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와 더불어 국가를 운영하는 중심인 통치형태는 무엇보다도 시급한 개혁 대상이다. 더 나아가 정부를 구성하는 9급공무원부터 고위공무원의 임면은 그 못지않게 개선해야 할 문제이다. 공무원의 임용과 면직은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으로써 현 국정을 보면 정치검찰의 약진, 명태균 게이트, 공공기관 낙하산, 임명 시간끌기, 인사보복 등 그 폐해가 도처에 불거져 있다.
보수정부일수록 최악의 모습을 선보인 제도이기에 대통령제는 물론 내각제, 이원집정부제에 대해 사료해 보려 한다. 이 책의 도움을 받으면 그에 대한 혜안을 얻을 것이다. 이미 기존의 권위적 대통령제를 보완하는 차원의 권력분산안이 제안된 바 있다. 국무총리를 국회에서 선임하고 대통령의 권한 중 인사권 등 권한 일부를 조정하는 안이다. 그중에서 정치적 오염이 심한 특별사면, 과도한 인사권, 자의적 법률안 거부권 등의 조정과 제한이 먼저 검토될 수 있다. 현재는 내란죄 등 중범죄를 지어도 사면복권되어 선출직으로 출마하거나 (재)임용될 수 있다. 실제 2023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사례를 들 수 있다. 인사제도가 빌런을 탄생시키는 고담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현 시점은 대통령에게 눈이 모여 있으나 대통령만이 국가 구성원이 아니다. 대통령이나 정부 수반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정부나 지자체의 구성원을 뽑는 문제도 따져 봐야 한다. 공무원임용은 선거를 통해 국민이 뽑거나 대통령 등이 임명하거나, 정부, 국회, 법원 등 5급공무원과 9급, 7급 등 하급공무원을 선발하는 공채시험으로 이루어진다. 임명직을 제외하면 공무원은 왜 하나의 공채시험으로 뽑지 않을까? 왜 누구는 한 번의 시험으로 5급공무원이 되고 누구는 9급공무원이 돼야 할까?
향후 하나의 공무원 공채시험 이전에 5급 공채시험을 곰곰히 따져 봐야 한다. 먼저 이 문제늘 붙들고 따지는 이유는 대통령제의 폐해를 전제하는 데서 시작한다. 5급 공채시험은 고등고시나 고시로 불리는데 전근대 시대의 과거제도와 아주 닮아 있다. 과거제는 쉽게 말해 과거의 정부 수반인 군주를 보좌하는 관료를 양성하는 제도이다. 그런 점에서 5급 공채시험과 자명한 공통점이 있다. 더 가깝게는 식민지관료를 배출하던 문관고등시험(행정과, 사법과)으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 이는 자격시험이라 조선인 합격자의 대부분은 조선총독부에 취업했다.
5급 공채시험을 통과하면 정부, 국회, 법원, 지자체 등 행정기관에서 고위공무원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 대통령, 총리, 국무위원, 장차관, 판사, 검사, 외교관 등이 언뜻 떠오른다. 고위공무원은 대부분 5급 공채 출신이 다수이고 그것도 서울대 등 소수의 대학 출신이 다 점유하고 있다. 가령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서울대 출신이고 8명 모두 판사를 하던 사람들이다. 대부분 학교/학과 동문이거나 전 직장동료로써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다. 누구나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왜 공직사회는 자연계의 다양성이 제거되어 있을까? 왜 공직사회는 위로 갈수록 소수의 대학과 5급 공채 출신이 독점하고 있을까?
5급 공채시험 폐지는 인사혁신처에서 장기적으로 면밀히 계획하고 시행할 문제이다. 그러나 명문대 고시 출신의 엘리트일수록 상식을 깨부수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내팽개치는 세상이다. 그들의 특권의식은 전근대 양반사회의 문벌의식과 아주 닮아 있다. 그들은 19세기 문벌의 전횡처럼 법피아, 모피아, 건피아 등 카르텔을 형성하여 전관예우 같은 폐습을 일삼는다. 하나회같이 특정 학교 출신의 파벌이 권력과 사적 이익을 위해 내란을 일으킨다. 이태원참사, 제주항공여객기참사 등 재난 상황에서 신속한 사태수습보다 책임을 피하느라 바쁘다. 이들에게는 관료, 그에 준하는 장교 등 특별한 신분이 부여되어 있다. 조선후기 유형원, 유수원, 정약용 등 실용주의 사상가들의 관료제 개혁안도 이런 배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의 법률안들을 십여 회나 계속 거부하고 심지어 헌법재판소의 결정마저 무시하고 헌재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다. 5급 공채 출신의 공무원들이 서슴없이 위헌위법 행위를 저지른다. 그럼에도 헌재 재판관들은 그들의 행위가 파면할 정도는 아니라며 고히 돌려보낸다. 공무원은 능력으로 아옹하는 시험점수의 덕목보다 더 우월한 도덕성, 정의감, 사명감이 필요하다. 채상병 사건의 박정훈 대령이 서울대 법대 사시 출신의 검사들보다 훨씬 더 공무원답다. 육사 출신의 장성들보다 수방사 1경비단장 조성현 대령이 훨씬 더 공무원답다. 관료제 개혁이야말로 적극적 인사행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2017년 민주당은 행정고시를 폐지하고 일부 민간특채를 허용하되 7급 공채시험과 통합하는 안을 제시한 바 있다. 5급 공채시험의 위상은 이제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합격자 다수는 서울대 등 3개 대학에 집중되어 있고 고위공무원의 분포에서도 그 비중은 압도적이다.
