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이 워낙 좋았다. 적어도 내겐 구구절절 옳았다. 집 앞 카페 한 구석에 그 글을 읽으며 얼마나 많이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르겠다. 사회관계 속에서 항상 약자였던 내가 언제나 나와 비슷한 위치의 약자들과 작게 이야기 했던 내용들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경직된 조직의 구성원이라고 믿었던 판사가 말해주니 우와- 싶었다. 그래, 내가 이상한 거 아니고 나는 그냥 개인주의자야.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분쟁의 모습을 그리되, 그것을 재판하는 판사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솔직하게 그려보고 싶었다.
<미스 함무라비>는 그 <개인주의자 선언>의 작가 문유석 판사가 쓴 소설이다. <한겨레>에 연재했던 글들을 엮은 책으로 현직 판사가 판사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밝힌 만큼 재판과 소송 과정, 법원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생각해보면 드라마나 영화 속 법관은 언제나 판결을 말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검사와 변호사, 원고와 피고의 갈등 관계는 심심찮게 등장하지만 사건 분쟁을 조정하고 문서를 검토하는 판사들이 일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소설 속 판사들은 '무표정하고 우리와는 아예 동떨어진' 위치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정말 판사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때론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기도 하고 자신이 믿는 쪽에 저절로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객관성을 갖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누구보다 애쓰는 그런 사람들이다.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고요!"
누구도 보여주지 않아 그동안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했던 법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박차오름이라는 열혈 신입 판사를 등장시킨다. 하나부터 열까지, 차례차례 배우고 성장하는 그녀의 모습을 따라가면 판사의 일상이 생생하게 보인다. 소설 중간에 삽입된 '판사의 일'에서는 진짜 판사가 하는 일을 포함해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현직 판사의 생각을 들어볼 수도 있다. 초반에 가볍고 어딘가 유쾌하기까지 해서 술술 읽히지만 뒤로 갈수록 무거운 주제와 생각할 만한 논제를 던진다. 신입 판사가 사건을 통해 성장하는 만큼 고민도 책임도 늘어난다.
판사는 주어진 법의 테두리 내에서만 기능한다. 법을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이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결국 시민들이 쥐고 있다. 권리 위에 잠자지 말자. 주체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판사가 판사의 고민을 이야기하니 나란 시민은 시민의 역할을 떠올려보았다.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