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난 여행 에세이와 뜨개질에 빠져 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남들이 여행한 이야기에서, 뭔가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은 창작의 욕구를 뜨개실을 만지작거리며 달래고 있는 셈이다.
언뜻 펼쳐든 이 책에서 빨갛게 물이 든 실뭉치가 줄에 줄줄이 널려 있는 시원하고 달콤한 장면이 내 눈을 즐겁게 하는 바람에 난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첫 장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자니 낙타에 대한 이야기가 조근조근 펼쳐진다. 낙타라면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당시 돌아다니던 글에서 모 연예인의 외모를 낙타에 비유한 일부터 떠올리니(-.-) 참으로 나의 무식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저자가 설레는 마음으로 만나는 낙타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눈물이 다 난다. 인간들에게 평생 봉사하다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낙타. 낙타와 만나자마자 이별이다. 그 어떤 연민이나 동정을 보이지 않는 상인들의 모습에 더욱 서글퍼진다.
"우리들은 낙타들의 오랜 행로를 떠올렸다. 해질 무렵 그 짐승들의 아름다움을, 앞날을 모르는 무지를, 평화롭게 사료를 먹던 모습을. 그리고 그 짐승들이 연상케 하는 사람들의 모습들도 떠올렸다."
얼마전 읽은 책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는 나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은 나무 밖에 없다고. 식물도 아름답지만 동물들도 아름답다. 하지만 어릴 때는 눈부시게 아름답다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추레해져서 슬퍼진다. 나도 언젠가는 늙을 텐데, 아름답고 늙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나는 매일 꾼다.
도살장 피의 냄새를 맡고 도살자를 알아본 낙타 한마리가 발버둥을 치다가 콧구멍에서 피를 한바가지 쏟으며 앉아 있다는 이야기가 가슴을 후벼판다. 낙타는 후각이 발달해 도둑 냄새를 맡고 한밤중에 주인을 깨우기도 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서 절대 혼자 있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그런데 사람들이 잠들었을 때 와서 무릎을 꿇고 사람의 숨통을 막아 죽인다고도 한다. 이쯤 되니 누가 사람이고 누가 짐승인지 모르겠다.
누군가 지적한 것처럼, 철저한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 책의 시각이 마음에 들지 않을 사람도 있겠지만, 모로코가 고향인 사람보다 낯선 이방인의 나라로 다가오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아직은 문명의 냄새가 짙게 배지 않은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느낄 수 있는 그 생경한 아름다움을 충분히 전해주고 있는 것 같다. 이방인의 눈이든 아니든,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진하게 건드린다는 점에서 자꾸만 책장을 넘기게 되는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