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정의 삶에 대한 위로...
nan7070 2025/02/1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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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정의 위로
- 이혜미
- 15,300원 (10%↓
850) - 2025-01-15
: 765
#잠정의위로 #이혜미 #이혜미에세이 #위즈덤하우스 #서평단 #서평 #책추천
한국일보 '허스펙티브' 구독 신청을 했다. 저자는 중국으로 간다지만, 그래도 내가 듣고 싶은 소식은 계속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요즘은 결이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래서 이 책이 <잠정의 위로>일까.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삶과 생각, 발언들이 그동안 나에게도 쌓여 있던 불편한 감정들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주는 자극이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듯한 속 시원함. 어디서도 대놓고 말하지 못했던 답답함이 어느 정도 풀리는 듯한 느낌. 이 책은 분명, 위로가 되는 책이다.
'잠정: 임시로 정함'(...)
하지만 때때로 잠정은 숨 쉴 구멍이 되어주었다. 내게 잠정적이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다. 정해두었지만 언제든 내킬 때에 바꿀 수 있다. 혹은 바꾸기 전까지는 일단 정해둔다.(...) 나의 잠정은 가능성, 자유, 그리고 현존(현재에 있음)과 동의어다.(262쪽)
저자가 살아왔던 삶을 통해 나의 삶도 가만히 살펴보았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떤 삶을 살아내고 있는 걸까. 나에겐 과연, 연간 500파운드와 자신의 방이 주어졌는지, 여전히 주어지지 못한 현실에서 '자기만의 방'을 갖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어쩌면 나의 삶은 결국, 저 '방'을 탐하는 삶이었던 것은 아닐지. 그런 삶을 위한 '잠정'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이 분명, 완벽한 삶의 형태가 되지는 않겠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늘 최선을. 그리고 그 최선이 다른 최선으로 바뀌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삶. 어떤 것도 정해져 있는 것은 없고, 또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삶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나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면, 잠정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잠정의 삶'이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 페미니스트를 자임한 그 순간부터 매사 '불편부당不偏不黨'함을 증명해내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쓰는 기사마다 '가치지향적'이라는 시선이 내리꽂혔다. 한마디로 젠더 이슈를 다루는 페미니스트 기자가 쓰는 기사는 사실 중심적이지 않고 선동적이라는 말이었다.(145-6쪽)
언제까지 이래야만 할까. 어느 순간부터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며 고개를 돌려버리는 경험을 꽤 오래 당해왔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무엇이 편견이고 낙인인지, 아직도 성에 따른 차별이 남아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처음부터 하나씩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데에서 힘이 빠진다. 그리고, 그 노력 자체가 무척 힘겹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힘겨운 속에서도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저자의 힘이 무척 인상적이다. 어찌 보면 저자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그 모든 것에서 힘을 들여야만 가능했던 삶이라고도 할 수 있을텐데, 여전히 힘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살짝, 저자의 그 힘에 기대어 내 목소리를 내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는 '자전적 에세이'란 말을 썼다. 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들던 생각과 비슷했다. 에세이에는 어쩔 수 없이 글쓴이의 일상과 생각이 공유된다. 거짓으로 꾸며 쓰지 않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해보질 수밖에 없다. 생각도 마찬가지. 에세이의 생명은 자신이 이 글을 통해 어떤 생각을 전달하려는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에세이에서는 저자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읽을 수 있다. 그만큼 저자도 자신의 생각과 삶을 있는 그대로 글에 담아낼 수밖에 없다.
저자의 말처럼 이건,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이건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을 수도, 반대로 질타와 비난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만큼 책임이 따르기도 한다. 내가 하고 있는 말과 글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후 어떤 변화의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인가도 잘 확인해야 한다. 그만큼 조심스럽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거침이 없다(는 느낌이 강했다). 고민을 길게 하거나 주저하는 법이 없다고나 할까.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말할 줄 아는 신념과 지식, 그리고 의지도 있어 보였다. 이 사회는 태도만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 태도 위에 그 태도를 뒷받침할 능력이 함께 있어야만 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능력까지 모두 갖추었다. 태도와 능력이 겸비되었으니, 저자의 이야기는 그만큼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저자의 팬이 된 듯하다. 저자가 갖고 있는 삶에 대한 자세도, 그리고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신도, 모두 좋았다. 우선은, 저자의 중국 생활을 응원해본다. 그리고 조만간, 저자의 생각을 다시 글과 책을 통해 만나보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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