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의 운명, 가을이의 마음...
nan7070 2025/10/1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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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백 년째 열다섯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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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 - 202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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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년째 열다섯. 김혜정 장편소설. 위즈덤하우스. 2022
가을이, 아니 서희가 야호족이 된 것은 서희가 처음부터 이미 갖고 있던 그 마음을 령님이 제대로 알아봤기 때문일 것 같다. 결국, 서희에 의해 모든 것이 제대로 움직이고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처음부터 있었기 때문에 서희의 몫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서희 스스로는 원하던 바는 아니었겠지만, 무언가의 역할은 그 역할을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의 몫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몫을 다할 수 있는 이가 바로 서희였고, 그런 서희였기에 야호족과 호랑족, 그리고 인간 모두가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훗날 가을은 괜한 오지랖을 피웠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령은 가을네 세 모녀를 살려 주었다. 야호는 한 번 입은 은혜는 절대 잊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 령은 죽어가는 세 모녀를 살리기 위해 그들을 종야호로 만들었다. 령에게도 세 모녀에게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건 령을 살렸던 가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살릴까 말까가 아니라 살리는 것뿐이었다. 어쩌면 인생은 선택이 아닌 그냥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른다.(22쪽)
살리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은 없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살리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을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이들이라면, 이런 마음이 서로를 살리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이끌리는대로 서로에게 다가갔고, 그렇게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마음과 역할, 혹은 짐을 나누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나누어받은 그 마음에 최선을 다해 답했던 것이다.
령은 가을네 세 모녀를 살렸고 엄마는 영빈을 자식으로 받아들였다. 매번 다짐하는데 왜 그게 안 될까.
마음이 흔들려서 마음이 움직여서 마음이 있어서, 가을은 울었다.(104-5쪽)
이 마음의 시작이 바로 서희가 령을 살리려던 그 마음이지 않았을까. 다른 이를 살리려는 마음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조절하거나 빼앗고 혹은 망가뜨릴 수 없다.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자라나 그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므로 쉽게 다른 유혹이나 힘에 의해 좌우될 수 없다. 한결같은 마음을 지닐 수 있어야, 그리고 그 마음을 굳게 지킬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가 바로 가을, 서희였던 것이다.
야호들은 그제야 왜 령이 최초 구슬을 가을에게도 주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었다.(212쪽)
그러니, 가을이도 모르는 사이 최초의 구슬을 갖게 되었던 그 모든 것이 사실은 다 운명이었던 것이다. 엄마의 사랑과 호랑족과의 관계, 그리고 종야호가 되고 또 령의 구슬을 지니게 된 그 모든 것이,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른 채 오백 년을 지낼 수 있었던 것조차도 모두 가을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운명을 가을은 스스로 또 훌륭하게 감당해낸 것이다.
MISSION. 영원히 산다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축복이다. 영원히 살아야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한테나 이런 축복을 내리는 것도 아니다. 축복을 받을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축복을 받는 것이다. 물론, 영원히 사는 삶이 쉽지만은 않다. 당연히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모두 해낼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꼭 해내야만 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 저주라고 생각할 수 없다.
가을이가 보여준 모습이 딱, 축복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오백 년을 살았어도 열다섯의 열다섯이다. 두렵고 무서워 뒤로 물러서고 남들이 해주는대로 따르기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을이는 당당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선택했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행동하고 움직일 줄 아는 모습을 보였다. 이보다 더 분명한 이유가 또 어디 있을까.
이 이야기에 흠뻑 빠져 소설을 읽었다. 이제야 이 소설을 만난 게 아쉬울 정도. 이후 이야기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가을이에게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 지. 하지만 걱정은 없다. 앞으로도 내내 쭉, 가을이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단단하게 만들어나갈 게 분명하니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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