그러나 5급 공채시험이 폐지된다고 공무원인사의 근간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판검사, 외교관 임용 방법이 바꼈지만 하급공무원과 구별하여 선발하기 때문에 전근대의 문과시험, 기존 고시와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 그래서 관료제를 대체하는 인사혁신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한국의 공무원인사는 구품중정제 이래 동아시아의 관료제 전통을 굳게 유지하고 있다.
한편 공무원 면직은 어떻게 될까? 면직에는 의원면직, 직권면직, 징계면직 등이 있다. 징계에는 파면, 해임, 강등, 정직, 감봉, 견책 등이 있는데, 파면과 해임이 징계면직에 해당한다. 파면은 외부통제 수단으로 국회의 탄핵소추로 결정될 수 있다. 하지만 탄핵이 아니더라도 재판에 의한 처벌도 어렵게 보인다. 양승태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 재판이나 검사 재판을 보면 수긍이 간다. 법꾸라지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판사 등 법관은 웬만하면 처벌이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서는 파면되지 않고, 징계처분에 의하지 않고서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습니다. 다만 법관이 중대한 신체상 또는 정신상의 장해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대법관의 경우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판사의 경우 인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각각 퇴직을 명할 수 있습니다."
재판의 독립을 운운하지만 그 말을 믿을 정도로 설득적이지 못하다. 사법농단 사태는 사법부의 독립과 정반대 위치에서 정치와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럼에도 사법농단 재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은 물론 처벌받은 법관은 거의 없다. 판사가 법관인데 법관을 판결하는 게 맞나 의문이 든다. 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제 식구 봐주기 행보는 여전하다. 최근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인의 탄핵심판 결과를 봐도 인용되기 매우 어렵다. 헌법재판소가 검찰 측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더라도 제대로 줄 리가 없기 때문에 소추 사유가 모호하다는 식으로 끝나버린다. 앞서 검찰•법무부가 법원의 정보공개판결을 무시하는 걸 익히 본 바 있다.
판검사는 사법고시가 폐지된 이후 법전원 졸업 등 특별한 자격을 갖춘 자만이 나아갈 수 있다. 외교관의 경우처럼 종래보다 더 보수화된 영역으로 남아 있다. 오히려 고시 시절보다 사정이 더 악화되었다. 전근대 시대에도 양반이 아니어도 과거를 치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특권이 형성되지 못하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입법에 의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가령 박용진 전 의원의 법관징계법 개정안처럼 법관의 품위손상 행위에 면직을 포함하는 식이다. 권한은 넘치도록 누리면서 책임은 꽁무니빼는 고위공무원을 흔히 본다. 공무원은 그 직위에 비례해 직권남용, 직무유기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 12.3 비상계엄과 그 이후의 사태를 경험한 국민이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위헌위법 행위를 해도 기소는커녕 조사조차 쉽지 않고 답답한 시간이 흘러갈 뿐이다.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을 신뢰하지 못하고 법치주의의 보루인 법원조차 상식적으로 납득하지 못할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국회도 법률안 거부권과 탄핵 기각으로 막혀 한 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국민은 어디를 바라보고 어떻게 해야 할까?
국회가 대통령, 총리, 장관 등 고위공무원을 면직시킬 방법은 현재로써는 탄핵소추가 유일하다. 그러나 대통령 외에 탄핵된 고위공무원은 기억나지 않는다. 헌법재판까지 가고서도 중대성 요건 때문인지 보이지 않는 힘 때문인지 인용 판결을 보기 어렵다. 국민 입장에서는 답답한 시간이 흘러갈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주권자로써 민주주의의 본질을 실천하기 위해서도 국민소환이 그 답이 될 수 있다. 모든 공무원이 아니라 대통령,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상하원 구성의 국회라면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상원에서 바로 총리, 장관, 법관, 검사 등 임명직 공무원을 탄핵하는 안을 제시하는 의견도 있다. 자체 징계위원회가 있으나 솜방망이 처벌을 하거나 사전에 퇴직을 하는 게 흔하기 때문에 외부통제가 필히 요구된다. 외부통제는 탄핵심판, 국회탄핵, 국민소환 등 여러 방식으로 시행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도 정치적 영향에서 멀지 않아 안심할 수 없다. 국회도 정치적인 지형에 따라 변화가 심해 불확실하다. 선출직 공무원에 대해서는 반드시 국민소환이 뒤따라야 한다. 한국이 실질적 민주주의 단계로 가 있다면 국민소환은 이미 시행되고 있을 것이다.