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젤소민아의 소설나팔
  •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 14,850원 (10%820)
  • 2022-10-31
  • : 2,231

폭풍의 언덕.

초등학교 때 읽었다.

아마도 축약본이었을 것이다.


누가 살았어요, 어땠어요, 저쨌어요..하는 식으로 존대말로 된.


그러니 제대로 읽은 게 아닐 것이다.


그래서 맘잡고 제대로 읽어볼란다.

번역본이 여럿.


어느 것으로 읽을까.


알라딘의 '미리보기' 기능을 적극 활용했다.

우선, 첫문장 비교부터.


원문은 이러하다.


1801-I have just returned from a visit to my landlord-the solitary neighbour that I shall be troubled with. This is certainly a beautiful country! I do not believe that I could have fixed on a situation so completely removed from the stir of society. 

축약본도 도움은 되었다. 가물가물하지만 여기서 말한 '집주인'이 그 유명한 히스클리프란 게 기억난다. 


화자는 '나'. 나는 히스클리프란 걸출한 소설 인물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solitary neighbour


solitary


이 단어 안에 겹쳐진 다소 이질적 의미를 절묘하게 써먹고 있다는 게 대번에 느껴진다.


1) separated from/따로 떨어진

2) only one/ 단 하나의


1)번은 집주인(히스클리프)의 몫이다.

2)번은 화자인 '나'의 몫이다. 


'solitary'는 '떨어진', '고독한'이 지배적인 의미지만

영미인들에겐 'single'이란 뜻도 유력하다.

  • I could not hear a solitary [=single] word of what he said.
  • 그에게서 단 한 마디 말도 못 들었다.

  • 집주인은 따로 떨어진(solitary) 집에 혼자 사는데

    그러니 나는 그가 유일한(solitary) 이웃이라 아주 좋아.

    (the stir of society에서 벗어났으니까)


    ==>화자인 '나'와 집주인, 히스클리프의 캐릭터를 바로 소개하는 셈이다.

    'solitary'란 한 단어로 '나'와 '집주인'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는.


    영어는 이래서 짜증 나게 헛갈리기도 하지만 또 이래서 유용하기도 하다.

    영어로 글 쓰는 그들에게는. 그 영어를 제대로 읽어내기만 하면 독자에게도.


    그렇다면 번역은 이 두 이질적인 의미를 잘 살렸을까?


    비교해 보자.

    비교하면서 스스로 평가해 보시길.



    이제부터 사귀어가야 할 그 외로운 이웃 친구를.-민음사(김종길 역)


    흠...완전히 다른 의미.

    '사귀다'는 의미는 원문 어디에도 없다.


    이제 그는 내가 신경써야 하는 유일한 이웃이다-문학동네(김정아 역)

    흠...'신경쓰다'는 의미 또한 원문 어디에도 없다.


    몇 킬로미터 내에 이웃이라곤 오로지 그 집 한 채 뿐이다-푸른숲주니어/공경희 역

    흠..'solitary'를 '뚝 떨어진'으로 밖에 못 옮겼다. 뒤 'troubled'는 어디갔나...

    청소년본 같은데, 그래서 '축약되었을' 수는 있겠다.


    그는 앞으로 내가 신경 써야 할 유일한 이웃이다/앤의 서재(이신 역)

    '문학동네'와 이하동문.


    내가 신경 써야 할 유일한 이웃이다-열린책들(전승희 역)

    흠..의역하면 맞다. '유일한'도 살렸다. 그런데 'troubled'는 '내가 신경쓴다'기보다는 누가 나를 귀찮게 하는 뉘앙스다. 귀찮으니 신경 쓰이긴 하겠으나, 귀찮고 성가신 게 먼저다.


    그 외에도 더 많은 번역본이 있지만, 여기까지 살펴보고 좀 지쳤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번역본이다. 황유원 시인 번역.


    앞으로 나를 성가시게 할 유일한 이웃인 그를.--휴머니스트 세계문학/황유원 역


    내 생각엔 이 번역문이 가장 원문에 가깝다.


    'trouble'을 최대한 살렸다고 봐서.


    그런데 굳이, 굳이, 살짝 아쉽다 한다면...


    그가 나를 성가시게 할 유일한 이웃이라, 하면

    이웃이 많고 이웃 모두 좋은 양반들인데

    딱 그, 한 사람이 나를 성가시게 한다는 뜻으로 오독될 우려가 없지 않다.


    물론, 뒷문장을 더 읽으면 오해는 풀린다. 


    그러나 영미인은 뒷문장을 안 읽어도 제대로 이해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좀 더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런 식이 어떨까 싶다.


    나를 성가시게 해본들 이웃이라곤 그가 유일하다.


    흠, 여기도 딱 그 한 사람이 나를 성가시게 한다고 오독될 우려가 있지만 

    오해 소지가 좀 약화돼 보인다.


    최선의 번역문은 더 많이 고민해 봐야 한다, 뭐.


    아무튼 위에서 살펴본 바로는,

    지금껏 한국 독자는 '폭풍의 언덕'을 첫 문장부터 제대로 못 만났다는 느낌적인 느낌.


    첫 문장에서 휘청이니 번역본을 더 읽기가 좀 주저된다.

    그래도 황유원 번역으로 읽기 시작했다.


    번역에 관해서도 독서 후기도,

    좀더 읽고 올릴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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