오래' 쓰는 게 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어른이 돼서, 할 일 다 하고, 

시간이 좀 남기 시작하고, 머리에 생각할 여유가 좀 생기고...


그럴 때 쓰기 시작하면, 마음이 급해진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상을 받은 말든, 잘 쓰든 못 쓰든...

어렸을 때부터, 그냥 써 온 사람이 조금은 글쓰기에 유리하다는 생각이다.


주변에서 보면 그렇다.


글 잘 쓰는 사람 치고, '오래' 쓰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썼다. 쓰기 시작했다.


물론, 나이들어 글 쓸 필요가 없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써서 나중에 80년 간 글을 써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글쓰기에 관해서만큼은 뭔가 이루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다. 


존 버거가 그렇듯이.


번역은 두 언어들 사이의 양자 관계가 아니라, 삼각관계이기 때문이다. 

삼각형의 세번째 꼭짓점은 원래의 텍스트가 씌어지기 전 그 단어들 뒤에 놓여 있던 것이다.

진정한 번역은 이 말해지기 전의 무언가로 돌아가야 한다.


(8p)


좋은 문장은 결이 많다.

그 많은 결은 동일성과 상이성을 모두 품고 있다.

이 떄의 '상이성'이나 '이질감' 또한 전체로 보면 

'맥이 통한다'라고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장은 좋은 문장이고-존 버거가 썼으니까-

그런 만큼 결이 다층적이다.


여기엔 우리 삶의 많은 것을 대입해도 말이 된다.


소설,을 한 번 넣어보자.


소설은 현실과 언어 사이의 단순한 대응이 아니다. 

소설을 현실의 모사나 재현으로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을 놓친다. 


소설은 현실과 언어의 이자 관계가 아니라 삼각관계이기 때문이다(위 인용글처럼). 

그 삼각형의 세 번째 꼭짓점에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 

인물이 말을 하기 전, 세계가 아직 이야기로 굳어지기 전의 어떤 상태가 놓여 있다. 


감정이 아직 감정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의 상태, 

의미가 의미로 확정되기 전의 불안정한 떨림이 거기 있다.

그래서 소설은 일어난 일을 그대로 옮기지 않는다. 


소설은 언제나 이미 일어난 일 뒤로 물러나, 

그것이 일어나기 이전의 필연을 더듬는다. 

사건은 결과로 제시되지만, 

소설이 집요하게 파고드는 건 그 사건이 불가피해지기까지의 시간이다.

말해지지 않은 선택들, 

침묵 속에서 축적된 압력 같은 것들... 


소설의 문장은 현실을 설명하는 문장이 아니라, 

현실이 언어가 되기 전의 상태를 다시 통과하려는 시도다.


나는 그래서, 진정한 소설은 언제나 시작하지 않는다고 믿는 편이다. 

소설은 어디서 시작하더라도 언제나 이미 시작되어 있었던 지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첫 문장은 출발선이 아니라 도착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말해질 수 없었던 것, 말해질 필요조차 인식되지 않았던 것에 

마침내 언어가 닿는 순간, 

나는 그런 게 소설이 아닐까 한다. 


많은 경우, 소설은 이야기를 만드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아니, 소설은 이야기가 되기 이전의 세계를 다시 불러오는 문학이다.

그렇게 소설은 언제나 늦게 도착한다. 

그러나 바로 그 늦음 덕분에 소설은 비로소 명확해진다.


소설을 읽고 "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었다."라고 느끼는 것보다

"아, 어떤 상태를 통과했다."라고 느낄 때,

읽은 소설이 더 좋은 소설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 우리가 베스트셀러 소설, 혹은 인기 소설, 혹은 좋은 소설이라고 하는 게

과연 소설다움에 정말 근접해 있는지 묻고 싶다.

난해하고 복잡하고 뭔 말인지 알 수 없다고 해서, 인기 없다고 해서,

좋은 소설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아직 언어화되지 못한 어떤 '사건'이나 '감정'이나 '상태가' 

워낙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그리 생각할 수는 없는 걸까.


물론, 그렇다고 무작정 난해한 소설은 나 역시 반기지 않는다.

다만, 소설을 덮고 어딘가를 통과한 느낌인데, 온 몸이 고단하고 피곤하긴 해도,

달콤한 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막연히 느끼는 순간...

그게 소설 읽기의 마력같다. 


일부러 오지만 찾아 다니는 여행가가 있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람들이 찾지 않을 만한 곳에 있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긴 의미가 무수하고...


닿지 않았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두 장 읽었는데 이리 길게 쓸 거리가 있다.

언제 이렇게 썼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그것만 해도 존 버거는 역시 대단하다.


글 잘 쓰는 사람은, 생각할 거리, 글 쓸 거리를 아낌없이 제공하는 법이다.

80년 간 글 쓴 사람답다.


진짜로 이제 겨우 두 페이지 읽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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