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가 따뜻하고 새로운 봄을 맞이했기를...
nan7070 2025/12/27 11:50
nan7070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간단후쿠
- 김숨
- 15,300원 (10%↓
850) - 2025-09-12
: 3,190
#간단후쿠 #김숨 #민음사 #서평 #책추천
간단후쿠. 김숨 장편소설. 민음사. 2025.
책을 다 읽고도 한참 마음을 고르느라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도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를 이야기하고 설명할 수 있을지 어렵기만 하다. '간단후쿠'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지점부터 너무나 많은 각오를 해야했다. 그 무거움과 슬픔을 감당하기 위한 단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간단후쿠를 입고, 나는 간단후쿠가 된다.(7쪽)
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으로 이미 이야기는 시작되고 또 이야기가 끝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긴 설명도 구구절절한 이야기도 모두 이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된다. 간단후쿠(일본군 위안소에서 '위안부'들이 주로 입은 간단한 원피스식의 옷).
밤이 되면 간단후쿠는 군인들을 데리고 잔다.(9쪽)
이 아이들에게 간단후쿠를 입히고, 간단후쿠가 밤마다 군인들을 데리고 자도록 만든 것은 누구인가. 무엇이 이 소녀들에게 이런 가혹하고도 슬픈 시간을 만들어준 것일까. 왜 이런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 이제는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낸 소녀들을 만나고 안아줘야할 것인가. 알고 있지만 알지 못하는 그 시간을,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 하는 시간을, 김숨의 소설을 통해 하나씩 천천히 느끼게 된다.
나는 고향 집 주소를 말하지 못한다. 나는 집 주소를 모른다.(149쪽)
가장 마음아픈 지점이었다. 집 주소를 모른다. 글을 쓸 줄 몰라서가 아니라 집 주소를 몰라서 집에 돌아갈 수가 없다. 아니, 글을 알아도 주소를 알아도, 집에 가고 싶지 않다의 마음이 집에 가고 싶다의 마음과 오락하는 그 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간단후쿠를 입고, 군인들을 데리고 자고, 군인들의 아이를 갖고, 그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요코는, 그럼에도 집에 가고 싶은 것이다. 지금 이곳은 집이 아이니까. 전쟁이 끝나고 집에 갈 수 있기를 바라며, 군표를 모으고 또 숫자를 세며, 집에 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주소를 몰라도, 집에 가고 싶은 것이다. 이 생각을 하면 할수록 감정이 북받쳐 올라와 슬픔과 너무 커진다. 마음이 너무 아프게 저려온다.
이 소녀들은 강으로 가서 간단후쿠를 빨고 삿쿠를 빤다. 조센삐가 되고 아랫도리를 내놓아도 신경쓰지 않으면서도, 강으로 간다. 그러다 강에 간단후쿠를 떠내려보내고, 아기도 떠내려보낸다. 강은 흐르고, 연결되어 있고, 어느 사이엔가 강에 떠내려보낸 것들이 다시 고향에 닿을 거라는 마음으로. 그러기를 바라면서. 정작 소녀들은 그렇게 떠나지 못하지만, 강에서는 떠날 수 있으니까. 그 강에서 소리도 지르고, 울부짖고, 넋을 놓으면서, 강으로 간다. 전쟁이 끝나면 소녀들도 떠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김숨 작가의 소설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거나 때론 숨을 참으며 읽게 된다. 한 순간도 쉽게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없는 무게감을 지니고 있는 문장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간단후쿠>는 더 그랬다. 짧은 이야기들이 연달아 나오며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되어 나갔지만, 각 이야기가 소설의 이야기라기보단, 박소란 시인의 '추천의 글'에서와 같이 시였기 때문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꾹꾹 눌러 묵직하게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쉽게 넘길 문장이 하나도 없었다. 그 문장들이 나오기까지의 시간과 고민과,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소녀들의 삶이 있었기에 더욱, 그 문장들을 가벼이 읽어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은 그 날은 하루종일 마음이 흐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소설의 끝이 마음에 들었다. 마음으로 요코가 개나리로 다시 돌아와 아기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간단후쿠>의 표지 그림이 개나리다. 봄이 오고, 날이 따뜻해지고, 모든 것이 다시 새롭게 시작되고, 그런 시작을 알리는 꽃이 개나리. 그런 개나리처럼 개나리도 모든 아픔을 잊고 새롭게 따뜻한 봄날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