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소설 부는 젤소민아













 

현대문학에서 거장들의 단편집을 줄줄이 내서 줄줄이 몇 권 샀다.

그래놓고 읽지 못하고 있다가 지인의 제안으로 매일 한편씩 읽고 후기 나누기를

하기로 했다. 그래야 읽지, 싶다는데 격하게 공감했다.

어제부터 플래너리 오코너의 31편 단편을 매일 한편씩 읽기로 했다.

이제부터 매일 알라딘 서재 페이퍼를 쓰게 생겼다.


<제라늄>부터 시작해 보자.

아, 진짜...

플래너리 오코너를 왜 '천재'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이게 그녀가 21세이던 때, 

조지아주립대학 재학 중...

그러니까 대학생 때 쓴 첫 단편이라고.

너무한 거 아닌가...

이 정도는 돼야 소설 쓴다고 어디 나가서 명함 좀 내밀 수 있는 건지.


독자로서 <제라늄>을 즐겨보자.

더들리 영감은 차츰 자기 몸의 형태로 빚어지는 의자에 앉아서,

창밖으로 4~5미터 거리에 있는 더럼 탄 붉은 벽돌집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첫 문장이다.

자기 몸의 형태로 빚어지는 의자라...

아무 것도 아닌 듯, 무심하게 던진 문장이라 읽고 지나쳤다가 되짚어갔다.

몇 번 다시 곱씹었다.

인물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하는 문장.

특히, 같은 의자에 앉아 같은 행동을 반복했을 것이다-.


영감이 하는 같은 행동은 건너편 집 사람들이 매일 아침 10시 무렵에 내놓고 

오후 5시 30분에 들여놓는 제라늄을 쳐다보기.

아니, 그들의 행위를 쳐다보기.


그 집 창가의 제라늄을 보면 영감은 소아마비에 걸린 고향의 그리스비 소년이 생각났다. 


오코너는 제라늄을 슬그머니 그리스비 소년에게로 미룬다. 

놀랍게도, 그렇게 해서 작가는 더들리 영감과 제라늄을 더 깊게 포갠다.

더들리 영감에 건너편 집 사람들은 제라늄을 키울 권리가 없다.

제라늄은 거기 있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더들리 영감은 목이 조이는 것 같다.

작가는 이 세 개의 설정을 집요하게 붙잡고 간다.

그리고 결말에서 반드시 해결해낸다.


더들리 영감이 고향을 떠나 정착한 이곳 아파트는 어딜 봐도 똑같다.

영감은 도착한 첫 주에 건물에 현기증을 다 일으켰다. 

아파트는 길쭉한 닭장처럼 뻗어있고 길거리도 똑같다. 

다 똑같다. 


이렇게 다 똑같은 집에 살면서

딸은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듣지 않았다.

영감의 딸은 보이는 모든 게 똑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듣지 않으려 한다. 

게다가 좁다.

부엌은 화장실과 통하고, 화장실은 다른 모든 곳과 통하고

어디를 가도 금세 제자리.

금세 제자리, 제자리, 자리...

이 소설의 단어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자리'를 고르고 싶다.


자리의 변화 혹은 이동


고향을 떠나 도시 아파트로 자리를 바꾼 더들리 영감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건너편 집 창틀의 제라늄

모든 게 제자리인 것 같은 닭장 같은 아파트

'자리'의 심상이 굵고 진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더들리 영감은 고향을 그리워할 때마다 '망할 놈의 목구멍'이 답답해지는 걸

느낀다. 목이 뻣뻣해지는 걸 느낀다. 목은 우리 몸의 중심이다. 척추의 꼭대기에 올라붙어

우리 몸의 다른 모든 것들이 제 '자리'를 지키게 해 준다. 


그런데 다 똑같은 이 아파트에서 더들리 영감은 평생 겪어온 것과 다른 것 하나를

발견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엇.


검둥이가 옆집에, 그것도 하인의 신분이 아니라 입주자로 산다는 것!

그 망할 검둥이가 자기 등을 두드리고, 자신을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을 아는 자신을.

좋은 곳 출신인 자신을.

좋은 곳.

더들리 영감은 말하자면, '좋은 곳'이란 자리를 떠나온 사람인 것이다. 

"좋은 곳이죠, 익숙해지면요."

검둥이가 말했다.

(20p)

노인에게 이곳도 '좋은 곳'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검둥이다.

골목 건너편 창문에서 한 남자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우는 것을 보았다.

제라늄이 있어야 하는 잘에 속셔츠 바람의 남자가 앉아서 그가 우는 모습을 보며 그의 목이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들리 영감도 남자를 보았다. 제라늄이 나와야 했다.

그곳은 그 남자가 아니라 제라늄의 자리였다.

"제라늄은 어디 있소?"

더들리 영감이 조여든 목구멍으로 외쳤다.

(21p)

소설은 결말로 치닫는다.

노인은 남자를 보고, 남자는 노인을 본다.

두 시선이 마주친다.

제라늄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한 건너편 집 남자.


"전부터 영감님을 봤어요."

남자가 말을 이었다.

"날마다 그 의자에 앉아서 우리 창문을 보고, 

우리 집안을 들여다보시더군요.

내가 내 집에서 뭘 하건 왜 상관하시죠?

사람들이 내 집을 들여다보는 건 원치 않습니다."

"나는 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아요."

남자가 말하고 창문을 떠났다.

더들리 영감이 이쪽에서 보고 있었다면

저쪽에서는 건너편 집 남자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독자는 더들리 영감의 자리에만 몰입하느라

저쪽에서 건너편 집 남자의 또 다른 자리가 만들어지는 걸 놓쳤다.

아니, 플래너리 오코너가 그걸 놓치게 했다.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만들어가는 그 무엇.

그리고 마지막에 오히려 더 도드라지게 만드는 그 무엇.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독자는 더 큰 시점을 지닌 인물이 사실은 

건너편 집 남자였음을 깨닫는다.


노인이 보기 전부터 노인을 보고 있던 눈.

노인이 자리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만들어져 있던 자리.

노인과 남자는 서로를 보지 않으면서 보고 있었고

노인과 남자는 서로의 자리에서 서로의 자리를 공유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어떤 자리에서 어떤 자리의 사람을 바라보고 있나.

내 시선에만 몰두하느라

나는 혹,

또 어떤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더들리 영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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