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란의 <겨울정원>을 읽다가 가장 먼저 감지한 건
이 소설엔 제스처가 별로 없다는 것-.
인물은 의미심장한 몸짓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소설의 시작은 '반복되는 일상'이다.이건 특히 소설의 서두에서 잘 안 쓰는 건데...
봄과 여름 내 만개했던 것들이 모두 진 십일월부터,
하루 중 가장 볕이 따뜻한 오후 한 시간 동안 난 꼬박 텅 빈 정원을 바라본다.
14p)
지금이 언제인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십일월부터 화자는 한 시간 동안 텅 빈 정원을 바라본다. 아무 것도 없는 정원을.
이렇게 되면 소설을 끌고 가기 힘들어진다.
너무 가라앉았다. 거기서 '동요'를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동요없는 소설을, 특히 요즘 독자들은 읽으려 들지 않는다.물론, 소설은 읽히기 위한 게 목적은 아니지만.
이 소설은 '제스처'보다는 상태/상황 설명이 위주다.
작은 행동을 개별적으로 나열하기보다는 그 행동들을 뭉뚱그려 진술한다.
가라앉은 분위기엔...어울린다.
분위기는 가라앉았는데, 사소한 움직임이 뚜렷하면 텍스처가 깨진다.
이 소설에서 삶은 그래서 '장면'으로 존재하기보다
점으로 찍히는 편이다.
어제의 점, 오늘의 점, 내일의 점이 이 소설에서는 서로 크게 다르지가 않다.
독자는 다르길 기대할텐데...읽으면서 걱정이다.
'겨울정원'의 서사는 도통 진행되지 않는다. 대신 반복된다.
그런데 이 반복은 짐짓 독특하다.
무기력이나 서사적 실패의 결과로 읽히지 않는다.
아하, 오히려 그것이 작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형식일까.
말하자면, 이 소설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게 하려
소설가가 아주 많은 일을 한 소설 같다.
배제하기-.
금주 언니가 과메기가 있다면 화자(혜숙)을 집으로 초대하는 장면만 해도 그렇다.
과메기는 이 가라앉은 소설에서 동요를 일으킬 만한 ‘특별함’의 기표다.
계절적이고, 누군가와 함께 나눠야 하며, 일상을 벗어나는 식탁을 암시한다.
그러나 혜숙은 그 초대마저 오늘,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다른 날로 미룬다.
그 결과 혜숙의 ‘오늘’에는 역시 별 사건이 추가되지 않는다.
과메기는 가능성으로만 남고, 실현되지 않는다.
치밀한 배제가 다시 일어난다.
'겨울정원'은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지점들을 이렇게 의도적으로 유예한다.
이 유예가 반복될수록 독자는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사건이 아니라,
사건이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란 것을.
난 단순하게 산다. 오피스텔에 가서 청소하고 집에 와서 씻고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다가 잠을 잔다.
(15p)
(아...진짜 소설을 얼마나 힘들게 써나가려고 이러시나...)
'겨울정원'에서 이룬 또 하나의 놀라운 일은 현재에 대한 집착이다.
정말 많은 소설이 오늘을 설명하려 과거를 호출하길 즐긴다.
'겨울정원'은 과거를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 한 번 등장하는 과거—오인환과 함께 용궁사에 갔던 기억—마저도 회상의 확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 기억은 설명되지 않고, 의미화되지 않으며, 현재를 변형시키지도 않는다.
이주란은 '겨울정원'에서 소설 속 과거의 기능을 새롭게 발견했다.
과거는 지금과 그저 조금 다를 뿐이라는-.
혜숙에게 오인환은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데
그 부재 역시 극적인 상실로 처리되지 않는다.
또 다시 철저한 배제-.
과거를 최소화한 자리에 남는 것은 당연히 현재다.
현재의 미세한 흔들림이다.
그 미세한 흔들림의 종류는 이러하다.
겨울 정원에 까치가 날아든다.
초등학교 동창회 단톡방에 보낼 연말 인사말을 ‘교양 있게’ 쓰고 싶어 한다.
이런 식이다.
이 소설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우연히 걸려드는 작은 변화를
붙잡는 방식을 즐겨 쓴다.
이 소설에서 가장 큰 떨림은
딸 미래에게 찾아온 설렘이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혜숙의 감정이다.
지금 미래에게 생겨난 저 마음이,
언젠가는 내게도 다시 찾아올 날이 있을까 생각하면
이미 겪은 일도 지금 겪고 있는 일도 아닌데 조금 슬프다.
44p
혜숙은 그 설렘이 자신의 미래에도 올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그러다 조금 슬퍼진다. 이 슬픔은 설명되지 않는다. 원인도, 결론도 없다. 다만 그날의 일상에 아주 작은 금이 간다. 이 균열은 소설의 클라이맥스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반복되는 일상 속으로 흡수된다.
하지만 독자는 느낀다.
이 소설에서 허용된 최대치의 사건이 바로 이것이라는 사실을.
'겨울정원'의 미학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삶’을 묘사하는 데 있지 않다.
그건 너무 지루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굉장히 분주하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도록 소설 속 모든 것을 장악한
소설가의 성실한 자제력 떄문이다.
소설가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미리 알고 있다.
그런데 그 가능성을 하나씩 차단한다.
감정이 커질 수 있는 지점에서는 문장을 낮추고,
서사가 확장될 수 있는 순간에는 시간을 멈춘다.
그 결과 독자는 누군가의 지루한 삶이 아니라,
완벽하게 통제된 평온 같은 걸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은 묻는다.
우리 삶이 반드시 극적으로 변화해야만 의미가 있는가.
감정이 꼭 폭발해야만 진짜인가.
그리고 소설은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한다.
그렇지 않다고.
어떤 삶은 반복되기 때문에 성립하고,
어떤 감정은 이름 붙이지 않기 때문에 유지된다고.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남는 것은 감동이라고 할 수 없다.
감동 '꺼리'는 없는데, 이상하게 감동적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소설의 형식이 되는 경험.
'겨울정원'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소설이다.
소설가에게 묻고 싶다.
대체, 어떻게 참았느냐고.
엄마는 단순한 게 아니라 성실한 거였어.
3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