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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모르는 낙원
- 박서영(무루)
- 16,200원 (10%↓
900) - 2025-05-22
: 4,310
#우리가모르는낙원 #무루 #에세이 #오후의소묘 #서평단 #서평 #책추천
우리가 모르는 낙원. 무루 에세이. 오후의소묘. 2025.
우선, 재밌다. 그림책을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림책과 상관 없이 이 책은 재밌다. 깔깔 웃을 수 있는 재미를 얘기하는 건 아니고, 갖가지의 우리 삶과 인생 혹은 철학과 사상에 대해서도 가만히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순간, 깊이 빠져들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한 순간,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을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책 한 권을 읽었지만 책 속에서 소개하고 있는 많은 그림책을 함께 읽은 기분이다. 그리고 조만간 도서관을 찾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그림책을 한 권 한 권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 제대로 이 책에 푹 빠졌다.
그림책은 독자에게 언제나 재독을 요구한다. 아무리 단순하게 그려졌다 하더라도 그림책의 그림은 반드시 다시 읽었을 때 더 잘 보이는 맥락과 의미를 지녔다. 새롭게 발견된 이야기와 이전의 이야기 사이의 관계는 오답 노트 같은 것이 아니다. 오독은 실패가 아니라 이해에 도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들은 그 과정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150쪽)
절실하게 공감한다. 그림책을 읽다보면 금방 읽었는데도, 한 번 더, 또 한 번 더 읽게 된다. 자꾸 읽으면서 그 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숨은 요소를 찾게 된다. 놓쳤던 부분, 혹은 봤지만 미처 알아채지 못한 부분이 그 다음에 하나씩 발견될 때, 기분이 좋다. 또 다른 걸 찾는 기분으로 다시 앞으로 돌아가 책장을 넘기게 되니까. 그림책의 매력이 이런 게 아닐까.
그는 아예 공원의 작은 회양목 울타리 뒤켠에 강낭콩을 심기로 한다. 작전은 성공했고 이제 산책하는 노부인의 얼굴은 전에 없이 기쁨으로 충만하다. 7월의 어느 날 공원 관리인의 손에 콩이 뽑혀 버려지기 전까지는. 자신의 소중한 콩이 잡초와 다름없이 여겨진다는 사실을 노부인의 당당히 받아들인다.(60쪽)
깜짝 놀랐다. 당연히, 어머! 나의 소중한 강낭콩을! 하면서 속상해하고 좌절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당당하게 받아들인다니. 이 순간 내 손을 꼭 쥐어봤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 소중하다고 함부로 하기 싫은 것들에 대해 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을까. 아주 작은 것 하나도 내 손 밖으로 사라지는 순간 안절부절 못했던 기억이 스쳤다.
이웃의 빈곤이라는 공동체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마을 주민들이 보여주는 타산적 연대의 동력은 공포와 이기심이다. 이 돌봄의 기저에는 손익계산에 근거한 방어기제만이 있다.(73쪽)
이 이야기가 실은 구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추방의 이야기였음을. 확실성의 세계가 구석진 골목의 일부를 떼어낸 뒤 캐비닛에 불확실성을 봉인하듯 세상으로부터 크리쳐들이 유리되는 과정을 그저 한 남자의 빛바랜 추억 속에서 쓸쓸히 되새겼을 뿐임을.(121쪽)
타산적 연대, 추방. 이런 단어를 마주하며, 우리 사회의 가장 가장자리, 누구나 인정하기 싫은 이면의 모습을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감고 모른 척 넘기고만 있을 뿐 이 사회를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축인 것만은 사실이니까. 이런 사실을 간과하기보단 꺼내 들추고 보여주며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 지금의 우리 사회 역시 손익계산을 통한 추한 이기심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허울 좋은 겉모습을 위해 그 외의 모습은 그저 감추고 포장하려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다. 추방이란 단어가 주는 혐오가 순간 느껴졌다.
인간과 요괴, 사람과 느림, 현실과 환상, 이성과 감성, 논리와 직관, 주체와 객체. 글과 그림은 두 세계를 각각 상징한다. 보이지 않는 것, 목소리가 없는 것, 믿기 힘들거나 증명 불가능한 것.(142-3쪽)
<숲의 요괴>라는 작품이 가장 궁금했다. 두 세계의 글과 그림을 통해 우리의 욕망과 본성을 확인시켜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인간은 어느 쪽을 쫓으며 혹은 현혹되어 살아가고 있는지, 그렇게 사는 삶이 온전한 것이 맞는지를 질문 던지고 있다는 느낌. 나의 속을 드러내놓으라고 부추기고 있는 책이 것만 같았다.
이 책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자꾸 나를 들여다보게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궁금하게 만들고 또 나의 진짜 마음을 따져보라고 다그친다. 질문하게 만들고 그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힌트를 준다. 이렇게 끝내기 아쉬울 정도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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