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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7070님의 서재
  • 먼지가 되어
  • 김아직
  • 12,600원 (10%700)
  • 2024-04-29
  • : 1,115
솔직히 고백하면, 이 소설을 다 읽고 책을 덮으며 피식, 웃었다. B급 SF. 이런 맛이었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어떤 말로 정리하면 좋을까 고민했는데, 이 한 마디면 모든 것을 다 아우를 수 있겠다 생각했다. 역시, B급 SF!

설정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먼지가 되어 자유로워진다. 근데 왜 하필 먼지였을까. 연기나 구름, 혹은 가루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굳이 먼지였어야했던 이유가 있었을까 싶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먼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먼지가 나면 누구나 인상을 쓰고 코와 입을 막고, 눈을 감는다. 옷을 털고 그 곳을 피하게 된다. 진짜 사람들이 먼지가 되는 것이 좋았던 걸까. 이런 여러 부정적인 이미지의 먼지가 되는 것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산 너머도 산이고, 고생 끝에는 다른 고생이 온다는 걸 알아버린 이상 기를 쓰고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인간의 죽음을 앞날에 기대와 설렘이 멈춘 날로 정의한다면, 오하석은 서른 살 무렵에 이미 죽었다. 오하석에겐 타르디그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115쪽)

삶의 희망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을 떠날 수 있게 해주는 방법, 먼지가 되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는 유혹. 오히려 세상을 떠날 수 있지만 또 세상에 있을 수도 있는 방법. 더 극단적으로 말해 자살 방지 혹은 조력으로도 보이지만 또 완전히 죽는다고 볼 수도 없으니 단정지을 수도 없다. 특히 원하는 이들에게 전파한다는 이유를 갖고 사람들에게 접근하니,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한다. 무슨 목적으로? 이때 떠오르는 단어는 사이비종교. 무척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먼지 생각을 해보면, 타르디그가 되고자 했던 사람들은 기존 삶이 어쩌면 먼지같은 삶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가 먼지같이, 누군가의 눈에 티끌처럼 유해하기만할 뿐 존재감은 없고 그저 이리저리 치이며 살 수밖에 없는 그런 인생. 그러니 같은 먼지라면 더 자유로운 먼지가 되기를 선택하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재원은 자신이 선택한 삶으로 떠났다. 마지막 통화에서 재원은 유어에게 네 멋대로 살라고 했다. 그때 언니는 앞으로 우리의 삶이 '먼지가 될 것인가, 먼지만큼이나 불안한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라는 선택을 필연적으로 거쳐야 한다는 걸 내다본 게 아닐까. 그래서 내 선택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네 멋대로 하라고 했을 것이다.(159쪽)

결국 이 모든 것은 이 질문으로 시작해서 이 질문에 답을 찾아야 끝날 것 같다.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재원도 유어도 답을 찾았다. 그 답이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결과를 만들지는 않는다는 차이만 있을 뿐. 그리고 그 선택에 스스로 분명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까지.

이 이후 어떻게 됐을까. 세상이 타르디그의 세상으로 바뀌었을까. 아니면 타르디그가 이 사회에서 사라지고 다시 기존의 세상이 되었을까. 어느 쪽으로든 이 세상에 먼지(먼지인간이든 혹은 먼지같은 인간이든)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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