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대한 감사를 어떻게 표시해야 좋을지 몰랐다. 아버지는 그가 신경과민이라고 부르는 것에 아마 겁이 났는지도 몰랐다. 나는 손발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들 앞에 아직 육중하게 서 있었다. 흰 잠옷을 걸치고, 신경통을 앓은 이후부터 하게 된, 보라와 장밋빛의 캐시미어 숄을 머리에 칭칭 동이고, 전에 스왕 씨가 내게 준 베노초 고촐리(Benozzo Gozzoli)의 판화(版畵)에 있는 아브라함이 그의 처 사라를 향하여, 그의 아들 이삭과 작별하라고 이르는 그 몸짓으로. 이 일이 있은 지 오랜 세월이 흘러갔다. 아버지가 손에 든 촛불이 올라오는 것이 보인 그 계단의 벽은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다. 나의 몸 안에 있어서도, 언제까지나 계속되리라 믿고 있던 허다한 것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것이 지어져, 그것이 그 당시에 예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고통과 기쁨을 낳았고, 그와 동시에 옛 것은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이 녀석하고 함께 가구료”하고 아버지가 엄마에게 말하지 않게 된 지도 오래다. 그러한 시간이 또다시 내게 생길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기를 쓰고 참다가 엄마와 단둘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터져 나온 그 흐느낌이. 실제로, 그러한 흐느낌은 결코 멈추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지금 나의 귀에 다시 들리는 것은, 삶이 나를 둘러싸고 보다 더 깊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다, 흡사 낮 동안에는 거리의 소음에 모조리 덮여, 이제는 못 울리게 되었는가 싶었던 수도원 종소리가, 저녁의 고요 속에 다시 울리기 시작하듯이.
―마르셀 프루스트, '스왕 네 집 쪽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정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