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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반백살이 되었기 때문에 깨닫게 된 것일까. 아니면 이 나이에 이런 성향이 발현된 것일까.

새롭고 모르고 어려운 대부분의 일들에 대해서 어떠한 궁금증이나 도전 의식은 전혀 생기지 않는다.

바로 도망치거나 회피한다. 그리고 그 방법이 '술'이라는 강력한 마취제이며 진통제였다.

내가 더 이상 여성학을 공부하지 않는 것도 공부할 수록 너무 새롭고 어렵고 슬프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학문이 그러하겠지만, 여성학은 나에게 슬픔을 준다. 그래서 도망쳤다.

그런데 참....여성학이라는 것이 그저 학문만은 아닌지라, 일상생활에서 계속 밟힌다.

완벽하게 도망 칠 수가 없다.

 이 책은 여성학 책은 아니지만, 정희진 선생의 글을 읽으면 여성학 학자의 고충이 느껴진다. 다른 작가들의 글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 책의 모든 밑줄은 정희진 선생의 글들에만 있다.

 노년과 가난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엄청나게 크다. 걱정한다고 달라지지 않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이놈의 생존모드가 생활모드로 전환이 안된다. 계속 삐삐삐 비상사태다.



나이 들수록 유연해지고 지혜롭고 몸과 마음이 여유가 있는 상태가 되리라 생각 했던 것 같은데

점점 더 바라던 거의 모든 면에서 그와 반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상사태다.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판단이 안된다. 바로 도망칠 준비만 한다. 술로.



그래도 아직 다 포기하지 못하고 도망치지도 못해서 이곳에 또 이렇게 끄적인다.

단주 그리고 여성학. 

도나 해러웨이식으로 표현하지면 나는 ‘겸손한 목격자‘로 부분적(맥락적)이면서도 당파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현실에 개입하는, 자신의 위치성을 자각한 자가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연구자, 운동가, 당사자(피해자)의 구분과 위계에 대해서도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일(공부) 중독자가 되었다.그래서 여행이나 인간관계 등 공부 외의 것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특히 여행지에 가서도 서야 할 것에 대한 생각과 떠오르는 아이디어들 때문에 여행을 즐기지 못한다. 바람직한 삶은 아니다. 내다 몰랐다는 이유로 잘못된 판단을 하면 안된다는 강박이 있어서 편안한 삶도 아니다.
나는 늘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노심초사한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P147
정확히 말하면, 쓰는 과정이 공부다.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인식이 변화하는 것, 그것이 몸으로 글쓰기요,생산력있는 공부다. 공부는 쓰기이며 그 과정에서 글자 그대로 환골탈태, 몸이 변화하는 변태가 일어나야 한다. 글을 쓰기 전후가 다른 사람이어야 하고, 그런 글쓰기 과정만이 새로운 지식이 생산되는 방법이다. 당연히 쉽지 않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열락을 느껴 본 사람은 공부를 즐기게 된다. 이런 공부에 중독된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P153
생각과 읽기가 공부의 주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수학처럼 좋은 사례도 없을 것이다. 남이 풀어놓은 것을 이해하는 능력(읽기)가 자기가 직접 푸는 능력(쓰기)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수학 점수가 안 오르는 지름길이다.
글을 쓰다 보면 막히는 때가 있는데, 이는 거기서 멈추고 다시 질문해야 한다는 좋은 신호다. 모든 것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쓰다가 길을 잃은 느낌이 드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최초의 문제 의식과 다른 내용을 쓰고 잇거나 자기 생각을 뒷받침할 사유 틀(이론)을 찾지 못해 ‘이론을 창시하는 고통‘을 겪고 있거나, 사례가 적절하지 않거나, 문제 지적 자체가 틀렸거나...- P157
훌륭한 저작을 남긴 지식인이나 작가의 오만을 사랑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쓰기를 반복하는 일은 좌절의 연속이다. 그러니 무조건 계속 쓸 수도 없다. 길을 잃는 공포가 엄습한다. 사유보다 힘든 일이 쓰기다 .그래서 우울은 공부의 벗이다. 공부를 멈추지 않는 사람은 겸손하다. 자신에게 몰두한다. 계속 자기 한계, 사회적 한계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계속 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다.- P159
김미례 감독의 다큐멘터리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사회적 약자가 가장 가질 수 없는 자원은 폭력이다." 이와 달리, 국가, 자본, 권력층은 합법적이든 비합법적이든 구조적으로 폭력의 총체다. 다시 말해 사회적 약자의 무기는 언어밖에 없다. 게다가 사회적 약자의 경험은 지배 이데올로기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성을 자각한 이들의 글은 독창적일 가능성이 많다.
‘다른 이야기‘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 창의적인 이야기는 쓰기의 계속적인 실패를 통한 모색에서만 가능하다. 공부는 하는 것이 아니다. ‘노가다‘,工夫가 되는 것이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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