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변신이야기> 원전 번역이 나왔다. 몇 개월 전 천병희 선생님 번역의 <아이네이스>를 읽고 나서 혹시 하고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문의해보았는데 2월이면 <변신이야기>도 나온다는 거였다. 2월 말부터 알라딘에서 몇 번씩 검색을 했다.
신화 공부를 하면서도 텍스트를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책이 드물어 라틴어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까지 해보았는데. 이제 <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를 곁에 두고 그 목마름을 두고두고 해갈할 것이다.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천병희 선생님의 책 <시학><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 등은 예전에 읽은 책이지만 여전히 곁에 두고 필요할 때 읽는 책이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천병희 선생님에 대한 나만의 내밀한 존경심을 키워왔는데, <변신이야기>를 대하고 나니,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대한 짧은 리뷰로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있다. 바로 <사회비평> 마지막 호(2003년 봄호)에 실린 고전문학자 강대진의 문제제기이다. 강대진의 책 <잔혹한 책읽기>를 읽어보면 그가 지적하는 우리 출판계의 번역풍토 특히, 서양 고전과 신화 번역에 대한 오류 사례는 실소(失笑)도 실소지만, 경악의 탄성을 자아낸다. 그러나 문제의 대상이었던 출판사나 책의 저자는 아직까지 설득력 있는 반응이나 대응을 하고 있지 않았으며, 출판 기자들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 래디컬한 기사를 내 놓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사회비평>에 실린 글은 이윤기의 <변신이야기>의 번역상의 오류에 관한 것으로, 핵심은 <변신 이야기>의 문학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역자의 지명도를 매개로 결과적으로는 상업적으로 포장했다는 혐의일 것이다. 편역이든 축약이든, 또는 원전에 충실한 꼼꼼하고 정확한 번역이든, 그것은 각각 나름대로의 독자층이 있을 것이다. 원전 번역이라고 그것이 절대적인 가치를 독보적으로 갖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각 독자의 요구(Needs)를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원전에 없는 요소들을 역자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넣거나 빼는 등의 자의적인 번역이 '완역 정본'인 것처럼 유통되고 이를 토대로 신화 관련 저작들이 재생산된다면 곤란한 일이다.
천병희 교수의 책이 나옴으로써, 이윤기의 <변신 이야기>가 출간되었을 당시 주요 일간지 서평란에 실린 뜨거운 찬사는 뒤늦게라도 제 주인공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